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紀念日)은 정부가 제정, 주관하는 특정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런데 교사들은 기념일인 스승의 날이 가까워오면 더 괴로움을 겪는다. 오죽하면 스승의 날에 반수의 학교들이 임시휴교를 했고, 학부모들이 선물을 사들고 학교 대신 학원으로 갈만큼 스승의 날에 대한 풍조도 바뀌었다.
그런데 여론을 조성하며 공익에 앞장서야 할 언론의 횡포는 바뀌지 않았다. 깎아내리지 않으면 어디가 덧나는지 이번 스승의 날만해도 그렇다. 며칠 지났지만 스승의 날 교육에 관해 실린 기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해도 너무 한다. 그렇게도 기사거리가 없는지, 그렇게 해서 언론에 득이 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잘못한 것을 잘했다고 칭찬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기다렸다는 듯 교원들의 흠집을 들춰내며 권위를 깎아내리는데 앞장서는 언론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사 밑반찬 대느라 요리학원 열풍, 교사가 초등학생들에게 동성애 영화를, 선생님이 초등학생 상습 성추행 의혹’
스승의 날 한국일보의 인터넷판 한국아이닷컴에 실린 교육에 관한 글의 제목들이다. 교사의 권위를 깎아내리기에 충분할 만큼 자극적이다. 제목만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교사들을 욕하게 되어 있다. 기사의 내용을 들여다보지 않고는 내가 왜 이런 글을 쓰는지 이해하기도 어렵다.
‘교사 밑반찬 대느라 요리학원 열풍’은 참교육학부모회 전북지부장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촌지의 형태가 교묘하게 진화하고 있다는 요지로 말한 내용이다. 현장에서 직접 학부모를 만나는 교사들은 택배를 통한 선물이나 봉투 전달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거나 교사 밑반찬 준비를 위해 어머니들이 요리학원까지 다닐 만큼 요리학원 열풍이 불고 있다는 얘기를 이해하지 못한다.
기사의 내용대로 지금도 촌지를 요구하는 교사들이 많은지, ‘교사 밑반찬 대느라 요리학원 열풍’이라는 제목을 붙여야 할 만큼 교육계가 썩었는지 터놓고 얘기해보자. 스승의 날 굳이 일부 극소수의 얘기를 부풀려 교원들을 매도하면서 자존심을 건드리는 이유도 알고 싶다.
물론 촌지를 요구하는 교사가 몇 명 있어도 된다거나 그런 교사에게 관용을 베풀자는 얘기는 더욱 아니다. 촌지가 존재하는 한 교육계를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이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촌지 문제는 교육계 스스로 엄한 잣대를 적용하며 꼭 넘어야 할 산이다.
‘교사가 초등학생들에게 동성애 영화를’은 나도 제목만 보고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냐고 욕을 했다. 그런데 미국 시카고의 초등학교 8학년 여학생이 지난해 수업시간에 대리교사가 보여준 R등급(18세 미만 보호자동반 관람가) 영화인 ‘브로크백 마운틴’을 본 뒤 심리적 고통을 겪어 소송을 제기했다는 내용이다.
독자들이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제목을 정해야 했다. ‘미국에서는 교사가 초등학생들에게 동성애 영화를’ 이라는 제목이었다면 누구나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언론인들이 제목을 쓰는 기본도 모르니 AP통신에 의한 기사를 우리나라 이야기인양 그것도 스승의 날 기사화한다.
‘선생님이 초등학생 상습 성추행 의혹’은 인천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자신이 담임을 맡고 있는 남녀 학생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 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내용이다.
내용대로라면 당연히 용서받을 수 없다. 하지만 의심하여 수상히 여기는 게 의혹(疑惑)이다. 교사의 나이가 57세나 되었고, 남녀가 모두 해당되는 것으로 봐 학생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지나치게 표현되었다는 이야기가 변명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의혹은 진실이 아닐 수 있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사건이지만 교원들의 흠집을 찾던 언론에게는 호재였다.
축하받아야 할 기념일에 오히려 교원들의 가슴에 상처를 내면서도 스승의 날 휴업하는 것이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래서 교사인 내가 촌지문제로 고민하지 않을 만큼 순진한 우리 학교의 학부모님들이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