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와 청원군의 최고봉 좌구산 돌아보기

2007.06.22 17:18:00


충북 청주의 젖줄인 무심천의 발원지나 옛 문화가 남아있는 산길과 논밭 길을 직접 걸어다니며 청주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는 모임이 청주삼백리다. 청주삼백리 회원들이 청주, 청원의 중심산줄기인 한남금북정맥을 8구간으로 나눠 답사를 시작한 게 3월 4일이다. 그로부터 4개월 후인 6월 17일은 이번 답사의 피날레인 마지막 구간을 답사하는 날이다.

8구간 답사를 밤티재에서 시작하기 위해 지난번 답사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만났던 새왕이마을로 갔다. 2주 전에는 보이지 않던 '황새서식지 조성을 위한 실험방사' 환영 플래카드가 마을입구에서 회원들을 반긴다.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일손이 달리는 게 농촌의 현실이다. 논두렁에서 일을 하고 있거나 연모를 챙겨 일터로 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노인이다. 주름살 더 많은 노인들 몇이 아침부터 정자에서 마을을 지키고 있는 새왕이마을의 아침풍경이 한가롭다. 강남에서 돌아온 제비들이 계량기와 연결된 전깃줄에 앉아 졸고 있는 모습도 평화롭다.

배추와 인삼을 많이 경작하는 마을을 막 벗어나면 오염물이 없어 다슬기들이 살을 찌우고 있는 냇가를 만난다. 이곳에 오래전에 놓였지만 규모가 작지 않은 다리가 있다. 답사 전에 갖는 만남의 시간을 다리 위에서 진행하니 더 운치가 있다.

송태호 대장이 8구간의 답사일정과 한반도 13정맥 중 하나로 속리산 천황봉에서 서북으로 뻗어 충북의 내륙을 동서로 가르며 경기도 안성군 칠장산에 이르는 한남금북정맥의 산줄기가 150㎞에 달한다는 것을 얘기했다.

매번 그랬듯이 처음 참가한 회원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회원들의 특색 있는 닉네임을 알아보는 시간에는 순우리말로 사랑을 일컫는 '아띠', 틀림없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은방울', 본인의 이름 춘우(春雨)를 그대로 풀이한 '봄비' 등 닉네임이 어쩌면 그렇게 그네들이 사는 모습과 잘 어울릴까를 생각했다.


우렁이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논에서 벼 이삭 사이로 기어다니는 우렁이들을 구경하고 농로를 따라 마을 뒤편에 있는 밤티재로 가다 보니, 2주 전 이곳을 지날 때는 보이지 않던 흰색의 가건물이 나타난다. 그 앞이 교원대 황새복원센터에서 조성한 6600㎡의 황새복원 야생서식지다. 보호철망 안에서 이틀 전에 방사된 황새(천연기념물 제199호) 한 쌍이 다정하게 노닐고 있다.

2012년까지 300억원을 들여 미원면 일대에 건립할 가칭 '황새공원' 계획에 의하면 미꾸라지, 개구리 등 황새가 좋아하는 먹이가 많아지도록 주변의 환경을 정비해야 한다. 오리나 우렁이를 이용한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등 사람들의 노력이 앞서가 이곳에서 36년 만에 황새들이 둥지를 틀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황새복원센터홈페이지(http://www.stork.or.kr)에서 복원과정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한남금북정맥 답사 마지막 날이라 음식을 많이 준비해온 모양이다. 지난번 답사를 할 때 뜯어간 쑥으로 만들었다는 쑥떡, 크게 썬 참외, 삶은 완두콩 등 먹을 것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회원 중 한 명이 점촌 1.8㎞가 18㎞로 잘못 쓰여 있는 안내판에 사인펜으로 점을 찍으며 밤티재의 풍경을 바꾼다.


밤티재에서 좌구산 방향의 산길로 접어들면 이 일대에 자연휴양림을 조성하고 있는 증평군에서 쉼터를 잘 갖춰 놨다. 잘 정비된 등산로의 이정표들도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데 한몫을 한다.


동쪽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향하다 보면 능선에서 소나무 숲과 야생화들을 만난다. 산에는 예쁜 꽃만 있는 게 아니다. 흉측스럽게 패여 있는 나무들이 산길 좌우로 늘어서 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인간의 추한 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멧돼지들이 먹이를 찾느라 파헤친 곳도 자주 눈에 띄는데 산속의 동물들이 인간과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라 오히려 반갑다.


