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주 접하는 책 중의 하나가 동화다. 어릴 땐 책을 구할 기회가 없어 동화책을 사보거나 빌려본 적도 거의 없다. 동화라고 하면 한 겨울 이부자리를 무릎까지 세우고 옛날 옛날에 시작하는 이야기를 어른들이나 누나 형들에게 들은 것이 전부이다.
그래서 내게 동화란 그저 옛날이야기 정도로 인식되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동화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애들이나 보는 책 뭐 이런 마음이 동화를 부러 멀리 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동화에 부쩍 관심을 가지고 책을 보게 된 것은 2년 정도다. 우리 집 꼬맹이들에게 사준 동화책도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곤 그 속에 빠져 웃기도 하고 가슴 뭉클해하기도 했다.
지금도 동화란 이름의 책들이 많이 출판되고 있다. 그러나 동화를 어린이나 보고 읽는 책이라고 좁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동화 중에 어른을 위한 동화나 우화 성격의 동화도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동화는 아이들의 시각에 맞추기 때문에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그 속엔 슬픔, 사랑, 고통, 시련을 극복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또 선과 악, 지혜와 무지의 대립이 은연 중에 드러나 아이들에게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따라서 동화 속엔 인간에 대한 삶의 진리들이 듬뿍 담겨 있어 읽는 내내 기쁜 샘물을 마시는 것 같은 마음을 느끼기도 한다.
<아주 철학적인 오후>는 동화이기도 하고 삶의 깨달음을 주는 책이기도 하다. 시원한 선들바람이 부는 오후 숲속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옭기다 보면 실개천 같은 생각들이 모여 작은 깨달음과 큰 울림을 준다. 그리고 삶과 사랑과 자연과 종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성찰하게 한다.
<나무 이야기>를 보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한다. 정원사 부부는 정원에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그리고 정성을 다한다. 부부는 나무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라길 바란다. 그래서 제대로 된 나무는 곧게 자라야만 하고 하나님도 삐뚤게 자라는 나무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쩌다 나무가 뭔가 재미있고 즐거운 일을 하려고 하면 나무는 못된 나무가 되었다. 오직 전원사가 원하는 나무로 자라야 착한 나무가 되고 칭찬받는 나무가 된다. 해서 나무도 정원사의 마음을 알고 그렇게 행동한다. 그러나 나무의 마음은 기쁘지 않다. 슬프지만 정원사 부부의 뜻에 따라 자신의 삶을 포기한다.
이때 한 소녀가 나타나 나무의 슬픈 모습을 보고 안아주고 속삭이며 나무와 대화를 나눈다. 그러면서 아무도 나무를 제대로 사랑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도 이 나무를 제대로 사랑하지 않은 게 분명해요. 보세요. 나무가 얼마나 가지런히 자랐는지를요. 내 생각엔 원래 나무는 전혀 다르게 자라고 싶었을 게 분명해요. 허지만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죠. 그래서 나무는 슬픈 거예요.”
우리는 그동안 교육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을 대해 왔다. 어른의 시각에서 바름이 아이들에게도 바름이 될 거라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생각하게 했다. 어른들의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아이들의 개성이나 자발성은 점차 죽어갔지만 말썽을 일으키지 않은 모범생을 만들려고만 한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나무가 슬퍼하듯이 아이들도 슬퍼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결국 진정한 사랑이란 자신의 생각의 틀에 메어놓은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개성과 자율성을 충분히 펼칠 수 있도록 살펴주는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네 갈래 길>은 한 처녀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산골에서 자란 한 처녀가 바다를 보고 싶어 부모님과 이별을 하고 길을 떠난다. 그리고 큰 산 밑에서 네 갈래 길을 만나 어느 쪽으로 가야 바다로 가는지 알 수 없어 고민에 빠진다. 처녀는 그 네 갈래 길에서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 길, 저 길 가보지만 바다를 가는 길을 확신할 수 없어 떠나지 못한다.
그 사이 계절이 수없이 바뀌고 처녀는 흰 머리만 늘어간다. 어느 길을 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죽기 전에 산꼭대기에 오른다. 그리고 발견한다. 바다는 그 모든 길로 통해져 있다는 것을. 하지만 늙은 처녀는 어느 길로도 갈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다. 결국 처녀는 자신의 꿈을 망설이다가 놓쳐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꾼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꿈을 잊어버린다. 꿈을 이루겠다는 강한 신념은 어느 새 희미해져 버린다. 그러나 언뜻언뜻 자신의 꿈을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그땐 늦는 경우가 많다.
이 이야긴 꿈을 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멈추지 않고 행동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은연중에 이야기하고 있다. 혹 생각해 보라. 나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계속 전진해 나갔는가. 아님 처녀처럼 길 중간에서 주저앉아 생각만 하다 늙어가고 있는가.
이 밖에도 이 책에는 인간의 개인적인 욕망 때문에 자연과의 공존이 아닌 파괴를 일삼는 우리들의 모습을 깨우치게 하는 이야기도 있고, 진정한 믿음을 상실한 채 교리 속에 사로잡힌 현대 종교인들의 위선의 모습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삶이란 무엇인가로 귀결된다.
우리는 늘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그 삶의 모습을 돌아보면 행복과 사랑, 슬픔과 기쁨, 욕망과 어리석음 등이 한데 어울려 있음을 본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삶의 본질에 대해 망각하면서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이 진리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어느 철학적인 오후>는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단 한 번뿐인 우리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