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여행13-임종의 집 사오일째

2006.12.28 11:29:03


2005.1.17 월

날씨가 많이 더워졌다.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 마더하우스까지 걸어갔다. 경건한 마음으로 미사 예절에 참례했다. 지난 번과 똑같은 일정이 진행되었다. 다시 깔리 가트 임종의 집으로 갔다. 빨래를 하나씩 체크하여 변이 묻어있는 것은 따로 물에 넣어 헹궈 변을 제거해야 한다. 나머지 빨래는 다른 통에 넣고 비누를 풀어 빨아야 한다. 목욕탕엔 연실 따뜻한 물을 길어다 부어야 한다. 아무리 서둘러도 손이 딸린다. 물 데우는 솥에도 계속 물을 날라다 보충해야한다.

서양인들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헌신적으로 봉사에 몰두했다. 서양의 두 할머니가 매일 중증환자의 환부에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고 다시 붕대로 싸매는 일을 도맡아 했다. 하는 일이 너무 능숙해서 평생을 의사로 살다가 이제 늙어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짐작해볼 뿐이었다. 칠십은 되었을 서양 할아버지도 매일 나와 궂은 일을 도맡다시피 하는 것을 보고 그들의 일상화된 봉사정신을 보는 것 같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시간이 금세 가는 것 같다. 12시쯤 되어 봉사활동을 끝내고 비비디박에 있는 기차 예약 사무소로 가서 바라나시 행 기차를 예약했다. 295루피. 여행사 수수료가 없으니 발품 판 것을 보상받았다고나 할까.

2005.1.18 화

오늘 5일째 봉사활동을 했다. 오늘까지만 할 예정이다. 변을 싸고 뭉개고 있는 환자의 상체와 하체를 한꺼번에 들어 안고서 목욕실로 옮겨 목욕을 시키고 빨래를 하나하나 체크하여 따로 따로 통에 담았다. 약을 타다 먹이고 빈 밥그릇을 나르고 소변을 받아내고 .... 그러는 동안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했다. 어머니 병석에 누워계실 때 설마 돌아가실 것을 예상 못하고 어린애처럼 어머니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으니 이 불효를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 어머니 돌아가시고 이렇게 사무치게 어머니가 그리울 줄을 잠작이나 했었던가.

수녀님께 얘기하고 병실 내부사진을 찍을까 하다가 찍지 않기로 했다. 한국인 봉사자들이 여전히 많다. 오늘은 치악산 자락의 어느 절에 계시다는 비구니 스님도 임종의 집에서 봉사했고 대구의 한 의과대학 여학생은 한 달동안 학교 수업 실습 과정으로 매일 봉사를 하고 있다. 어제는 기차표 예매소에서는 중국과 동남아를 거쳐 들어왔다는 한국의 대학생도 만났다. 저렴한 비용 때문에 한국 학생들이 동남아 여행을 선호하는 것 같다.

오늘 봉사활동을 마치면 바라나시로 출발할 것이다. 바라나시는 가장 인도적인 도시라 하지 않는가. 봉사를 마치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오전 내내 바쁘게 움직였더니 피곤했던지 한시쯤 와서 침대에 누었는데 깜빡 잠이 들었다. 2시 30분쯤 게스트 하우스 사장을 만나 이러이러하여 오후 8시까지 하우라 역에 가야한다. 방에서 좀 쉬었다가 5시쯤 출발해도 되겠느냐고 하니까 하루 숙박료 150루피를 더 내야 한단다. 7일이나 묵었는데 몇 시간 머물 수 없느냐고 해도 막무가내다. 12시가 check out 시간이니까 하루치 숙박료를 더 내야 한단다.

한참 말다툼을 하다가 그럼 지금 나가겠다 하니 100루피를 더 내란다. 100루피를 주고 짐을 싸들고 나왔다. 사장이라는 사람은 그동안 한번도 못본 사람이었다. 그동안 종업원들만 낯익었지 사장은 오늘 처음이다. 종종 이렇게 상당히 계산적이고 까다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인터넷 방에서 한 여자 주인이 빡빡하게 시간 계산을 해서 돈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엄격하게 원리원칙을 적용하는 것이겠으니 내 경험부족이랄밖에 없다.

여관을 나와서 인터넷 방에 들러 시간을 보내다가 생각하니 타올을 여관에 놓고 왔다. 언짢았던 마음도 달랠 겸 다시 여관으로 갔다. 그 고집불통의 사장은 보이지 않았다. 타올을 다시 배낭에 넣고 의자에 앉아서 3명의 종업원들과 한참 애기를 나누었다. 종업원들은 사장더러 Bad man(나쁜 사람)이라며 내 편을 들어주었다. 나는 I can understand him.(나는 사장을 이해해)라며 섭섭했던 마음을 풀었다.

그들과는 여러 장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Makerbeer라는 아이가 사진을 꼭 보내달라며 주소와 이름을 적어줬다. 나는 사장 때문에 기분이 상했던 것을 종업원들과의 격의없고 유쾌한 대화로 말끔이 씻어내고 오후 6시 30분 바라나시로 떠나기 위해 하우라 역으로 출발했다.

최일화 시인/2011.8 인천남동고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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