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가끔 하늘 한번 쳐다 보렴"

2006.10.11 15:35:00

점심시간이었다. 한 아이가 부리나케 교무실로 찾아왔다. 그 아이는 배가 아픈 듯 계속해서 배를 만지며 조퇴를 해줄 것을 요구했다. 많이 아픈 듯하여 우선 병원에 다녀올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2시간이 지난 뒤 외출 나간 아이에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전화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6교시가 끝나자, 또 한 명의 아이가 배가 아프다며 찾아와 보건실에서 쉬게 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 아이와 함께 보건실로 갔다. 보건교사는 뚜렷한 증상이 없이 배가 아픈 이유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주요인이라고 하였다. 아마도 다음 주부터 실시하는 중간고사 때문일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들은 지난번 고사 때에도 배가 아프다며 야단법석을 떤 적이 있었다. 평소에는 건강하게 학교생활을 잘하던 아이들이 '고사(考査)' 일주일을 남겨놓고 배가 아프다고 하는 것을 보면 보건교사의 말도 일리가 있는 듯했다.

하물며 어떤 아이는 며칠째 밥을 먹지 못해 위염으로 고생한 나머지 체중이 무려 5㎏이 빠졌다고 하였다. 그리고 야간자율학습에 아이들의 학습태도가 너무 진지해 마치 독서실을 방불케 할 정도이다.

학교사정으로 중간고사 일정(10월 16일∼19일)이 추석연휴 뒤로 미루어진 탓에 아이들은 대부분 "긴 추석연휴를 중간고사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며 넋두리를 늘어놓기도 하였다. 그만큼 아이들이 시험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 대학에 들어가는 2008학년도 대학입시부터 내신 반영이 높아짐에 따라 아이들을 비롯하여 학부모 또한 내신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평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던 아이들도 시험 때가 되면 책을 펼쳐놓고 공부를 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내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

더욱이 수업시간에는 잘 모르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를 알려고 하는 아이들의 질문공세가 이어진다. 그리고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 교무실에는 책을 들고 질문을 하려는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루기도 한다.

무엇보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인 이 가을에 아이들은 독서(讀書)를 통해 마음의 양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대학을 가기 위해 학교 내신을 올리는데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험결과에 가슴앓이를 해야 한다.

결국 지나친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이들의 마음을 멍들게 한다는 것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음으로 인해 아이들은 무언가에 쫓긴다는 생각에 마음의 병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풍요로움 속에서 결실을 다져가는 자연의 가르침을 아이들에게 일깨워 주어야 하지 않을까.

<가을의 기도>

가을 속에는 햇살과 그늘이 함께 있습니다.
투명한 햇살을 받아 빛나는 나뭇잎과 그 아래에서
숨을 죽인 채 나뭇잎의 밝음을 받쳐 주는 그늘이 함께 있는 가을처럼
나를 밝히면서도 남을 빛나게 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가을 속에는 낙엽과 열매가 함께 있습니다.
오늘 사랑을 받는 열매와 다시 땅에 떨어져 내일을 기약하는
낙엽이 함께 있는 가을처럼, 오늘 이루지 못한 일에
실망하지 않고 다음을 기약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가을 속에는 풍요로움과 가난이 함께 있습니다.
곳간을 채운 풍요로움 속에서도 가난한 이웃을 향해
마음을 비우는 가을처럼 생활의 풍요 속에서도 가난한 마음으로
남의 아픔을 헤아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가을 속에는 만남과 이별이 함께 있습니다.
아름다운 만남과 쓸쓸한 이별 속에서도 모두가
성숙해지는 가을처럼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을
똑같이 소중히 간직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가을 속에는 자랑과 겸손이 함께 있습니다.
봄부터 정성을 다하여 얻은 열매의 자랑과 익을수록
고개 숙이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 함께 있는 가을처럼
나의 노력으로 당당해질 때도 늘 겸손한 마음으로
나를 낮추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가을 속에는 감사와 아쉬움이 함께 있습니다.
하늘이 내려 준 은혜에 감사하면서도 부족했던 노력을
아쉬워하는 가을처럼, 은혜에 감사하면서도
나의 부족함을 성실로 채우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2006년 10월 교정에 물든 단풍을 바라보며)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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