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의 백사장이나 정동진역에서만 해돋이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유람선 회사에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금진항으로 가면 유람선의 갑판 위에서 찬란하게 떠오르는 해돋이를 할 수 있다.
예전에 서울 사람들은 경포대로, 강릉사람들은 강동 6진으로 피서를 간다고 했다. 강동 6진은 강릉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해안선에 위치한 작은 어촌마을 안인진, 등명진, 정동진, 심곡, 금진, 옥계를 일컫는 말이다. 바로 이곳이 강릉 주변에서 최고의 절경지로 손꼽히는 해안이다.
정동진을 내려다보고 있는 썬크루즈의 언덕과 연결된 작은 고개가 밤재다. 밤재의 경사와 굴곡이 심한 내리막길 끝에 심곡마을이 있다. 마을 모양이 종이를 바닥에 깔아 놓은 듯 평평하고 그 옆에 붓이 놓여 있는 형국이라 ‘지필마을’로도 불리는 심곡은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마을 주민들이 전쟁이 일어난 줄도 몰랐을 만큼 다른 마을과 멀리 떨어진 깊은 골짜기 안에 있다.
잠깐 시간을 내면 오지마을이 새롭게 변하고 있는 모습과 채취해 온 미역을 말리는 어민들을 볼 수 있다. 옛날에 임금님께 진상하였다는 자연산 돌김은 지금도 최고의 자연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때 묻지 않은 바다를 바라보며 여유를 누릴 만한 횟집도 있는데 방파제 주변에서는 포크레인이 한창 공사를 진행 중이다.
심곡에서 금진항까지 바다와 맞닿아 있는 해변도로가 헌화로다. 헌화로는 도로 바로 옆이 바다라 기기묘묘한 기암괴석으로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드라이브코스로도 좋다. 신라 성덕왕 때 강릉 태수로 부임하던 순정공의 아내 수로부인이 벼랑 위에 핀 철쭉꽃을 탐내자 소를 몰고 가던 노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꽃을 꺾어 바쳤다는 설화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헌화로에 음양(陰陽)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합궁(合宮)골이 있다. 마주보고 있는 남근과 여근이 탄생의 신비로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해가 뜨면서 남근의 그림자가 여근과 마주할 때 가장 강한 기를 받을 수 있다는 속설을 믿는 사람들이 일출을 기다리는 장소다.
바다풍경을 바라보며 구불구불 헌화로를 따라가다 보면 강동 6진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천혜의 항구 금진항이 나온다. 접안시설이 잘돼있어 일대의 연안 어선들이 많이 드나드는 금진항은 한적한 어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 정동진의 복잡함이나 화려함에 식상한 사람들이 여유를 찾기에 알맞은 곳이다.
금진항에 정동진 앞바다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골드코스트 유람선의 선착장이 있다. 이곳에서 정원이 145명이라는 유람선에 관광객 22명을 태운 해돋이 유람선이 사람들의 단잠을 깨울 만큼 길게 뱃고동을 울리며 출항한다. 방파제 옆으로 항구를 빠져나가면 암벽해안과 기암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헌화로에 있는 합궁골은 바다에서 봐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 선상에서 보는 썬크루즈와 정동진의 풍경이 새롭다.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는 선상에서 바라보는 일출광경, 수백 마리의 갈매기 떼가 배의 뒤꽁무니를 따라오며 새우깡을 받아먹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게 아쉽다.
선장은 봄, 가을에는 해돋이나 갈매기 떼를 보기가 어렵다며 바람이 많이 부는 추운 겨울바다가 해돋이에 제격이라고 말한다. 고기잡이 나간 어부들이 여름에는 장갑을 끼고 일을 하지만 겨울에는 장갑 없이 일을 하는 게 바다의 기후라니 이해할 만도 하다.
뒤늦게 구름을 뚫고 중천에 해가 나타났다. 예서제서 해를 배경으로 열심히 셔터를 눌러댄다. 해돋이를 보여주지 못해 가슴이 답답하다는 얘기를 여러 번 하던 선장은 오늘이 순국선열들을 기리는 현충일인데 어떻게 해님이 방긋 떠오를 수 있느냐는 유머로 동쪽 바다만 쳐다보며 아쉬움에 젖어있는 관광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7번 국도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동해바다를 보면서 무슨 불만이 있겠는가? 그래도 정동진에 와서 골드코스트 유람선만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승선료 15,000원이 부담이 된다는 것을 생각한다. 어떻든 금진항에서 출항하는 관광유람선은 승선료에 비해 볼거리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