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일, 대전둘레산길잇기와 청주삼백리가 하나 되어 계족산을 답사했다. 내가 살고 있는 청주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아 처음 청주삼백리와 인연을 맺던 날이 바로 작년 12월 17일이고 바로 그날이 청주삼백리와 대전둘레산길잇기가 청주의 옛길인 상봉재와 것대산ㆍ낙가산을 답사하며 처음 교류를 시작한 날이다.
그런 연유 때문에라도 이번 답사는 꼭 참석하고 싶었다. 그런데 기상청에서는 전날부터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비를 예보하며 외출이나 행사를 하지 말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매월 첫째, 셋째 일요일에 답사를 떠나는 청주삼백리와 달리 대전둘레산길잇기는 토요일에 행사를 주관해 몸이 불편한 어머님을 모시고 교회를 다니는 아내가 참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아침에 일어나 비가 내리고 있는 밖의 날씨부터 확인했다. 기상청의 날씨 정보에도 대전과 청주의 날씨가 ‘강수확률 오전 80%에 흐리고 한두 차례 비후 밤에 갬’으로 나와 있다. 날씨가 요즘 몸이 아파 병원에 다니고 있는 아내와 함께 가는 것을 포기하게 했다.
김수녕 양궁장에서 맛있는 찌개로 뒤늦게 점심을 먹던 추운 겨울날이 생각난다. 그날은 대전둘레산길잇기 회원들과 만날 때부터 답사가 끝날 때까지 눈이 마구 퍼부었다. 대전둘레산길잇기 회원들이 아니었으면 답사에 처음 참석한 사람이 어떻게 추운 겨울날 따뜻한 찌게를 얻어먹을 수 있었겠는가? 사실 찌게를 끓여준 사람이 청주삼백리 송태호 대장을 지극정성으로 보필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훗날에야 알았다.
설경과 어우러진 청주 주변의 역사와 하나가 되던 그날의 인연 때문에 나는 청주삼백리를 무척 사랑한다. 대단한 인연을 만들기 위해 대전둘레산길잇기에서 비가 내리는 날 답사 날짜를 잡은 것 같다는 얘기가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는 생각도 했다.
사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전국의 여행지를 떠돌았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많았다. 그러던 차에 지역사랑에 앞장서고 있는 청주삼백리를 알게 되었고 늘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아 청주삼백리의 송태호 대장과 회원들에게 고마워한다.
내가 청주삼백리를 사랑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약속된 날에는 ‘찾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사랑한다’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답사를 떠나는 것이다. 비가 내리는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어쩌면 같은 목표를 추구하고 있는 대전둘레산길잇기 회원들과 어울리게 되어 더 행복한 날이다.
청주삼백리 답사의 출발지인 흥덕구청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이런 날씨 일수록 참석인원이 적은 것이 아쉽다. 나이 더 먹었다고 우대를 해줘 지난번 답사에서 처음 만난 권영석 회원의 차를 타고 대전으로 향했다. 처음 봤지만 열정적이고 인상이 좋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알고 보니 중학교 후배란다. 청주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후배를 만나니 궂은 날씨와 관계없이 기분이 좋다.
동구 비룡동에 있는 동신고 앞에서 대전둘레산길잇기 회원들을 만났다. 대전의 안여종님은 이번 답사가 삼국시대의 역사를 배우면서 대청호와 대전시를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코스지만 날씨 때문에 걱정이 된다는 얘기를 했다. 청주삼백리 송태호 대장은 대전과 청주는 최고봉인 식장산과 선도산의 높이가 비슷할 정도로 역사나 환경 조건이 같아 이웃사촌이라는 인사를 했다. 청주삼백리와 대전둘레산길잇기가 지역문화 사랑을 시작한 시기도 비슷하단다. 청주에서 왔다고 대전의 지도가 그려있는 손수건도 선물로 받았다.
동신고에서 옥천, 영동 방향으로 있는 세천고개로 가다 좌회전하면 오르막길 끝에 줄골마을이 있다. 고갯마루의 왼쪽에는 지하대장군, 오른쪽에는 천하대장군의 돌장승이 마주보고 서서 반긴다. 도로를 넓히면서 마주하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돌장승은 앙증스러울 만큼 잘생겨 미인이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이뤄준단다.
안여종님의 자세히 보면 콧구멍이 있다는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대전 주변에는 유난히 돌장승이 많다는 얘기를 들으며 청주 용정동 길가에 있는 충북유형문화재 제150호 청주순치명석불입상을 떠올렸다. 돌장승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바로 산길이다.
산길에 접어들어 처음 만나는 산성이 대전기념물 제12호 갈현성(葛峴城)이다. 동구 용운동에 위치한 갈현성은 산봉우리에 축조된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남북으로 긴 타원형 모양이며 성벽둘레가 약 350m나 된다는데 대부분 허물어져 현재 보이는 부분은 그리 길지 않다.
산성은 눈이 오는 날 봐야 운치가 있다는 말이 있듯 비가 내리는 날은 성벽에서 쓸쓸함이 묻어났다. 계족산에는 갈현성부터 계족산성까지 9개의 산성이 있단다. 백제인들이 대전 부근에 20여개의 산성을 쌓았지만 신라인들이 생활했음을 증명하는 고분이 발견되어 삼국의 산성이라고 한다. 그 당시의 역사로 봐 이주변의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대전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일 정도로 대전 시내의 조망이 좋다는 대전기념물 제11호 능성에 올랐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가 건물들을 감췄다. 동구 가양동의 능성은 동쪽에서 침입해오던 신라를 감시하기 위한 성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동쪽에 대청호, 남쪽에 대전의 최고봉 식장산, 서쪽에 대전 시내, 북쪽에 계족산성이 위치한다.
