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삼백리의 한남금북정맥 6구간 답사
지난 20일은 지역문화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청주삼백리 회원들이 상당산성에서 이티재까지 한남금북정맥 6구간을 답사하는 날이었다.
집과 가까운 방서사거리에서 흥덕구청에서 출발한 회원들과 합류했다. 오랜만에 처음 본 회원들이 많고, 빈자리도 몇 군데 없다. 청주삼백리가 청주지역의 산길, 들길, 물길, 마을길을 걸으며 지역사랑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괜히 기분이 좋다.
회원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월오동목련공원과 현암삼거리를 거쳐 상당산성의 한옥마을 앞에 도착했다. 5구간 답사를 마치던 2주 전에는 이곳에 철쭉꽃이 만발했었는데 꽃 한 송이 볼 수 없어 세월의 빠름을 실감한다. 그래도 일요일 아침이라 등산객들로 활기가 넘친다. 이날 회원들은 청주삼백리에서 제작한 지도 350여부를 산성을 찾은 시민들에게 배포하는 것으로 답사를 시작했다.
진동문으로 가다보면 세월의 무게가 제법 느껴지는 물레방아가 식당 입구에서 천천히 돌아가고 있다. 처음 본 풍경이 아니건만 오늘따라 누가 보든 말든 저 혼자 돌고 있는 물레방아가 새롭게 보인다. 두께를 더하고 있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만큼이나 쉬지 않고 도는 물레방아가 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가까운 거리의 진동문 누각에서 회원들 모두 새로 만든 지도를 펼쳐 놓고 답사를 하게 될 한남금북정맥 6구간을 꼼꼼히 살펴봤다. 참여한 회원들이 많으니 여러 가지 좋은 것이 많다. 이보다 아름다운 풍경이 몇이나 될까? 성곽을 따라 꼬리를 물고 길게 이어지는 답사 길이 한 폭의 그림이다.
가파른 성곽을 올라서다보면 일반인들이 그냥 지나치기 쉬운 동암문이 보이고, 동암문을 지나면 바로 쉼터가 나타난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20여m 거리의 나지막한 봉우리가 상당산성의 정상이다. 옛날에 군인들을 지휘하던 북장대가 있던 곳이지만 지금은 흔적이 없다.
임금이 나들이를 떠나 머물던 별궁이 행궁(行宮)이다. 세종대왕이 초정에 머물며 세계3대 광천수인 초정약수로 안질을 치료하던 시절에는 초정이 행궁이었다. 그때 행궁으로 연락하기 위해 이곳에 잠깐 설치되었다는 봉화대의 흔적도 있을 리 없다.
역사가 사라진 자리에 상당산의 높이가 491.5m라고 써 있는 표석이 서 있다. 청주삼백리 송태호 대장은 옛 지도에 '상당산'이라는 명칭이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는 것을 지적한다.
북장대나 봉화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어야 할 자리에 건설교통부 국립지리원에서 세운 삼각점과 '삼각점은 지도제작, 지적측량, 건설공사, 각종 시설물의 설치 및 유지관리 등을 위한 기준점으로 전국에 16,000여 점이 설치되어 있다'는 내용이 써 있는 삼각점 안내판이 있다.
청주 상당산성에는 비밀통로였던 암문이 현재 두 개 남아 있다. 남암문은 상당산성의 주문인 공남문에서 가까워 사람들이 즐겨찾는 통행로가 되었지만 동암문은 지금도 자세히 봐야 눈에 띌 만큼 성벽 아래에 숨어있어 통행하는 사람이 적다.
동암문을 나서 성벽을 따라 북쪽으로 조금만 가면 오른쪽으로 청주, 청원의 경계 능선이 나타난다. 이티재로 가려면 이 길을 택하지 말고 서쪽 성벽을 따라가다 오른쪽의 숲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한참 동안 가족들과 산책하기에도 알맞은 산길이 이어지고 이름모를 새들이 예서제서 지저겨 저절로 흥얼흥얼 콧노래가 나온다.
산에 꽃이 없으면 어떤가? 산이 새콤달콤한 맛을 내뿜지 않으면 어떤가? 피톤치드 효과 때문인지 숲길에 들어서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가슴 속이 뿌듯할 만큼 희열이 느껴질 때도 있다. 일행 중 한 명이 이런 게 산의 맛이라고 얘기한다. 어쩌면 자연이 주는 맛을 느끼는 그 자체가 행복이다.
초등학생 딸과 함께 처음 참석한 여자회원이 힘들어하며 자꾸 뒤처지자 후미를 담당한 권영석 회원이 배낭 두 개를 더 짊어진다. 답사 길에서 보는 배려라 더 멋있어 보인다. 쉼터에서 잠깐씩 쉬는 시간에도 회원 간에 정이 오간다. 처음 참석한 여자 회원의 사탕을 시작으로 당근, 오이, 수박이 줄줄이 나온다.
능선을 따라 이티재로 가다보면 고갯마루를 여러 번 만난다. 이곳에도 사람들이 넘나들던 옛길이 있었지만 교통이 발달하며 흔적만 남아 있다. 낭성면과 내수읍 덕암리를 연결하는 시튼몰(시드몰) 고개도 그 중 하나다.
