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에서 매일 남도의 봄소식을 전해주며 유혹하는데 집안에 틀어박혀 있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꼭 참석해 축하해야할 결혼식이 있었지만 미리 답사에 참석하기로 약속을 했었기에 한남금북정맥 2구간 답사 출발지인 흥덕구청으로 향했다. 흥덕구청과 가까운 실내체육관과 공설운동장 앞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붐비고 관광차들이 주차장을 만들었다.
약속시간에 늦는 것이 싫어 김밥 집과 슈퍼를 동동거리며 다녔고, 어머님을 모시고 교회에 가야하는 아내의 시간까지 빼앗으며 왔는데 출발시간이 한참 남았다. 늘 그렇듯 송태호 대장과 김소장님을 비롯해 먼저 온 사람들이 드문드문 시민회관 앞을 지키고 있다. 아직 사람들과 사귀지 못한 탓도 있지만 오늘도 새로운 사람들이 많다.
아뿔싸, 아내가 집에 도착했을 시간인데 그제야 카메라를 차에 놓고 내린 걸 알았다. 지나온 여정을 글로 남기고 있는 내가 답사를 떠나면서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으면 군인이 전쟁터에 나가면서 무기를 가겨가지 않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것을 아는 아내도 전화를 받자 약속된 장소로 카메라를 가지고 나왔다.
1구간의 종착지이자 2구간의 출발지인 법주리는 차로 1구간 출발지였던 피반령을 지나야 한다. 차가 구불구불 피반령을 오르기 시작하자 누군가 도로를 확ㆍ포장하기 전 한번에 수십 명이 인명피해를 입었던 대형교통사고를 얘기했다. 하지만 나는 봄이 되면 피반령을 아름답게 수놓는 산벚꽃을 떠올렸다.
4년 동안 이 고갯길을 넘으며 나는 너그러워야 더 아름다운 인생살이를 배웠다. 차로 넘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터덜터덜 혼자 고갯길을 걸으며 오동저수지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과 한가로운 사찰의 풍경도 내려다봤다. 구불구불 고갯길에 숨어 있는 사연들은 얼마나 많을까도 생각해봤었다.
고석리와 쌍암리를 지나 양지말과 연결되는 쌍암재에 도착했다. 등산로 입구에서 송태호 대장을 대신해 이감섭님이 회원들에게 법주리 주변의 지형과 지명을 자세히 안내했다. 법주리와 가덕면 내암리를 연결하는 갈림길까지는 한참 오르막길을 걸어야 한다.
산중턱의 쉼터에서 송태호 대장이 한남금북정맥은 ‘한강의 남쪽과 금강의 북쪽 정맥’을 뜻한다는 것과 출발지인 법주리와 법주산이 이름은 같지만 서로 연관이 없음을 설명해줬다. 이렇게 산행을 하면서 평소 궁금했던 것을 알아낼 수 있으니 청주삼백리 답사는 의미가 크다.
여행이나 답사를 하면서 무작정 걷기만 한다면 얼마나 힘이 들까? 집 떠나면 받아들일 게 많다. 마음을 열고, 몸으로 느끼고, 귀는 열어야 한다. 세상을 포용하며 감싸 안고, 새싹이 움트는 자연과 하나 되고, 자연의 소리뿐만 아니라 일행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며 나를 되돌아본다. 나보다 연배인 어른들이 보리밥마저 마음대로 싸갈 수 없었고, 조회나 종례시마다 수업료 납부를 독촉 받던 가난한 시절을 얘기한다.
이 길을 지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산등성에는 낙엽들이 지천이다. ‘사각~ 사각~, 바스락~ 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가 듣기 좋다. 빛바랜 낙엽 속에 갇혀 있던 가을이 이제야 밖으로 튀어나오며 제철을 맞이한다. 거금을 투자해 등산화를 샀건만 아직 새것이라 불편해하던 발이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 제법 쿠션이 있는 낙엽을 만나 날개를 달았다.
604m의 청남산 정상에 도착했다. 몇 년 전만해도 무명의 산이었는데 송태호 대장이 청주의 남쪽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는 의미에서 청남산이라 이름 붙였다. 누군가 베어 놓은 잡목들이 볼썽사납게 방치되고 있다. 이구동성으로 청원군의 무관심을 질타했다.
어느 때건 먹는 순간이 제일 즐겁다. 평지를 만나기 어렵다보니 미끄러지지 않도록 엉덩이만 걸칠 수 있는 곳이면 된다. 오순도순 앉아 점심을 나눠 먹는 풍경도 아름답다.
여자회원 몇 분이 나무 앞에서 꽃을 관찰하고 있다. 열심히 꽃을 카메라에 담고 있던 여자회원은 몇 년 전부터 보고 싶어 했던 꽃이라며 좋아한다. 여리지만 화사하게 꽃을 피운 나무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고 관상용으로 정원에 주로 심는다는 올괴불나무란다. 자연에 관심이 많은 여자회원에게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쪽동백, 층층나무 등 여러 가지 나무에 대해 설명을 들은 것도 큰 수확이었다.
언덕을 내려오니 청원군 낭성면 추정리와 보은군 내북면 화전리를 연결하는 옛길의 윤곽이 그대로 살아있는 살티재다. 지금은 오가는 사람이 없어 나무가 우거지고 있지만 60년대에는 보은과 상주 사람들이 청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단다. 성황당 역할을 했던 돌탑이 외롭게 고갯마루를 지키고 있어 지나는 사람들마다 돌을 던지며 가족의 안녕을 빌었을 옛날이 떠오른다.
587m의 국사봉 정상은 헬기착륙장이 있어 쉼터로도 손색이 없다. 이곳을 출발한 후에도 몇 번 더 언덕을 오르내리니 오늘 처음 참여한 사람들은 힘이 드나보다. 누가 아이들 말을 빌려 오늘은 ‘빡시다’고 한다. ‘산 넘어 산’을 외치는 사람도 있다.
주변의 산들이 이곳에서 제일 높다는 청남산 상봉과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그런 산들을 여러 개 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너무 밋밋하면 재미도 없고, 우리 지역의 산줄기를 직접 걸으면서 느끼는 답사이기에 이정도 고생은 감수할 수 있다.
산등성이 아래로 오른편에는 보은 한화공장이 왼편에는 낭성의 낭추골 썰매장이 보인다. 산위에서 꽃망울을 터뜨리며 봄맞이를 하고 있는 진달래 등을 관찰하며 걷다보니 종착지인 추정재가 나타난다.
청주삼백리는 회원들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모임이다. 회원 중 한명이 차안에서 모자를 들고 한바퀴 돈다. 답사에 참여한 어른들은 의례 만원씩 모자에 넣는 것을 알고 실천한다. 모자 속의 돈이 그날의 차비를 해결하고 때로는 공동경비로 사용되니 불만이 있을 리도 없다.
좋은 뜻으로 모인 모임이지만 아직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참석자가 적다. 그저 묵묵히 청주삼백리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날을 기다린다. 그런 날이 빨리 이뤄지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