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서 희망을 본다

2007.07.28 19:09:00

청주 효성병원 36동 366호. 여자 환자 8명이 누워있고, 그 옆에 보조침대 8개가 놓여있는 8인실 일반병실이다.

척추관협착증과 심한 디스크로 거동을 할 수 없는 어머니가 입원한 게 지난 18일이니 내가 이 병실에서 생활한 것도 오늘이 꼭 열하루째다. 이 병실에서 출근하며 방학을 맞이했고, 그동안 병실의 환자가 여러 명 바뀐 것을 보면 열하루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런데도 환자인 어머니나 간병을 하고 있는 나는 아직 이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머니와 자식같이 가까운 사이가 없지만 남자가 여자를 간병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여자 병실이다 보니 간병인도 모두 여자들이고, 환자를 치료하거나 간병하는 과정에서 남자가 보지 않아야 할 것도 있다. 이럴 때는 ‘잠깐 피해 달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눈치껏 밖으로 나가야 한다.

수액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링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루가 열흘이다. 병실의 밤은 정말 길고 지루하다. 90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밤새도록 ‘아이고 아파’를 외치고, 옆에 사람이라도 있는 양 밤새도록 혼자 중얼거리는 환자도 있다. 심하게 코를 고는 어머니도 수시로 베개의 위치를 바꿔줘야 편안하게 주무신다.

병실은 여럿이 생활하는 공간이라 서로 배려하면서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잠이라도 편하게 자면 좋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누가 될까봐 그러기도 어렵다. 긴장한 탓인지 토막 잠을 자는데도 피곤하면 ‘드르릉’ 코를 곤다.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이라 코고는 소리를 듣고는 깜짝 놀라 잠을 깬다.

‘달가닥’ 문 여는 소리, ‘드르륵’ 바퀴 구르는 소리도 몇 번씩 들려온다. 간호사들이 환자들의 혈압과 맥박을 재기 위해 병실을 들락거리는 소리다. 환자들이 잠을 깰까 간호사들의 행동이 조심스럽다. 하지만 예민한 환자나 간병인들은 눈만 감고 있을 뿐 병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안다.

아직 밖이 컴컴한 시간인데 어머니는 매번 긴 한숨을 내쉬며 ‘왜 이리 하루가 지루하냐’며 허공에다 원망을 한다. 병원에서 70일간을 생활하며 양쪽 무릎에 인공관절을 넣은 분이지만 병원장까지 관심을 두는 대수술을 앞두고 불안한가보다.

원래 어머니의 수술날짜는 목요일이었다. 거동을 못하는 게 오죽 불편하면 위험요인이 많은 수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사자인 어머니가 수술날짜를 더 기다렸다. 그런데 대수술을 하기에는 연세가 많은데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아 마취과에서 수술연기를 권유했다. 마음과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조급해 하는 것도 당연하다.

처음 병실에 왔을 때 링거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환자들을 보면서 안쓰러워했다. 하지만 열흘간 어머님을 간병하다보니 본인 스스로 거동할 수 없는 환자들이 진짜 불쌍하다. 나이가 많은 노인이더라도 자식이나 간병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 부부간에 간호를 하는 분들의 노후가 제일 행복해 보인다.

나이 먹으면 힘없고, 돈 없으면 괄시받고, 병들면 서러운 게 인생살이다. 노인들 몇이 병실복도 의자에 앉아 살아가는 얘기를 한다. 그동안 늙으면 뭐하는데 돈이 필요하냐고 말했었는데 나이 먹고 보니 학생들 등록금 내듯 병원비가 줄줄이 들어간단다. 인생살이 다 그럴 것이고, 그걸 누구나 뒤늦게 깨달을 것이다.

어려운 일이 계속되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그럴 때는 하찮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면서 어려운 일을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병실의 호수 366은 행운을 의미하는 숫자다. 1년이 366일인 날은 4년에 한번밖에 없지 않은가.

요즘 나는 행운을 가져다줄 366호 병실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어머님 병상의 맞은편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7개월째 누워있는 기억상실증 환자가 있다. 하루 종일 간병인과 생활하는 환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한다. 옛날 일은 또렷하게 기억해낸다는 환자가 출입문을 바라보며 가족들을 기다리고, 문병 온 친정엄마의 볼을 부비며 눈물을 펑펑 쏟아내 마음이 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반갑고 고마운 것은 환자 가족의 화목이다. 병실에 들리면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남편과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교대로 병실을 지키는 아이들이 환자 곁에서 든든한 버팀이 된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고통스러워 보이지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환자의 의지가 보인다. 기억력을 찾아주면서 빨리 자립할 수 있도록 틈만 나면 환자와 대화를 나누고 어린 아이 다루듯 어르고 달래며 운동을 시키는 간병인이 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환자 가족의 화목과 희생, 간병인의 봉사와 책임감이 맞물려 꼭 정상인이 되리라 확신한다. 물론 우리 어머니도 어려운 수술을 잘 마치고 366호 병실에서 본인 스스로 걸어 나갈 것이라는 바람도 가지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게 가족이다. 가정이 늘 화목하고 평화로우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누구에게나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최고다.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가족이다. 그래서 정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누구나 가족을 찾는다.

그런데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 중에는 늙었다고, 병들었다고 가족에게 괄시당하는 사람들이 여럿이다. 남도 아니고 가족에게 괄시를 당하는 환자의 마음은 얼마나 슬플까? 어머니의 병실을 지키며 아이들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교육을 많이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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