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한지 18일째 날이다. 어머니를 간병하고 있는 내가 청주 효성병원 366호에서 보낸 기간이기도 하다.
병실은 몸이 아픈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는 특수상황의 장소다. 더구나 일반병실은 낯모르는 8명의 환자와 8명의 간병인이 같은 공간에서 공동생활을 해야 한다.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사는 방법이나 모습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
10여일 째 할머니를 간병하고 계신 할아버지가 있다. 아흔의 나이에도 할머니를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다니실 만큼 정정한데 나이는 속일 수 없나보다. 낮에는 혼자 복도의 의자를 지키고, 밤에는 할머니 옆에서 “끙끙” 앓으시는 게 하루의 일과다.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요즘 세상은 ‘웬 놈의 병이 이렇게 많으냐?’고 걱정을 하신다. 예전에는 고뿔(감기)이나 뽀드락지(종기) 밖에 없었고, 그것도 산약으로 치료하면 되었다며 병원이 어디에 있는 줄 몰라도 되던 시절이 그립단다.
먹을 게 없어서 고생했던 소싯적 이야기도 자주 하신다. 상도 없이 밥을 먹던 가난한 시절의 이야기 끝에 낡은 집 한 채 있다고 영세민으로 등록을 안 해준다며 푸념을 하신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세상살이가 공평하지 못하다.
쉽게 바꿔지지 않는 게 성격이다. 간병인을 보기 어려운 할머니 한분은 성격 탓에 고생을 한다. 아무소리 없이 잘 계시다가 간호사나 가족이 오면 입버릇처럼 ‘아이고 아퍼’를 찾는다. 볼 때마다 시달리는 간호사나 매일 싫은 소리 듣는 병실사람 중에 누가 짜증할머니를 좋아할까?
자식들이 문병이라도 오면 ‘바쁜데 왜 왔느냐?’고 성화를 하며 쫓는다. 그러고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먹을 것도 없고, 가족도 없는 사람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욕한다’며 전화기에 대고 하소연을 한다.
없는 것도 보태서 하는 게 말이다. 환자의 이야기이고, 대화 상대가 되어주는 관계이니 전화 내용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본인의 이야기 때문에 자식들이 불효자가 되는 것이나 영문도 모른 채 손가락질 받는 것을 할머니는 알리 없다.
아주머니 한분은 번번이 병실 복도를 시끄럽게 만든다. 유난히 말이 많고, 목청이 크고, 행동이 부산스럽고, 듣기 싫은 말만 골라서 한다. 자주 눈에 띄는 것을 보면 잠도 자지 않는 것 같다. 눈치마저 없어 본인이 나타나면 사람들이 슬슬 피하는 것도 모른다.
환자를 간병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면 저러나 안쓰럽기도 하다. 그래도 잘못이 없는 사람에게 괜히 트집 잡을 때는 저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잘못만 탓하는 아주머니를 보고 있으면 ‘재 묻은 개가 똥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어느 사회나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몇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두 힘든 생활을 하는 병동에서는 여러 사람을 위해 자제할 게 많다. 대놓고 얘기하지 않을 뿐 대부분은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아주머니를 미워한다.
며칠 전 퇴원한 할머니 한분은 자손들이 많아 입원기간동안 여러 사람이 드나들었다. 곱게 늙으신 것으로 봐 걱정거리도 없는 집안이었다. 그런데 입원하던 날부터 집에 가자는 게 소원이었다.
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자식 사랑과 생에 대한 집착이 엿보인다. 자식들 멀리서 오게 하는 것과 늙은이에게 왜 쓸데없이 돈을 쓰느냐는 게 퇴원시켜달라는 이유였다. 말끝마다 ‘늙으면 죽어야지, 지랄하고 왜 이렇게 오래 사느냐’고 하시다가 아프기라도 하면 안달을 하시며 가족들을 볶고, 빨리 안 아프게 해달라고 간호사들을 닦달했다.
“안 먹으면 죽을 티지, 안 죽어서 걱정여”
“지 살인가 왜 막 찔러”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자식들이 걱정하거나 간호사가 아프게 링거를 꽂으면 즉각 한마디를 하시는데 그런 말들이 모두 유머 수준이었다. 그래서 할머니의 말끝마다 병실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자식들이 사온 전복죽 한 그릇도 병실의 노인들과 나눠잡숴야 직성이 풀릴 만큼 정도 많으셨다.
비슷한 조건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사는 모습이 다를까? 어떤 게 행복인지, 행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다. 어쩌면 알려고 하지 않는 게 문제다.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게 되어 있다.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게 행복’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