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거북이의 '이인삼각' 경기

2006.11.09 13:15:00

‘이인삼각(二人三脚)’이라는 경기가 있다. 비교적 어렵지 않은 게임이지만 둘 사이에 어지간히 호흡이 잘 맞지 않고서는 넘어지기 일쑤인 협동경기다. 대학입시는 마치 토끼와 거북이가 짝을 이루어 벌이는 ‘이인삼각’ 경기라는 생각이 든다.

공교육과 대학 중 누가 토끼고, 누가 거북이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비록 키가 다르고 보폭도 제각각이지만 어깨동무를 하고, 조심스럽게 구령에 맞춰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멀고 먼 레이스다. 뛰다가 걷다가 박자가 엇갈려 필요하면 잠깐 멈추어 함께 “발 바꾸어 가”라는 구령으로 보폭을 맞춘 뒤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달려야 한다. 두 다리를 끈으로 적당하게 묶은 채 둘이 협조해야만 잘 뛸 수 있다는 점에서 공교육과 대학은 이인삼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입시에서의 논술, 구술면접이 교육현장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서울지역 외고 입시 관계자들이 ‘공동 입시문제출제 관리본부’를 설치하여 2008학년도 구술·면접시험 문제를 중학교 교과 과정 수준에 맞추어 출제함은 물론 그동안 공개되지 않아 논란을 빚었던 외고 입시 문제를 전면 공개하기로 했다.

이 같은 결정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논술을 비롯한 대입 전형과 교육 현안 논의를 위해 ‘고교-대학 입시관계자 상호협의회’를 구성키로 한 것과 때를 맞춘 것이어서 큰 의미가 있다. 또한 이는 다른 지역의 특목고 입시 행태에 영향으로 줌으로써 특목고 지망생이 입시지옥에 시달리는 현상을 최소화하는데 다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특목고의 '공동출제관리본부'나 대학의 '입시협의체'는 모두 입시에 출제될 논술이나 구술면접 등의 방향과 난이도 등을 적정하게 조율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대학에서는 대학 홍보를 겸해 앞 다투어 고교 교사들에게 논술 연수를 해주고 아직 준비가 안 된 고교의 논술교육을 대학이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사실 그동안 특목고의 ‘구술·면접’ 이나 대학의 ‘통합 논술’ 문제의 난이도가 지나치게 정규 교육과정을 벗어난 게 사실이다. ‘논리적인 글쓰기’나 ‘창의성’이 아닌 교과에 대한 이해도를 테스트하려는 목적에 치우쳐 학생들을 또 다른 사교육 시장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터다. 오죽하면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마저 “나한테 서울대 논술을 풀라고 해도 자신이 없다”고 말했겠는가.

대학에서는 “통합 논술은 결코 절대로 암기 과목이 아니며, 별도의 논술과외가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학생들은 이를 믿지 않고 계속 논술 학원으로 몰리고 있다. 당연히 대학이 요구하는 대답을 알아서 ‘교수님’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때 아닌 논술 사교육 열풍이 일자 서울대 총장이 나서서 “서울 강남의 논술학원에 의존한 학생들이 좋은 점수를 못 받도록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가 하면 급기야는 교육부총리까지 대학이 논술고사 출제 때 고교 교육과정 수준을 준수해달라고 요청하는 웃지 못 할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칼자루는 대학이 잡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서울의 외고들이 ‘공동출제관리본부’를 설치하여 난이도를 중학교 교과 과정 수준에 맞게 구술·면접시험 문제를 공동 출제한다거나 대학이 고교 교사들과 함께 ‘논술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한 것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간, 고등학교와 대학 간의 논의 창구가 만들어진 것이어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둘이 협조해야만 걸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인삼각과 같은 공교육과 대학 모두 한 발만 뒤로 물러서 바라보면 문제는 비교적 간단하다. 특목고는 중학교 교과 과정을, 대학은 고교 교과 과정에서 크게 벗어난 문제를 출제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중고등학교에서는 대학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기르기 위해 교과 과정 내에서 차근차근 준비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공교육과 대학이 함께 사는 길이다.
김은식 충북영동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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