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책을 그렇게 읽으세요?”
“응, 맛난 책.”
“참내, 책이 뭣이 맛있어요. 무슨 음식이에요.”
“아냐, 책도 맛난 것이 있고, 맛없는 것도 있어. 어떤 것은 씹어도 팍팍해서 뱉어내고 싶은 게 있고, 생각날 때마다 빼먹고 싶은 곶감 같은 책도 있어. 너도 읽어 봐 시험 끝나면. 생각이 넓어질 거야.”
“책이 뭔데요?”
“‘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이라는 책이야. 너도 알고 있는 정약용, 박지원, 유몽인, 이덕무, 강희맹 같은 분들의 글을 모은 책인데 그들의 일상적인 사는 이야기를 적어 놓았지. 그러면서도 생각의 맛과 풍류를 엿볼 수 있어.”
쉬는 시간 입시 상담을 하러 온 한 학생과의 간단히 이야길 나누었던 장면이다.
흔히 박제가나 정약용, 박지원 같은 분들의 글이라 하면 어렵고 딱딱하고 관념적인 글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옛사람들의 글 대부분이 그럴 거라 지레 짐작한다. 그건 아마 그들이 쓴 글이 한문으로 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글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서 일 것이다.
우리가 지금껏 고전이라고 읽고 소개받았던 책들을 보면 대부분이 서양의 고전이거나 무슨 담론을 이야기한 것들이다. 그래서 고전 하면 가장 먼저 어렵다, 딱딱하다, 그 많은 것을 언제 읽느냐 하는 생각들을 떠올린다. 특히 이 책의 제목처럼 ‘조선 지식인’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그 생각은 더욱 굳어진다.
그러나 책장을 펼치면 그러한 편견들은 이내 우르르 무너진다. 조선 선비, 지식인들의 글 이지만 우리들의 사는 이야기와 비슷하다는 것을 보게 된다. 다만 그 문장의 쓰임과 생각의 정도가 조금 다를 뿐이다.
“내가 ”어떠하냐?”고 묻자, 모두들 “이루 말할 수 없이 좋구나!”라고 대답했다. 술과 안주를 가져와 익살 섞인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놀았다. 시간이 지나자 소낙비도 그치고 구름도 걷히면서 계곡물 역시 점차 잔잔해졌다. 저녁나절이 되자 지는 해가 나무에 걸려서 붉으락푸르락 천만 가지 형상을 띠었다. 서로 팔을 베고 누워서 시를 읊조렸다.”
-정약용, 「다산시문집」‘세검정에서 노닐던 기記’-
한낮, 소나기가 내리려 하자 정약용이 벗들을 이끌고 세검정에 올라 비 구경을 하고 그 감상을 적은 글이다. 모두가 비가 오면 집으로 향하는데 그는 오히려 계곡의 우당탕탕한 물줄기를 구경하기 위해 벗들을 이끌고 세검정으로 향한다. 불안해하고 싫은 기색을 내보이던 벗들도 나중엔 그 모습을 보고 좋아한다. 그리고 술 한 잔 들이키며 시를 읊조린다.
아주 소박한 일상의 모습이다. 조선의 유명한 실학자의 글이지만 자신의 전문적 식견을 드러내기 위한 가식적 꾸밈이 없다. 그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글을 보더라도 일상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야 할 자세나 마음 가짐을 은연중에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의 허례허식에 얽매이지 않고 큰 사상과 큰 마음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 사람을 뽑으라면 연암 박지원을 들 수 있다.
“날이 갈수록 세상사를 멀리하고 게으르게 지내는 데 익숙해져 다른 사람의 경조사를 찾는 일조차 아주 끊어버렸다. 더러 여러 날이 가도록 세수도 하지 않고 또 열흘이나 망건도 쓰지 않고 지냈다. 그러다가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차분하게 앉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가 돌려보내곤 했다.” - 박지원 ‘연암집’에서 -
아주 어린 벗 이서구에 대한 답 형식의 글에서 그는 자신의 일상의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먹을 게 없어 사흘이나 밥을 굶었는데 행랑채 노비가 남의 집 일을 하고 벌어온 돈으로 겨우 밥을 지어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면서 노비와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다.
간혹 땔나무나 참외 같은 것을 파는 사람이 지나가면 불러서 예의나 염치에 대해 얘기하면 사람들은 세상물정도 모르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며 싫증을 내며 지겹다 하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상상하면 그 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허면 오늘 날 연암 같은 사람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바라볼까. 가난하여 처자식은 시골 처가에 보내놓고 자신은 사흘씩 굶으면서도 예의를 이야기하고 효제충신을 이야기한다면 말이다. 아마 그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손가락질 당하지는 않았을까. 연암은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담담하게 글로 적어놓았다. 그리고 책자로 만들어 놓았다.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한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들의 사는 이야기가 마흔여섯 개가 나와 있다. 그 글속에는 조선 지식인들의 일상생활에 녹아있는 옛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정감있게 그려져 있다.
또 옛 선비들의 품격과 정취, 가난과 아픔까지도 끌어안고 살아가는 넉넉하고 넓은 마음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문장이란 결코 미사여구를 동반한 글이 아니라 진솔한 삶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글이란 것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