계족산성 방향으로 가다보면 작은 산성에 속하는 보를 만난다. 지금의 초소 역할을 했을 보가 계족산에 여러 곳 있단다. 이곳은 백제의 도읍지였던 공주와 가까워 군사적으로 요지였다. 한때는 계족산성에 백제 부흥군 5천여 명이 기거를 했고,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장군이 직접 계족산성 싸움에 나서야 할 만큼 나당연합군이 물자를 나르는 주요 교통로였다.
보 옆에서 점심을 먹었다. 서서 비를 맞으며 음식을 먹는 풍경이 재미있다. 김밥, 반찬, 술에 빗물이 스며든다. 아마 이 맛 때문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답사 길에 나서는지도 모른다. 청주삼백리에는 이런 날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움츠러든 몸을 녹여주는 여자회원도 있다.
성벽이 잘 보존된 대전기념물 제8호 질현성으로 갔다. 동구 가양동 더퍼리에서 추동으로 넘어가는 질티재 북쪽 산 정상에 있는 잘현성은 답사팀이 아니면 그냥 지나칠 만큼 절벽 아래에 숨어있다. 성곽 주변에서 기와 등이 많이 발견된다.
절고개에 있는 애기단풍 숲이 안개 속에서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계족산의 허리 부분 13㎞를 깎아 만들었다는 임도를 걸어 임도삼거리에 도착했다. 계족산 임도는 봉달이 이봉주선수의 마라톤 연습장이었을 만큼 아름답다. 이곳을 걸으며 임도가 산림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다음날 이곳에서 ‘신발 NO, 양말 NO, 맨발로만 달려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산속 흙길을 맨발로 달리는 선양마사이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발이 제2의 심장이라고 한다. 맨발로 내달릴 사람들을 생각하니 괜히 즐겁다.
임도삼거리에서 봉황정 방향의 산길로 들어섰다. 안여종님으로부터 산 뒤가 변해 이름 지어진 산디마을과 남송북강(南宋北姜)이라는 말이 생겼을 만큼 은진 송씨와 진주 강씨가 세도를 부리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에서 얼마나 가문이 번성했으면 은진 송씨를 회덕 송씨로 부른단다.
조선 초기 부사정을 지낸 송유(1389~1446)의 별당인 쌍청당(대전유형문화재 제2호). 조선 효종 때 대사헌ㆍ이조판서ㆍ병조판서를 지낸 송준길(1606∼1672)의 별당인 동춘당(보물 제209호), 조선 숙종 때 예조판서를 지낸 송규림(1630∼1709)의 별당인 제월당(대전유형문화재 제9호)과 이조판서를 지낸 송상기(1657∼1723)가 지은 사랑채 건물 옥오재가 이곳에서 가깝다.
계족산 정상은 묘가 지키고 있다. 이곳에 묘를 쓰면 가뭄이 들어 기우제를 지내야 했지만 얼마나 명당자리면 몰래 묘를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계족산 표석 옆에 있는 바위에 구멍이 3개 있다. 북두칠성이나 다산을 상징한다는 얘기부터 아무 뜻 없이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구멍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지형상 산의 모양이 닭의 발을 닮았다지만 원래는 봉황산이었는데 일제가 계족산으로 이름을 바꿔 격을 낮췄단다. 정상에서 가까운 거리에 조망이 좋은 봉황정이 있지만 궂은 날씨 때문에 안개만 보인다. 봉황정 정자에 앉아 클래식을 들으며 대전둘레산길잇기와 청주삼백리 회원들이 하나 되는 시간을 갖고 오던 길을 되돌아 하산을 했다.
하산 길에 송시열,송준길과 함께 회덕현의 삼송으로 불리는 송규렴의 고택과 제월당, 옥오재를 돌아봤다. 고택의 마당은 도로를 넓히면서 사라졌단다. ‘깨어지더라도 나는 옥을 택하겠다’는 옥오(玉吾)라는 말에서 옛 선비들의 충성심을 읽었다. 인심이 좋은 감나무 집에서 대전과 청주의 회원들이 막걸리를 마시며 우호를 돈독히 했고 송태호 대장이 정기적인 모임을 발의했다.
이곳을 지나는 철길이 참 많다. 식당에서 나와 100년이 넘었다는 경부선의 굴다리와 크기가 다른 회덕현의 돌장승을 구경했다. 회덕현의 현감이 은진 송씨가 살던 송촌동의 정승동네에 찾아 갈 때는 고갯마루에서 아무개가 찾아 왔다고 큰소리로 인사를 한 후 승낙을 받아야 했다는 옛날이야기도 들었다. 영석 후배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 이감섭님과 인생살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계족산에서의 답사를 마무리 했다.
[산행 안내]
동신고 앞 → 세천고개 → 비룡동 줄골장승 → 갈현성 → 임도 → 능성 → 질티고개 → 질현성 → 절고개 → 성재산 → 임도삼거리 → 계족산 정상 → 봉황정 → 용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