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러가는 것이 질러가는 것"

2006.10.04 20:28:00

선생님, 오늘 점심 잘 드셨습니까? 볶음밥을 좋아하지 않으신 선생님을 위해서 흰밥도 별도로 준비했네요. 학생들을 배려하고 선생님들을 배려하는 영양사님의 마음이 돋보입니다.

조금 전 문자메시지가 들어왔습니다. “추석명절 잘 보내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이웃의 빛이 됩니다.” 어느 분께서 보냈는지 몰라도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점심식사 후 ‘돌아가면 직선거리보다 더 빠르다’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는 십 몇 년 전에 함께 근무했던 교장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그 때에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모 학생연수원에 사물놀이 지도가 가능한 교사가 지원요건인 공문을 보고 파견근무를 원했지만 교장선생님께는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거절하면서 ‘둘러가는 것이 질러가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때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고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서운해 했습니다. 저의 길을 막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니 그 때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맞았던 것 같았습니다.

내 고집대로 연수원에 갔더라면 승진이 보장될 법도 하지만 도서벽지를 가야하고 가족을 떠나 있어야 하고 고생 고생했을 것 아닙니까? 지나고 보니 교장선생님의 말씀대로 연수원에 가지 않는 것이 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게 지름길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글에 손자병법의 주요 병법 중의 하나로 우직지계(迂直之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迂)는 우회한다는 뜻이고, 직(直)은 직선거리로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의 상식과 달리 우회하는 것이 직선으로 가는 것보다 목적지에 훨씬 빨리 도착할 수 있다는 계책(計策)이다.
전쟁을 하기에 앞서 적보다 좋은 조건을 차지하려면 전쟁터에 먼저 도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대부분 직선거리로 기동하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도 크다. 상대방도 아군이 빠른 노선을 택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매복이나 장애물을 설치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직선보다는 우회하는 것이 보다 안전하게 빨리 부대를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 손자의 생각이다. 돌아가면 직선거리보다 더 빠르다.”

“‘우회했지만 직선의 효과를 낳을 것이다(以迂爲直)’, ‘돌아가는 것이 나에게 근심이었고 슬픔이었지만 결국엔 이익이 될 것이다(以患爲利)’. 이른바 인생의 일이란 누구도 결과를 쉽게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회가 직선의 효과를 가져 옵니다. 돌아가는 것이 나에게 근심이고 슬픔이고 분노이고 아픔이지만 세월이 지나면 그게 기쁨이 되고 약이 되고 즐거움이 되고 유익이 됩니다.

손자병법의 ‘우회의 전술’은 어디서나 적용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정에서든, 직장이든, 학생이든, 어른이든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적용될 것 같습니다. 당장 오늘 아니면 내일 고향으로 떠날 터인데 오고가는 길의 정체로 인해 갈등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한번 시험 삼아 ‘우회의 전술’을 적용해 봄 직하지 않습니까? 질러가려고 애쓰기보다 차라리 둘러가려고 하는 여유가 있었으면 합니다. 그게 오히려 질러가는 길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조금 빨리, 조금 일찍 도착한다고 해서 그리 좋은 것도 없습니다. 무사히 안전하게 도착하는 게 더 좋은 것 아닙니까?

우리들이 학교에서 자신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한 언어 습관에서도 우회의 전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참지 못하고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설득은커녕 오히려 반감만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돌아가는 것이 상책 아닙니까? 비록 감정을 억제하고 우회하는 것이 힘들더라도 결과는 직설적으로 이야기한 것보다 나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학생들에게 우선 눈에 보이는 직선길만 너무 좋아하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회길도 한번 생각하도록 하면 어떨까요? 지금 당장 득이 없고 손해가 된다 싶어도 지름길보다 둘러가는 길도 있다는 것을 가르쳤으면 합니다. 직선길이 원하는 사람이 많으면 양보하면서 우회길로 선택해 보도록 해야죠. 지름길이 탄탄대로인 것 같아도 둘러가는 길이 더디고 험난해 보여도 둘러가는 길 경험해 보도록 해야죠.

그래야 느긋함이 생깁니다. 여유가 생깁니다. 마음이 넓어집니다. 안달을 내지 않습니다.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병이 생기지 않습니다. 나아가 둘러가는 것이 질러가는 것임을 체험하게 됩니다. 돌아가면 직선거리보다 빠름을 깨닫게 됩니다.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우회전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쳐 봄 직하지 않습니까?

‘둘러가는 것이 질러가는 것입니다.’
문곤섭 전 울산외국어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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