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벙덤벙, 대충대충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그 순간에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그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실수도 하고 남에게 폐도 끼친다. 청주 효성병원 36병동에서 어머니를 간병하며 나도 몇 번 실수를 했고 어머니도 병실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
졸음이 가시지 않은 새벽녘에 눈을 비비며 화장실로 갔다. 3개의 양변기 중 한곳의 문이 조금 열려 있어 아무 생각 없이 문을 확 열었다. 안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있던 사람이 화들짝 놀란다. 화장실 문을 잠글 수 없을 만큼 몸이 불편한 환자였다. 얼른 문을 닫으며 사과를 했지만 부주의 탓에 일어난 일이다.
하루에 몇 번씩 어머니의 소변 통을 비워야 한다. 화장실의 변기에 소변을 쏟고, 걸레를 빠는데 이용하는 수도꼭지에서 빈 소변 통에 물을 받아 다시 변기에 쏟으면 된다. 지금에야 그러지 않지만 처음에는 수도꼭지가 있는 줄도 모르고 병실에 냄새를 피웠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온지 사흘째인 어머니가 어떤 때는 “드-르-르-러-렁~” 5옥타브까지 높이며 코를 곤다. 병실사람들은 잠을 못 이루는데 간병하러 온 자식이 옆에서 잠만 자면 욕할 것 아닌가? 코 고는 횟수를 줄이기 위해 일부러 몸을 움직이게 하며 자세를 바꿔준다.
곤히 자야할 한밤중에 어머니의 ‘머리 밑에 베개를 넣었다 뺐다, 코에 걸쳐 있는 산소흡입기를 뺐다 넣었다’를 반복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어머니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코고는 것을 멈추지만 내가 동작을 멈추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코를 곤다.
수술 후 아직 변을 보지 못해 고생을 하는데다 가래까지 끓으니 무척 갑갑한가보다. 코 고는 것도 모자라 갑갑한 몸 상태를 잠꼬대로 표현하며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얼마나 갑갑하고 불편한 게 많으면 산소흡입기를 빼달라는 게 소원일까.
평소에 코를 심하게 고는 분이 아니었기에 걱정도 되고, 대수술을 하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으면 저러나 안타깝기도 하다. 어머니 때문에 잠 설치는 병실 사람들이나 눈치 보며 밤새우는 자식이나 똑같이 힘겨운 밤이다. 오죽하면 어머니나 병실사람들 모두 마음이라도 편하게 특실로 옮겨 잠이라도 실컷 주무시게 할까도 생각했다.
어머니 혼자만 그래도 병실 사람들에게 그렇게 미안하지는 않다. 일부러 그러는 양 할머니를 간병하고 계신 아흔 살 할아버지의 잠꼬대도 만만치 않다.
자녀들이 오랜만에 할머니 문병을 왔었는데 뭔가 할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고 갔나보다. 누구에게 화를 내는지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잠꼬대 내용으로 봐 자녀들에게 불호령을 내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불호령을 내릴 자식들이 많은지 여러 번 소리를 지른다.
요즘 할머니의 병세가 심각한 것 같다. 자주 통증을 호소하고 모처럼만에 머리를 맞댄 자녀들의 표정도 심각했다. 돈 아까워 병원에 오는 것도 싫어하는 게 노인들이다. 할머니의 병세가 빨리 호전되어야 할아버지가 고생길에서 벗어날 것 같다.
성한 사람들도 잠을 못자면 화를 내는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오랫동안 병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속 터지는 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몸 더 아픈 사람들을 배려하고, 나이 더 먹은 사람들에게 너그러워야 하는 게 인생살이다.
하루 종일 병실의 천정만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나 간병할 자식들이 없는 할아버지나 어쩔 수 없이 남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 몸 성한 사람들이, 나이 젊은 사람들이 그걸 이해하는 사회라면 문제 될 게 하나도 없다. 교육을 통해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