송태호 대장은 인근 마을사람들도 고개의 유래나 뜻을 알지 못한다며 '왜 시튼몰 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를 청주삼백리 회원들이 알아보자는 제의를 했다.
매번 비좁은 산등성이에서 먹는 점심이지만 기다려지는 이유가 있다. 처음 본 회원과 소주 한 잔씩 주고받으며 정을 쌓는 재미가 쏠쏠하다. 쌈장에 푹 찍은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취와 돌미나리에 싸서 소주 안주로 건네주는 풍경을 어디서 볼 것인가? 점심시간만은 완전히 먹을 것 잔뜩 싸들고 소풍 나온 기분에 젖는다.
부지런히 걷다보면 인경산(520m) 정상과 이티재로 가는 갈림길이 언덕길 능선에 있다. 왼쪽 길로 접어들어 조금만 가도 산허리 아래 나무사이로 비홍저수지가 보인다.
내리막길 끝에 내수읍 비상리와 미원면 대신리를 연결하는 임도가 있고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그 옆에서 반긴다. 잘생긴 앞부분과 달리 뒷부분은 구멍이 뻥 뚫렸고 불에 탄 흔적이 그대로인데 나뭇잎을 잔뜩 매달은 채 그늘을 만들었다.
납골당 옆 경사진 산길을 오르면 예전에 헬기장으로 사용했던 정상이 나타난다. 이곳은 진천의 두타산과 만뢰산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주변에서 제일 조망이 좋은 곳이다. 나뭇잎이 떨어진 겨울에는 조망이 더 좋다.
이감섭 회원에 의하면 바로 앞으로 보이는 내수읍의 비상, 비중과 북이면의 영하리를 예전에는 비홍이라고 했다. 영하리 왼쪽 마을이 석화리이고, 석화리 왼쪽의 내수읍 세교리는 번개대장으로 불리던 한봉수 의병장이 태어난 곳이다. 석화 오른쪽으로 보이는 솔밭은 3·1 만세운동을 했던 장소다.
비중리 오른쪽으로 개화교, 우산리, 초정리가 차례로 나타난다. 옥녀봉은 구녀산성에서 증평방향으로 가는 산줄기상의 봉우리이고, 접골 약으로 쓰는 산골이 난다는 호명은 증평 쪽에 있는 초정리 뒷동네다. 초정리는 세종대왕이 안질을 고쳤을 만큼 오래전부터 약수로 유명하다.
헬기장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봉우리가 '한악산(寒岳山)'이다. 한악산은 차고 크게 느껴지는 이름과 달리 평범한 산이다. 이감섭 회원은 직접 인쇄물까지 준비해 400여년 전부터 '한악산팔경'으로 전해져오는 주변의 풍광을 소개했다.
한악산팔경(寒岳山八景)을 간단히 요약하면 '비홍명안(飛鴻鳴雁) : 비홍의 우는 기러기, 세교어화(細橋漁火) : 세교의 고기잡이 횃불, 우산낙조(牛山落照) : 우산의 저녁노을, 개화춘우(開花春雨) : 개화대의 봄비, 초정세류(椒井細流) : 초정의 작은 시내, 호명점설(虎鳴點雪) : 호명의 눈 무늬 바위, 옥녀반월(玉女半月) : 옥녀봉의 반달, 구녀모운(九女暮雲) : 구녀성의 저녁 구름'이다.
'세교리 마을 앞 시냇가에서 밤고기를 많이 잡았고, 우산리 근처의 산이 소를 닮았으며, 개화대는 들판으로 봄에 피는 하얀 벼꽃이 봄비를 닮았다'는 부연 설명까지 들으니 '한악산팔경'의 이해가 쉬웠다.
숲길을 따라 내려가면 초정약수와 미원을 잇는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이티봉휴게소 앞 도로변에 해발 360m를 알리는 안내판과 이정표가 서 있다. 이정표의 'E T Jae'라는 글자가 우주선을 타고 날아 왔다 홀로 지구에 남게 된 'ET'를 생각나게 해 기억하기에는 좋다.
이티재의 유래나 뜻을 정확하게 알아보는 것도 쉽지 않다. 이감섭 회원은 이곳의 지리에 밝은 아버님의 말씀대로라면 한자로는 '二峠'라며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은 이두에 의해 '고개 상(峠)자'가 '티'가 되었을 것이란다.
그렇다면 '이티재'라는 말에 고개가 두 번 들어간다는 의문점도 제기되었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우두머리, 죽령재, 약수물, 삼월달 등 같은 뜻이 겹치는 말이 자연스럽게 사용되던 것을 떠올리면서 답사를 마무리 했다.
[답사안내]
상당산성 산성마을 → 진동문 → 동암문 → 한남금북정맥 주능선 → 막거리 능선 → 시튼몰고개 → 인경산 갈림길 → 보도막골고개(대신리와 비상리 연결) → 헬기장 → 한악산 → 이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