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다 보면 우리나라의 땅덩어리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것, 볼거리가 의외로 많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 그런데도 여름 방학을 맞이하고 여행 성수기가 되면 해외여행객들로 공항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해외여행에 앞서 가까이에 있는 우리의 문화재나 관광지를 찾아보는 인식전환도 필요하다.
새로운 것, 새롭게 시작한다는데 의미를 부여하면 매일 그 자리에서 뜨는 해일지언정 남다르게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정동진보다 해돋이로 유명한 곳이 또 어디 있을까? 해돋이의 중심에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으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정동진역이 있다.
매일 청량리역에서 해돋이 열차가 운행되고 있는 이곳 정동진역은 1994년 SBS 드라마 '모래시계'가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람들은 탤런트 고현정이 정동진역에서 형사들에게 체포되는 장면을 오랫동안 기억한다. 그 당시 드라마의 배경이 되었던 소나무는 '모래시계(고현정) 소나무'로 불릴 만큼 유명세를 타면서 연인들이 추억 남기기를 하는 기념촬영 장소가 되었다.
정동진역은 작고 아담한 역사 때문에 더 정이 가고 바다와 어우러진 주변의 풍광 때문에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역 구내에서 제일 먼저 맞이하는 게 매일 바뀌는 '오늘 해뜨는 시각'이다. 옆에 있는 작은 돌탑도 정동진역을 아름답게 한다.
오래전부터 정동진역을 지키던 작은 조형물의 앞에는 '경복궁(광화문)의 正東(정동)쪽 正東津驛(정동진역)', 뒤에는 '해돋이 역'이라고 쓰여 있는데 조형물 뒤로 동해바다의 수평선이 끝없이 펼쳐진다. 바로 옆에 최근에 생긴 조형물이 나란히 서 있고 알림판에 '사람들의 아름다운 미소가 있는 곳 그대는 정동진…'과 원영욱의 시 '정동진'이 쓰여 있다.
'나는 가야해/ 모든 것 팽개치고/ 너마저 지우개로 지우고서// 밤기차 타고/ 그저 두툼한 외투 하나 걸치고/ 몇 개 안남은 담배 한 갑// 파도에 휩쓸려도 난 좋아/ 여기서 생을 마감한다 해도/ 그냥 내 몸을 동해바람에 맡기면 돼/ 이곳은 따스한 어머니의 품안/ 잊지 못할 업보의 휴식처/ 아니 또 하나의 마침표/ 자 외쳐봐~ 정동진!'
정동진해수욕장과 바다, 철길과 선크루즈, 오가는 열차들과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것도 이곳을 찾은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낭만이다. 낭만과 추억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조형물에 남긴 낙서도 볼거리가 되는 이곳에서 신봉승의 시 '정동진'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벗이여,/ 바른 동쪽/ 정동진으로/ 떠오르는 저 우람한 아침해를 보았는가// 큰 발원에서/ 작은 소망에 이르는/ 우리들 모든 번뇌를 씻어내는/ 저 불타는 태초의 햇살과/ 마주서는 기쁨을 아는가// 벗이여/ 밝은 나루/ 정동진으로/ 밀려오는 저 푸른 파도가/ 억겁을 뒤척이는 소리를 들었는가// 처연한 몸짓/ 염원하는 몸부림을/ 마주서서 바라보는 이 환희가/ 우리 사는 보람임을/ 벗이여 정녕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