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의 계절과 ‘기러기 가족’

2006.12.01 19:27:00

먹잇감이 부족하고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이 되면 새들은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따뜻한 곳으로 이사를 가거나 살던 곳에서 힘겹게 버텨야 한다. 이사하기로 결심한 ‘철새’는 배고픔과 추위와 사투를 벌이며 수천㎞를 날아야 하는 '위험한 모험'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겨울 철새인 기러기는 시베리아, 사할린, 알래스카 등지에서 날아와 월동하다가 봄이 되면 다시 돌아간다. 시베리아 등지에서 새끼를 기르다가 더 추워지면 새끼를 부양할 수 있는 먹이가 점점 부족해지기 때문에 먹이가 풍부한 남쪽으로 이동하여 따뜻한 겨울을 나고 새끼들이 다 자란 후에는 가족을 이끌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겨울방학을 앞둔 요즘 학생과 학부모를 겨냥한 각종 어학캠프, 교환학생프로그램, 조기유학 등 겨울방학 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루면서 비교적 유복한 가정이 모여있는 우리학교에도 유학을 준비하거나 단기 어학연수를 떠나는 학생이 줄을 잇고 있다.

‘철새의 계절’에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희대의 교육 모델 ‘기러기 가족’이 늘고 있다. 최근에는 유학이나 어학연수 인원의 급증은 물론 대상 국가도 미국 위주에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동남아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본래 ‘기러기가족’은 아이와 어머니가 해외로 유학을 떠나고 아버지가 국내에 홀로 남아 이들을 뒷바라지하는 ‘기러기 아빠’가 원조이지만 이제는 ‘기러기 엄마’, ‘기러기 자녀’ 등 이산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졌다.

엄격히 말하면 기러기도 새끼를 위해 먼 곳으로 이동하는 고달픈 철새의 길을 택한 것이지만 자녀 때문에 가족이 서로 헤어져 살아야 하는 우리나라의 ‘기러기 가족’과는 다르다. 기러기는 새끼를 낳아 다 자라기를 기다려 모든 가족이 함께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러기와 같은 철새 사회에서는 ‘기러기가족’이 양산한 ‘기러기 아빠의 죽음’, ‘기러기 엄마의 불륜’, ‘기러기 자녀의 부적응’ 등으로 인한 가족해체의 부작용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기러기 가족’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다양하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 학벌에 대한 불안과 한(恨), 국내 학습부적응과 사교육비 문제, 부모의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 주위에서 늘어가는 기러기가족 현상에 대한 심리적 동조현상, 일류대학 진학을 통한 부모의 대리만족 심리, 정부의 영어과잉 정책 등이 그 원인이다. 여기에다 ‘일단 한국을 떠나자’, ‘여기보다는 낫겠지’, ‘설마 어떻게 되겠지’ 하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까지 겹쳐진 ‘기형아’다.

외국어 능력이 절대적인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해외로 나가 다양한 문화권의 학문과 외국어를 배우고자 나가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시대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결코 옳지도 않다. 다만 일찍부터 외국에 나가 다양하게 교육받고 훗날 큰 보상을 받겠다는 ‘무지갯빛 기대’에 반하여 감내할 노력과 고통의 대가가 너무 모호하고 막연하다는 것이다.

철새 기러기도 새끼를 데리고 서식지를 이동할 때가 일생에서 가장 위험한 모험이라고 한다. 일등 지상주의와 과열된 교육열, 자식에 대한 유별난 애착이 낳은 ‘기러기 가족’이 우리사회의 총체적 비극으로 이어지는 위험한 모험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김은식 충북영동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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