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군 송면에서 동북쪽으로 약 2km에 걸쳐 펼쳐지는 선유구곡은 우리 가족에게 추억거리가 많다. 아내가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곳이 선유구곡을 품고 있는 관평리 옆 삼송마을이고 청천면은 어른들의 산소가 있어 자주 찾는 곳이다. 그래서 전국을 여행 중인 내가 좋은 계곡으로 자신하고 소개할 수 있는 곳이 청천면에 있는 화양구곡과 선유구곡이다.
선유구곡은 골짜기의 규모가 작지만 맑은 물과 계곡에 놓여 있는 기암들이 아름다워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이웃하고 있는 화양동이 남성적인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데 비해 선유동은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중환은 선유구곡을 봉우리가 평평하나 골이 깊은 계곡이라며 <택리지>에 화양구곡과 함께 '금강산 남쪽에서 으뜸가는 산수'로 소개하고 있다. 또 화양구곡이 우암 송시열의 유적이 많은 데 비해 선유구곡은 퇴계 이황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이 7송정(송정부락)에 있는 함평 이씨 댁을 찾았다가 산, 물, 바위, 노송 등이 잘 어우러진 선유구곡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9달을 돌아다니며 9곡의 이름을 짓고 글자를 새겼다고 전해진다.
선유구곡은 백 척이 넘는 높은 바위 사이에 여러 구멍이 방을 이루고 있는 제1곡 선유동문(仙遊洞門), 높이가 수백 척인 절벽의 바위 층이 첩첩을 이루며 하늘의 지붕처럼 길게 뻗어 있는 제2곡 경천벽(擎天壁), 기암절벽이 하늘로 치솟고 그 사이로 들어선 소나무에 푸른 학이 둥지를 틀었다는 제3곡 학소암(鶴巢岩), 위가 평평하고 가운데 절구처럼 패여 있는 곳에서 신선들이 금단을 만들어 먹고 장수하였다는 제4곡 연단로(鍊丹爐), 용이 물을 내뿜듯 쏟아내는 물소리가 벼락 치듯 하고 흩어지는 물안개가 장관을 이룬다는 제5곡 와룡폭(臥龍爆), 나무하러 가던 나무꾼이 바위 위에서 바둑 두며 노는 신선들을 구경하다 보니 도끼자루가 썩어 없어졌을 만큼 세월이 흘렀다는 제6곡 난가대(爛柯臺), 바둑판 모양의 평평한 바위로 신선들이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던 나무꾼이 집으로 돌아와 보니 5대손이 살고 있었다는 제7곡 기국암(碁局岩), 마치 큰 거북이 한 마리가 머리를 들어 숨을 쉬는 것 같고 겉이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등과 배가 꿈틀거리는 모습을 하고 있는 제8곡 구암(龜岩), 양쪽으로 서 있는 두 개의 바위 사이에 10여명이 들어갈 수 있고 퉁소를 불며 달을 희롱하던 신선이 머물렀다는 제9곡 은선암(隱仙岩)이 지척의 거리에서 사람들을 유혹한다.
길거리의 거꾸로 걸린 간판에서 개성을 느끼듯 가끔은 일상을 거꾸로 경험해보는 것도 괜찮다. 청주삼백리 회원들과 갈모봉을 등반하고 선유동휴게소 앞으로 하산한 길이라 제9곡 은선암부터 제1곡 선유동문까지 거꾸로 답사를 했다.
회원들이 선유구곡 답사를 시작하던 선유동휴게소 앞 냇가도 쉼터로는 좋은 장소다. 그럴 듯한 바위도 있는데 이 정도의 쉼터나 바위가 왜 구곡에 끼지 못했는지 답사를 시작하며 알게 된다. 선유구곡을 여러 번 다녀갔지만 몇 곳의 큰 바위 위에는 올라갈 엄두를 못냈었다. 여럿이 하는 답사가 아니면 올라가기 어려운 큰 바위 위에서 회원들은 역사의 흔적을 하나, 둘 찾아보면서 구곡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제7곡 기국암 위에서는 바둑판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제4곡 연단로에서는 바위 위에서 '鍊丹爐(연단로)'라는 글자와 절구처럼 패여 있는 구멍을 확인했다. 제3곡 학소암과 제2곡 경천벽에서는 글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제5곡 와룡폭의 '臥龍爆(와룡폭)'이라는 글자는 육안으로 알아보기 어려웠다. 퇴계 이황이 제3곡 학소대와 제2곡 경천벽에도 글자를 새겨 논 것은 분명하지만 오랜 세월과 물길이 글자를 마모시켰거나 우리가 찾아내지 못했으리라.
야유회나 여행길이었다면 대충 훑어보거나 스쳐 지나갔을 테지만 청주삼백리 회원들과 같이 하는 답사 길이라 선유구곡에 대한 요모조모를 모두 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교통안내]
1. 경부고속도로 청주 IC→미원→청천→송면→선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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