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인터넷 매체에서 내가 쓴 글을 읽은 후배가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메일을 보내왔다. 대전에 살던 후배는 지리산 노고단 밑 성삼재에서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 버스 종점까지 11시간이 넘게 종주할 만큼 산이라면 정말 미쳐 돌아다녔던 국내에서의 생활을 회고했다. 또한 차로 9시간을 달려도 끝없이 지평선만 나타난다는 뉴올리언스에서 우리나라의 산을 그리워했다.
우리나라에는 산이 많고 후배가 꿈에 그리워하듯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늘어선 연봉들이 우리 산하를 더 아름답게 한다. 슬기로운 옛 사람들은 산에 구불구불 고갯길을 내며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냈고, 고개마다 여러 가지 사연들이 역사를 만들고 있다.
청주에서 회인을 경유하여 보은으로 가는 국도(25번)에 두 개의 고개가 있다. 하나는 청원군과 보은군의 경계에 있는 피반령(피발령)이고, 다른 하나는 회북면과 수한면의 경계에 있는 수리티재다.
이 두 고개의 이름은 조선시대 오리 이원익 대감과 경주호장 때문에 지어졌다고 한다. 오리 대감이 경주목사로 부임할 적에 청주에 도착하니 경주호장이 사인교를 갖고 신임 사또의 마중을 나와 오리 대감이 그 사인교를 타고 임지인 경주로 향하였다. 때가 음력 6월인지라 그냥 걸어가기도 힘든데 가마를 메고 가는 사람들은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그때 경주호장은 키 작고 볼품없는 오리 대감을 놀려줄 생각으로 고개 밑에 이르렀을 때 "이 고개는 삼남지방에서 제일 높은 고개인데 만약 이 고개를 가마로 넘으시면 가마꾼들이 피곤해 회인에서 3∼4일은 유숙하여야 합니다"라고 오리 대감께 아뢰었다.
걸어서 고개를 넘던 사또가 호장이 뒤에서 웃는 것을 보고 호장의 장난임을 알아차렸다. 화가 난 사또가 "나와 너는 신분이 다르거늘 어찌 걸어서 넘으려 하느냐"면서 호장에게 무릎으로 기어 넘도록 했다. 호장의 무릎은 온통 피로 물들었고 피발이 된 호장 때문에 그 고개를 피반령(피발령)이라 부르게 되었다.
회인에서 하루를 쉬고 보은으로 가는 도중 다시 험한 고개에 다다르게 되었다. 또 다시 기어 넘을 것이 무서운 호장이 나무로 수레를 만들어 오리대감을 사인교에 태운 후 고개를 넘었다. 그때 수레로 넘었다는 고개가 수리티재다.
피반령은 역사적 사실만큼이나 고갯길이 험해 대형교통사고 등 각종 사고가 많았던 곳이다. 그래서 청주 인근의 사람들에게는 달갑지 않은 지명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로 확ㆍ포장 공사가 잘 되어 있어 드라이브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4월 중순경부터는 산벚꽃이 피반령을 한 폭의 수채화로 만든다. 산 아래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모롱이를 돌 때마다 산벚꽃이 만든 풍경과 이름모를 꽃들이 내뿜는 꽃향기에 감탄을 한다. 때가 되면 제 할 일을 하는 자연의 섭리도 깨우친다.
요즘 피반령 정상 공터에 새로운 명물이 등장해 발길을 붙든다. 예전에 있던 간이음식점을 군청에서 철거한 자리에 박흥운님이 1년이 넘게 심혈을 기울여 만든 괴목공원이다. 산속에서 방치되고 있던 죽은 나무들이 박흥운님의 손길을 거쳐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구불구불 고갯길에 괴목들이 어울리기도 하고, 작품마다 다양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찾는 이들이 많은데 비해 괴목공원의 부지사용이 불법이라 주차할 곳이 없다. 공터로 방치하기보다는 아주 괴목공원으로 활성화 시키는 게 좋을 듯싶다. 구경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주차공간을 마련해주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시내버스] 청주와 회인을 오가는 시내버스가 가끔 있다.
[자가용]
1.청주 - 고은삼거리(직진) - 가덕 두산삼거리(공원묘지방향 우회전) - 피반령고개
2.보은 - 수한사거리(회인방향) - 동정저수지 - 수리티재 - 회북면(회인) - 피반령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