학교에서의 세 가지 즐거움

2006.06.19 21:29:00

아침에 일찍 출근하면 제 자리에 신문이 세 종류 놓여 있습니다. 간단하게 신문을 봅니다. 어떤 때는 남자가 남자다워야 한다면서 은근히 혼을 내는 칼럼도 접합니다. 이것저것 여러 글들을 읽으면서 마음을 끄는 내용이 나오면 생각에 젖습니다. 하루는 평범한 직장인의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하나는 출장 가는 즐거움, 휴가의 즐거움, 밥 먹는 즐거움이라는 글을 만납니다.

그래서 저 자신은 어떠한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도 한때 이 세 가지의 즐거움을 누린 경험이 있어 공감이 되었습니다. 교육청에 있을 때 서울을 오가면서 여유를 즐겼습니다. 어떤 때는 비행기를 타면서 음료수를 마시며 넓고 푸른 하늘을 쳐다보면서 감탄과 흥분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기차를 타면서 귀에 이어폰을 꽂아 여러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내려오기도 하며, 또 어떤 때는 버스를 타고 오면서 금강휴게소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가락국수를 먹으며 금강 물줄기를 바라보는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또 교육청 시절에는 방학이 없어 여름휴가 3일 얻는 것이 고작이지만 3일간의 휴가 동안 가족과 함께 즐기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밥 먹는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특히 국수를 좋아해 때마다 동료 장학사님과 함께 한 달 내내 국수를 먹는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즐거움이 없습니다. 학교에서는 출장의 즐거움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먹는 즐거움도 없습니다. 방학 중 3일 정도 얻는 휴가도 그냥 집에서 쉬는 정도입니다. 요즘은 놀토가 생겨 한 달에 두 번이나 쉴 수 있는 날이 오긴 해도 꼭 이런 날이면 더 힘들고 바빠집니다. 결혼식, 상가, 각종 모임 등 피할 수 없는 일들이 빠짐없이 생기곤 하지요.

그렇지만 나름대로 학교에서 작은 세 가지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일찍 출근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7시 전후 출근을 해 저보다 더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선생님들을 대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속속 교무실에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을 맞이하는 기쁨을 예전에는 맛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선생님들을 만나는 기쁨이 있습니다.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을 만나는 기쁨이 있습니다.

아침 7시부터 8시까지 한 시간 정도 신문을 보며, 책을 보며, 메모하는 일이 또 하나의 작은 즐거움입니다. 이런 경우가 두 번 있었는데, 7년 전 연수원에 있을 때 한 6개월간 그랬고, 4년 전 교육청 마지막 해 몇 개월간 그랬습니다. 울산여고에 온 지 4년 차입니다만 지금까지 한 번도 메모하는 즐거움을 가지지 못했었는데 신학기 들어 회복이 된다 싶어 다행으로 여깁니다. 또 언제 사라질지 모르지만요.

또 한 가지 즐거움은 아침 8시가 되어 교실을 둘러보는 일입니다. 학생들의 공부하는 모습과 선생님들의 지도하시는 모습을 대할 때마다 기쁨을 누립니다. 1,2,3,4층을 둘러보는 시간이 가장 많은 생각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 시간이야말로 저에게는 감동과 감격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또 언제 어디 가서 이런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지 정말 행복한 시간입니다.

얼마 전 간접적으로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어떤 선생님은 학교생활이 편안해 학교가 오고 싶고 신이 난다고 합니다. 그 먼 곳에서도 어느 누구보다도 일찍 오고 싶다고 합니다. 이제는 여유가 생겨 옷도 잘 입고 다녀야겠다고 합니다. 정말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꿈이 아니고 현실입니다. 이렇게 실천은 안 해도 그런 생각을 가졌다는 자체가 바로 숨은 기쁨이고 작은 즐거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 선생님은 종종 일찍 오셔서 저에게도 기쁨을 주기도 합니다. 하루는 사과를 쪼개 반을 주면서 아침에는 사과가 보약이라고 하면서 주네요. 또 어떤 때는 차를 가져옵니다. 오늘은 교실을 둘러보고 오는데 학년실에서 차를 마시려고 들고 나오면서 저를 보고는 ‘저는 차를 다시 타서 먹으면 된다’고 하면서 차를 권하기도 하네요. 아마 이렇게 나누는 기쁨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 선생님들도 나름대로 학교 안에서 작은 즐거움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공자의 군자삼락(君子三樂)과 같은 거창한 것은 아닐지라도 이 선생님과 같이 일찍 오는 즐거움, 옷 잘 입는 즐거움, 나누는 즐거움을 갖는 것처럼 사소한 것에서 작은 즐거움을 찾는 것은 어떨는지요?

하루의 반 이상을 우리들은 학교에서 보냅니다. 학생들과 생활합니다. 선생님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니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서, 학생들 속에서, 선생님 속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하면 그건 우리에게 불행이고 비극입니다.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즐거움을 찾으면 더 큰 보람과 기쁨과 즐거움을 발견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선생님은 학교에서 작은 즐거움이 있습니까?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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