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모두 떠난 빈 교정을 걷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고함 소리, 발자국 소리, 숨결 소리가 가득했던 운동장. 그 운동장엔 잡초들이 성글게 자라고 있습니다. 아마 한 달 내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잡초들은 마음 편하게 자랄 것입니다.
텅 빈 교실에 들어가 봤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왁자한 교실이었는데 작은 적요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얼굴로 밀려옵니다. 창문을 열고 교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종이를 주웠습니다. 그런데 그 종이 하나가 괜히 반갑게 느껴집니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동안 쓰레기 때문에 연신 잔소리를 해댔던 내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입니다.
그런데 지금 내 잔소리를 유발했던 종이(쓰레기) 하나가 반갑게 느껴지다니 참 요상합니다. 아마 쓰레기로 인해 잔소리 하면서 아이들과 정이 들어서인가 봅니다. 종이 하나를 들고 어정쩡하게 서있는 모습이 거울 속에 비칩니다. 왠지 낯설게 보입니다. 아마 아이들이 없어서일 것입니다.
교실 이곳저곳을 둘러봅니다. 그러면서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를 떠올려 봅니다. 항상 살갑게 웃는 아이도 있고, 늘 인상을 쓴 채 불만에 가득한 아이의 얼굴도 있습니다. 항상 교복 단추를 풀어헤쳐 아침 시간마다 혼나던 아이도 있습니다. 늦잠 자 지각했다며 애교로 용서를 비는 아이도 있습니다. 다섯 달 남짓 매일 부대끼며 함께 했던 아이들입니다.
텔레비전 뒤에 뭐가 숨겨져 있는 게 보입니다. 책을 담아 놓은 박스 2개가 있습니다. 방학을 맞아 사물함 속에 있는 책들을 집으로 가져가라고 했는데 책만 박스에 담아놓고 가져가기 싫어 몰래 숨겨 놓은 것 같습니다. 혹 이럴지도 몰라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끝까지 요령을 피우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야, 너희들 책 안 가져가면 혼난다. 그러니 꼭 가져가. 한꺼번에 가져가려면 힘드니 나눠서 조금씩 가져가라고. 알았지.”
“왜 꼭 책을 가져가야만 하나요. 어차피 2학기 때 또 배울 거고… 집에 가져간다고 공부하는 것도 아닌데….”
“맞아요. 사물함에 놔두고 열쇠 채우면 안 돼요? 그렇게 하게요.”
“안 돼. 우리 반만 그럴 수 없잖아. 그리고 방학 때 책도 보고 그래야지 뭐 하려고.”
학기 중에도 아이들은 책을 사물함에 놓고 다녔습니다. 대학에 가려는 아이들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아이들은 빈 가방을 들고 다녔습니다. 그 빈 가방에 책이 들어가 있을 땐 시험기간뿐입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방학을 맞이해 사물함의 책을 모두 가져가 보라고 하니 투덜거릴 만도 했습니다.
박스를 열어보니 책 주인공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진주와 선미라는 이름이 헤헤 거리듯 웃고 있습니다. 나도 괜히 미소가 돕니다. 가끔은 저리 얄미운 아이들의 행동이 귀여울 때도 있습니다.
또 이렇게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교실에 책 박스라도 있으니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갑자기 열여덟 숙녀들의 잡담하는 소리, 웃는 소리 등이 떠오릅니다. 그 틈에 화림이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선생님, 여기 왜 왔어요. 우리 보고 싶어서 왔지요.”
잠이 많아 자주 지각하기도 하고, 학교 다니기 싫다고 가출도 한 녀석인데 매우 귀여운 아이입니다. 녀석의 목소릴 떠올리니 녀석의 힘든 모습이 보입니다.
이 아이는 늘 언니와 비교대상입니다. 같은 학교에 다녔었던 언니는 항상 쾌활하고 공부도 잘 하고 인사성도 좋아 많은 선생님들이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그 아일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정도였습니다.
헌데 화림인 언니보다 붙임성도 덜하고, 공부도 못하고, 바지런하지도 못해 늘 비교를 당했습니다. 그런 비교 당함에 아인 늘 스트레스를 받았고 언니와의 사이도 멀어졌습니다. 그러다 가출을 하게 됐고요. 그런 사실은 알게 된 후 난 그 아이가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주 대화를 나누고요. 그런데 의외로 녀석은 귀염성이 있고 가끔 애교를 부리기도 합니다. 물론 지각을 할 때지만요.
잠시 상념에 젖어 있다가 눈을 들어보니 게시판 맨 위에 적혀있는 ‘꿈을 꾸는 사람이 되자’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 반 학급 생활 목표입니다. 본래는 ‘꿈을 가꾸는 사람이 되자’인데 아이들이 학기 초 환경정리를 하면서 한 자를 빼먹고 ‘가꾸는’을 ‘꾸는’으로 적어놓았습니다.
그래서 교실 앞엔 ‘꿈을 가꾸는 사람이 되자’가 적혀있고 뒤엔 ‘꿈을 꾸는 사람이 되자’가 적혀 있습니다. 사실 한 글자 차이지만 그 의미는 무척 다릅니다. ‘꾼다’는 것은 ‘꿈이 없는 사람에게 꿈을 가지자’라는 뜻이 강하고, ‘가꾸자’라는 말엔 ‘가지고 있는 꿈을 잘 다듬고 노력하자’라는 의미가 강합니다.
실수로 동시에 두 개의 학급생활목표를 가진 반 아이들에게 난 ‘꿈이 없는 사람은 꿈을 꾸고, 꿈을 가진 사람은 꿈을 가꾸는 사람이 되자.’며 웃었었습니다.
교실 문을 나서며 교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교사에게 의미는 아이들이고, 아이들의 왁자함이 있는 교실이라는 생각이 듬뿍 듭니다. 때론 짜증이 일기도 하고 밉기도 하고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할 때가 가장 즐겁고 행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영 선수에겐 물이 의미이고, 축구 선수에겐 공을 차고 달리는 운동장이 의미이고, 골프 선수에겐 골프채를 휘두르는 푸른 필드가 의미이듯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