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는 토론수업 안 해요?"

2006.11.23 14:19:00

요즈음 일선 학교마다 논술 때문에 비상 아닌 비상이 걸렸다. 불과 한 해 전만 하더라도 방과 후 학교 때문에 온 학교 현장을 떠들썩하더니 그것도 제대로 정착도 되지 않은 채 논술로 일선 중·고등학교뿐만 아니라 초등학교까지도 혼란에 휩싸이고 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소수의 아이들만이 준비하던 논술이 특정 대학 입시에 결정적인 것으로 떠오르면서 초등학생들마저도 논술에 열풍에 휩싸이고 있는 실정이다. 일선 교육청에서는 갑작스럽게 일고 있는 논술 열풍을 잠재워야 한다는 의무감에 교사들을 대상으로 연수를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하는 우리 교육행정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갑작스러운 논술 열풍에 당황하고 있다. 특히 통합논술이라는 이름으로 탈 교과를 지향하는 모양새의 진의에 자못 의문들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몇 십 년을 현장에 있었지만, 요즈음 같이 정책들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져 교육현장을 혼란케 만든 적은 없었던 것 같아.”
“맞아요, 무슨 교육정책 경연장도 아니고,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교육정책들로 학교 현장이 쑥대밭이 되어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야.”
“논술도 그래요, 통합논술이 대입의 중요 변수로 등장하면서 하루아침에 논술 연수로 교사들을 옭아매어서 교육시키겠다는 발상은 정말로 교육의 ‘교’자로 모르는 사람들의 발상인 것 같아.”

“몇 십 년을 글 한번 써보지 않은 사람이 몇 시간 연수 받아 논술을 지도해야 한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발상인지. 논술 연수를 하려면 제대로 하던지…”
“논술이 무슨 조립기술 배우는 것도 아니고…”
“수십 수백 명의 교사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연수를 한다하니 거기에 드는 돈도 장난 아니겠지.”

대다수의 선생님들은 일회성 논술 연수가 정작 아이들의 논술지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일회성 논술 연수가 자칫 막대한 인적, 물적 낭비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우려스러운 목소리를 내 놓기도 했다.

선생님, 토론 수업해야 논술 실력이 향상되는데요!

통합논술에 대한 대학들의 다양한 입시 전략 홍보와 교육행정 당국의 발 빠른 시행 전략이 일선 학교 현장에도 이미 알려지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아이들도 논술에 대한 섣부른 기대를 가지고 접근하려고 한다. 대중매체를 이용한 일부 학원들의 상술도 우리 아이들을 혼란케 만드는 주요 요소 중의 하나이다.

“선생님 우리도 토론 수업해요.”
“무슨 갑자기 토론 수업이고, 교과서도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서 무슨…”

평소에 공부라고는 죽어라 하지 않는 한 아이가 대뜸 수업 시간에 토론 수업을 하자는 말에 의아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선생님 수업 시간에 토론을 자주 해야만 논술 실력이 향상될 것 아닙니까?”“왜 논술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은데?”
“아이, 선생님도 그래야 좋은 대학 갈 것 아닙니까.”

듣고 있던 많은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으면서도 그 아이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끼는지 몇몇 아이들은 맞장구를 치지도 했다.

“좋은 대학을 가고 안 가고는 무조건 논술이 결정하지는 않는다. 평소에 얼마나 교과 공부에 신경을 쓰느냐에 있지, 너처럼 공부는 죽어라 하지 않으면서 논술 타령만 해서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선생님 그래도 토론 수업을 해야 논술 실력이 향상될 건데…”

평소에 진중하게 공부하는 아이였다면 그래도 이해가 갈 건데, 공부에는 거의 벽을 쌓고 사는 아이인줄만 알았던 아이가 갑작스럽게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아이에게 면박을 준 점에 대해서는 미안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사교육 시장을 조장하겠다는 것인지…

많은 아이들의 생각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한 그 아이의 말에 교사로서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얼마나 논술교육이 과대포장 되었으면 공부에 관심조차 없는 아이들도 저런 말을 할까 싶어 우리 교육 현실이 서글프기까지 했다.

비단 논술교육 뿐만 아니라 최근의 방과 후 교육, 그리고 교원평가 등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교육정책들이 비단 학교현장을 제대로 파악하고 진행시키고 있는 건지 날이 갈수록 의문만 더해 갈 뿐이다. 도대체 공교육을 살리자고 하는 건지 아니면 사교육 시장에 공교육을 통째로 팔아먹겠다는 건지…

벌써부터 논술교육으로 사교육 시장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고 한다. 오죽 했으면 모국어 습득도 제대로 되지 않은 아이에게 마저도 논리니 뭐니 하면서 논술이 중요하다고 들이대는 꼴을 보면 이 땅에서 교사로서 정말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학교와 교사가 제대로 되어야 이 나라의 교육이 제대로 산다고 떠들고들 있고, 심지어는 철밥통을 안고 무능하게 학교 현장을 사수하겠다는 것으로 이 나라의 교사들을 매도하고 있는 수많은 목소리들을 듣고 있으면 분명 교사인 내가 뭔가를 대단히 잘못하고 있는 듯 한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논술 교육은 분명 필요하다. 아니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살려 내고 드러내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논술교육에 접근하는 교육행정과 대학의 입시 담당자들에게서 그런 생각의 단초는 전혀 찾아낼 수 없다.

과연 누구를 위한 논술교육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우리 곁에 있지만, 자꾸만 그런 쉬운 삶의 진리조차도 돈과 권력에 멍들어 갈 수밖에 없는 우리 교육현장의 모습에서 우울한 우리 교육의 한 풍경이 그려 질 뿐이다.
서종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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