부지런히 걷다 보면 정상 못 미쳐서 무명의 돌탑을 만난다. 남다른 추억거리를 남기기에는 피라미드형의 돌탑과 가지가 넓게 벌어진 나무가 생뚱맞아 보이는데 돌탑 틈새에 절(卍) 표시가 있는 깨진 기와장이 많아 가까운 곳에 사찰이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돌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좌구산 정상을 나뭇잎들이 가리고 있다. 청주·청원의 최고봉인 좌구산 정상(657m)에 오르면 2005년 11월 청주삼백리에서 세워놓은 표지석이 반긴다.

주말이면 한남금북정맥을 종주하기 위해 전국의 산악인들이 찾아오는 곳이지만 정상 주변은 잡목들이 우거져 조망이 나쁘다. 송태호 대장에 의하면 바로 아래에 있는 대덕봉이 높이는 낮지만 조망은 오히려 좋단다.

전설과 이야깃거리가 많이 전해 내려오는 좌구산 정상에서 회원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정상주를 마시며 8구간 종주를 자축하노라니 쓴 소주가 오늘따라 달았다. 서걱서걱 얼음이 씹혀 더위를 식히는데 최고인 맥주도 한 컵씩 마셨다. 청원군과 증평군이 좌구산 정상에 세운 이정표가 똑같이 한쪽에만 글씨가 쓰여 있어 이용하는데 불편한 것도 발견했다.


정상을 막 내려서는데 두타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증평시와 평지에 가까운 야산들이 이어지는 내수읍 주변의 풍경이 왼편으로 갑자기 나타난다. 먼 곳이 가깝게 보일 만큼 가시거리도 좋은데 일행 중 몇은 이곳을 그냥 스쳐 지나갔다.


이곳부터는 산길로 뻗은 잡목의 가지들이 발길을 붙들며 한참 동안 산행을 힘들게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있다'고 고사목들이 있는 오르막에서 앞을 바라보면 속리산에서 월악산까지의 연봉들이 줄지어 나타나고 바로 앞이 좌구산이다.

그동안 감추고 있던 보루를 마지막 구간에서 보여주니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군자산 왼쪽 뒤편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연봉들을 바라보고 있는 월악산의 영봉이 오늘따라 너그러워 보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다른 날보다 늦게 점심을 먹었다. 꿀맛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배가 고플 때 먹으면 뭐든지 맛있게 되어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산길에서 먹는 점심에 빈대떡, 고추, 상추 등이 푸짐하게 차려지니 점심을 먹는 장소가 무릉도원이다.

질마재까지 하산길이 한참 이어지는데 지천으로 널려 있는 산딸기를 따 먹느라 회원들의 발걸음이 더디다. 답사를 시작할 때 새왕이마을의 논둑에서 오디까지 따먹었으니 오늘은 웰빙 음식을 제대로 맛보는 날이다.


청안과 부흥을 잇는 질마재 정상에 최원용 공덕비가 서 있다. 길을 따라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면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어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라고 쓰여 있는 경고 팻말이 무색하다. 답사를 하면서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산속까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어 안타까웠다. 쓰레기 문제는 언젠가 꼭 풀어야만 할 마지막 숙제라는 생각도 했다.

답사를 마치고 출발지로 가는 차 안에서 그동안의 답사를 돌이켜봤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황사가 눈앞을 가리는 날도 있었다. 내리막길에서 엉덩방아를 찧고, 철삿줄이나 나무 등걸에 걸려 상처도 났다. 그래도 답사를 하는 날이면 회원들은 묵묵히 산길과 들길을 걸었다. '한남금북정맥을 걸으며 우리 고장의 지형과 지리를 살펴보자'는 게 이유였다.

어쩌면 답사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끈끈하게 이어간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동물을 사육하던 사람들이 능선에 설치했던 수백 미터의 철삿줄이 오가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것을 담당부서에 알려 제거한 것도 이번 답사에 참여했기에 이뤄낸 일이었다.

세상사 어디 계획대로만 살 수 있는가? 축의금이야 인편에 보내면 되었지만 급한 가정사가 답사를 가로막는 일도 있었다. 가정사보다 급한 일이 어디 있을까만 우리 지역을 자세히 알기 위해서는 어느 한 구간이라도 빠질 수가 없었다.

처음 마음먹은 대로 8구간 답사에 모두 참여하고 보니 가슴이 뿌듯하다. '항상 처음처럼'을 되뇌는 삶이 아름다울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게 행복이다. 청주삼백리의 모든 회원들이 모임의 순수한 취지에 맞게 더 많은 답사 길에서 스스로 행복을 찾아냈으면 좋겠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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