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빨리 일반병실로 옮겨줘"

2007.08.03 19:27:00

유명 정치인이나 경제인들이 큰 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면 꼭 거쳐 가는 곳이 중환자실이다. 그들이 죄 값을 피하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때가 되면 병보석으로 풀려나는 것도 작금의 현실이다.

돈과 권력을 이용해 법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사람들은 중환자실을 우습게 볼 것이다. 그러나 환자에게는 중환자실 같이 중요한 곳이 없다. 촌각을 다투는 생명을 이곳에 맡겨야 하는 환자도 있다.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한 것이 생명이다. 중환자실은 일반 의료시설로 관리할 수 없는 중증 질환이나 대수술 환자를 24시간 보호관찰하고, 때에 따라서는 신속하게 구급 및 처치를 하도록 만들어진 종합병원의 특수치료시설이다.

'중환자실'의 첫 글자가 무거울 중(重)자다. 중환자실에 있는 기간은 짧지만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시간이다. 그래서 도의적이지만 환자가 소생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이 의료진에게 있다. 환자나 보호자가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비상구라는 생각도 해야 한다.

수술 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가족들을 놀라게 했던 어머니가 나흘째 중환자실에 계신다. 30분씩 하루에 두 번 있는 면회시간이 가까워오면 중환자실 앞은 환자의 얼굴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렇다고 보호자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많은 것도 아니다.

현재의 기분, 즉 마음속에 품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표정이다. 아픈 사람 만나면서 표정관리까지 하는 사람 없다. 그래서 면회를 기다리거나 끝내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환자의 상태가 짐작된다.

중환자실에는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환자도 있다. 유난히 침울하거나, 조용히 슬픔을 삭이거나,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는 사람들을 보는 날은 괜히 우울해진다. 그게 같은 하늘 아래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어머니가 산소 호흡기를 끼고 힘들어 할 때는 대화를 나눌 수 없어 보호자인 나도 답답했다. 면회를 해도 그저 얼굴 한번 보고, 손이나 발을 만져보고, 전날에 비해 차도가 있는지를 알아보고, 환자들을 돌보느라 바쁜 간호사들에게 수고하신다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호흡기를 떼고 말을 하게 되자 중환자실에 계셔도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있다. 몸에 열이 많이 나서 고생하신다기에 얼른 가습기를 사서 머리맡에 놓아드렸다. 죽을 잡수신다기에 틀니도 찾아다 드리고, 오렌지주스도 사다 드렸다.

그런데 치료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병실로 빨리 보내달라고 소원하는 게 문제였다. 호흡기를 떼면서 첫마디가 "얘, 빨리 일반병실로 옮겨줘"였다. 대수술을 하고 큰 고비를 넘겼지만 현재는 의식이 멀쩡한 환자이다 보니 잠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치료 못지않게 정신적인 치료도 중요하다. 오죽하면 제정신인 사람도 며칠만 가둬두면 돈다고 할까. 생사의 갈림길에서 밤새도록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은 중환자실에서 잠 못 이루는 어머니가 걱정되었다.

할 수 없이 담당 의사를 만나 어머니의 호소를 전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일반병실로 옮겨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중환자실이 아닌 청주 효성병원 366호 일반병실에서 재활을 위해 노력하는 어머니를 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중환자실에서 환자들의 몸을 닦아 주고, 대소변을 받아주고, 주사 등의 응급처치를 하고, 체온측정 등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느라 고생하는 간호사들의 고마움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믈론 중환자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의 자세가 더 중요하다. 어떤 일이든 의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면 힘이 든다. 몸이 아픈 환자들을 가족같이 돌보는 희생과 봉사가 앞서야 한다.

그래서 작은 일이라도 고마워하고, 감사해 할줄 아는 교육이 필요하다. 인위적이라면 문제가 있겠지만 마음에서 우러나 서로 고마워하고 감사함을 전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