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이겨야 하는 싸움을 걸었다

2007.03.28 14:06:00

부족한 게 많아서인지 지나간 일을 돌이켜보면 가끔 죄를 짓고 산다. 작년에도 그랬다. 그동안 여러 번 해온 일이라고, 어쩌면 나이를 더 먹었다고 처음 부임한 학교에서 교무부장을 맡겼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관리자와 교사들 사이에서 중간역할을 하다보니 맡은 반 아이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어느 직장이든 가장 중요한 것이 직원분위기다. ‘직원분위기가 좋으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일의 능률이 결정된다.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게 사람이라 분위기가 좋으면 능률은 저절로 오르게 되어 있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공부하는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본의 아니게 맡은 일이지만 교무부장에게는 가끔 전교 어린이들을 통솔하고, 직원분위기를 즐겁게 해야 할 책무가 지워져있다. 아이들 중에는 가정이나 학교에서 배운 대로 예의 바르고 착하게 행동해 칭찬받을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개중에는 거슬리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며 잔소리를 듣는 아이도 있다.

내가 맡은 반 아이들도 돌볼 일이 많은데 전교생을 상대하다보면 힘이 부친다. 사사건건 일을 저지르는 아이도 힘겹겠지만 눈치마저 없는 아이를 만나면 짜증도 낸다. 그래서 ‘칭찬은 약이 되고 잔소리는 독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 때로는 모질게 잔소리를 하고 만다.

물론 같은 잘못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화가 치밀었지만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대부분의 아이들은 낳아준 부모든 가르치는 교사든 간섭하고 구속하면 불만을 털어놓으면서 좋아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어른들이 ‘눈 감고 귀 막아야 편하다’는 얘기를 해도 부끄럽지 않은 세상이다.

그냥 내버려 둘 것을 요구하는 아이나 부형을 만날 때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들마저 같을 수는 없다.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도 못 본 척 한다면 교육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왜 나만 그럴까만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을 바르게 가르치는 일이라면 방관자가 될 수 없어 호기를 부린다.

사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고 말이나 행동을 앞세우고 후회도 한다. 그래도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라면 어디서나 통하고, 철부지들이지만 결국은 이해할 거라고 믿는다. 근무하는 학교마다 화합에 앞장서고 순리대로 풀어가도록 심적으로 힘을 주는 직장의 동료들이 후원자다.

올 3월 분교로 와 2학년을 맡으면서 새로운 다짐을 했다. 아이들의 수가 적으니 개개인에게 더 많이 정을 주고, 학원 등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는 아이들이니 같이 보내는 시간을 더 많이 하고, 분교라는 환경 때문에 움츠러든 아이들이니 더 많이 사랑하면서 용기나 사기를 키워주자는 것이다.

특히 기초학습능력이 부족한 아이와는 끈질기게 싸움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첫 만남에서 바로 아이에게 누가 이기나 보자며 싸움을 걸었다. 열심히 가르칠 테니 매일 남아서 선생님과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를 잘하게 되면 열심히 노력한 네가 이기는 것이고, 변화가 없으면 너를 제대로 공부시키지 못한 선생님이 이기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아이에게 물었다.

“너와 선생님 중에서 누가 싸움에 이겨야하겠니?” 
“선생님이요.”

친구들에 비해 학습 능력이 부족할 뿐 순진한 아이는 선생님이 이기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나보다. 물론 아이가 나를 이겨야 하는 싸움이기도하고, 내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달라붙어야 아이가 이길 수 있는 싸움이다.

아직은 시작단계라 승부를 단정 짓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안다. 분명 아이가 이길 것이다. 올 한해를 마무리 할 때 내 마음이 편하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아이들 앞에서 칭찬을 하며 사기도 키워주고, 열심히 할 때는 사탕을 쥐어주며 사랑도 표현한다.

요즘 아이들이 돌아간 빈 교실에 둘이 앉아 늦게까지 싸움을 한다. 그러면서 공부를 못한다는 것 때문에 자신이 없는 아이가 현재를 훌훌 털어내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는 날을 기다린다. 어쩌면 아이에게 져서 기분이 좋은, 그래서 나를 죄인으로 만들지 않는 싸움의 결과가 나를 즐겁게 할 것이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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