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6-타고르 생가 방문

2006.12.26 14:37:19


2005.1.8토 밤 9시 45분

오늘은 완전히 혼자 캘커타를 여행했다. 아침에 일찍 깼다가 다시 잠이 들어 9시 30분에 깼다. 제일 먼저 Tagore House엘 가고 싶다. 토요일 Tagore House는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개관이다. 지하철을 타고 Girish Park역에서 내려 20여분 걸어갔더니 Tagre House로 들어가는 Gate가 보였다.

300여년전에 동인도 회사가 캘커타로 옮기면서 발전하기 시작하여 식민지 시절 인도의 수도가 되었던 캘커타는 London 다음가는 번영을 누렸다고 한다. 1772년에서 1912년까지 140년동안 인도의 수도로서 번영을 누렸던 캘커타는 지식인계층이 민족주의적 경향을 띄자 그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영국 정부의 일련의 조치가 취해졌다. 수도는 뉴델리로 옮겨지고 뱅갈주는 분할되었다. 더욱이 인도 독립 후 East Bengal 이 동파키스탄(지금의 방글라데시)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난민사태가 발생하여 부귀영화는 막을 내리고 도시는 급격히 쇠락하였다.

타고르 하우스 인근도 마찬가지다. 길바닥에 쓸어져 잠든 엄마 옆에 두세 명의 젖먹이 아이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매달려있는 모습은 여기저기에 흔하다. 죽은 듯 먼지를 뒤집어쓰고 길바닥에 누워있는 사람들. 저들은 어떻게 하루의 끼니를 때우며 연명하는 것인가. Tagore House로 들어서니 정원이 있고 저만치 타고르의 흉상이 보인다. 타고르의 흉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50루피를 내고 건물의 내부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내부는 타고르기념관으로 꾸며져 많은 자료가 전시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타고르가 뛰어놀던 거실이 있고 타고르가 임종한 방엔 병석의 79세 타고르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영국 유학시절의 젊은 타고르의 사진엔 콧수염도 없다. 아내 Debi의 사진도 있다. 일본 중국 태국 미국 러시아 독일 싱가포르를 방문했을 때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아내가 1901년 죽고 1903년엔 딸, 1905년엔 둘째 아들, 1907년엔 아버지를 잃는 불운이 닥쳤다. 1912년 자기가 쓴 시를 영국 사람들에게 낭독했을 때 그들이 너무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스스로 번역한 시를 Gitanjali(Song offering)란 시집으로 출간하게 되었고 그 이듬해 타고르는 동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타고르 하우스에는 시인이 입던 옷 그림을 그리던 이젤, 화구도 전시되었는데 타고르는 작곡도 많이 했고 말년에는 그림에 심취하여 많은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아내가 쓰던 부채며 화장품도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다. 3층엔 아버지인 철학자 Devendranath Tagore의 사진과 유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Tagore House는 타고르의 고향집이다. 이 건물에 Rabindra Bharati University가 붙어 있는데 타고르의 예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대학이라고 한다. 건물의 상당부분이 페허인채로 남아 있고 일부 건물에서 음악 등 예체능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예술을 가르치는 소규모 대학이었다. 마침 토요일이고 이른 시간이어서 학생들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대학건물로 들어갔을 때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건물은 몹시 낡았으나 학생들은 발랄하고 활기에 넘쳤다. 나는 입학 절차와 학비, 커리큘럼 등을 알고 싶었는데 직원들의 영어가 시원치 않아 의사소통이 잘 안되었다. 나는 별 도움이 안되는 한 장 짜리 팜플렛 하나를 얻었는데 5루피를 받으며 영수증을 떼어 주는 것이 아닌가. 홍보책자 하나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은 대학 사무실이 인도의 비참한 교육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인도에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영수증 제도가 철저하다는 것이다. 3루피 4루피를 내고 버스를 타도 영수증은 꼭 끊어주는 것이다. Tagore의 여러 사진을 보고 나는 감동을 느꼈다. 타고르의 생존시에도 캘커타는 이렇게 지저분하고 가난했을까. 캘커타의 번영과 쇠퇴를 모두 체험했던 타고르가 아니었을까. 사진 자료 중엔 거리에 쓸어져 있는 두 빈민을 동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타고르의 사진도 한 장 있었다. 그는 세계적 영적 스승임에 틀림 없다. 나는 저번에 샀던 책을 들춰봤다. 다음과 같은 구절도 있었다.

ⅩⅩⅩ

The sunshine greets me with a smile
The rain, his sad sister, talks to my heart.
햇빛은 나를 미소로 맞이하고
그의 슬픈 누이동생, 빗방울은 내 마음에 속삭이네.

ⅩⅤⅠ
I do not ask thee into the house.
Come into my infinite loneliness, my lover.
나는 그대에게 나의 집으로 오라하지 않네.
나의 무한한 고독 속으로 그대 오게나, 애인이여.

ⅩⅠⅤ
The road is lonely in the crowd, for it is not loved.
길은 군중 속에서 외롭네, 사랑받지 못하기 때문에.

참고사항)
o 중국 식당의 음식가격: 45루피~ 100루피
o 간이화장실(남자용): 도로를 향해 3면을 벽돌로 쌓아올렸다.
o 빅토리아 메모리얼의 정원: 꽃이 많이 낯익다. 사루비아, 백일홍, 국화, 장미, 금송아 등이 우리나라 꽃밭을 보는 것 같았다. 미국의 꽃들은 낯설었다.
o 과일이 낯익다: 배, 사과가 맛과 모양이 비슷한데 작고 맛이 덜 좋다.대추는 한결 크고 맛도 좋다. 도마도 바나나는 싼데 도마도는 우리나라보다 작다. 오렌지는 미국산 오렌지와 비슷한데 맛은 제주산 감귤에 가깝다. 파파야, 망고, 파인애플, 찌꾸는 감자처럼 생겼는데 맛은 감맛이다. 포도는 우리나라 캠벨 포도와 같은 것이 있고 길죽 길죽하고 껍질이 더 두꺼운 독특한 맛의 포도가 있는데 비교적 비싸며 검은색 포도와 청포도가 있는데 검은색이 약간 더 비싸다.
o 매우 드물게 애완견이 보인다.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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