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다. 환자들의 병실 생활을 지켜보면 밖에서 하는 일이나 성격이 그대로 나타난다.
청주 효성병원 366호에 덩치가 큰 아주머니가 교통사고로 입원했다가 며칠 전 퇴원했다. 입원 첫날 침상에 앉자마자 바로 청주 도깨비시장에서 생선을 팔고, 나이가 예순네살이라고 본인의 신원을 밝혔다. 묻지도 않은 가정사나 인생살이까지 큰 소리로 얘기하는 '거침없이 하이킥' 아주머니였다.
노상에서 수십년간 장사를 해온 목청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힘들 거라는 얘기도 큰소리로 했다. 병실에 누워서도 단골 다 떨어지는 걸 걱정했지만 늘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누구랄 것도 없이 나이 더 먹은 사람이면 모두 '성'으로 통했다.
하이킥 아주머니의 말 한마디면 자식들도 즉각 나타났다. 하기야 찾아오지 않았다가는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다. 이러저런 얘기 끝에 꼭 자식들 키운 얘기를 하는 것으로 봐 자식사랑도 남다르고 자식농사도 잘 지었다.
매번 큰소리로 떠들다가 한번 잠들면 업어 가도 모를 만큼 태평하게 주무셨다. 링거의 수액을 마음대로 조정해 간호사들에게 번번이 주의를 받을 만큼 성격도 화끈했다. 그런데 병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모두 관여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 문제였다.
골다공증으로 입원한 할머니가 하이킥 아주머니 옆 침상에 있었다. 치료 과정에서 폐암 말기로 밝혀져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한 환자였다. 할머니의 컨디션이 좋아지면 함께 여행을 다녀온 후 병명을 알려주겠다는 게 가족들의 뜻이었다.
병실 사람들은 할머니의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큰 목청 때문에 하이킥 아주머니는 예외였다. 지켜보는 사람이 조마조마하게 하이킥 아주머니가 할머니를 들볶았다.
"골다공증인데 왜 속이 아퍼?"
"성, 속이 미식거리면 오장이 고장 난 겨."
"의사가 오진한 겨, 다시 진단 받아야 혀."
때로는 해결사 역할도 멋드러지게 해냈다. 부부싸움을 하고 입원한 여자 환자가 있었다. 시댁과 친정에서 교대로 병실을 드나드는데 친정에서는 헤어질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환자도 양쪽의 상반된 얘기를 듣다보니 갈피를 못 잡는 눈치였다.
남편은 매일 밤 병실로 찾아와 사죄했다. 다른 사람이 끼어들 상황이 아니었지만 며칠동안 옆에서 지켜본 하이킥 아주머니는 달랐다. 여자환자가 들으라는 듯 병실이 떠나가라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요새 년들은 걸핏하면 헤어지고 지랄여."
"시장에서 장사하다 보면 별 미친년들 다 봐."
"자식새끼 뗘놓고 가서 잘된 년 하나도 못 봤어."
환자나 보호자나 병실에만 있다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그래서 병동의 복도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다. 몸이 아픈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이유도 없이 시비 붙다 하이킥 아주머니에게 된통 싼 사람도 있다.
위태로웠어도 할머니는 폐암 말기라는 것을 모르고 퇴원했고, 싫은 소리 들었어도 여자 환자는 남편과 사이좋게 퇴원했다. 하이킥 아주머니, 정말 멋지고, 당당하고, 짱이다.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366호 병실 사람들은 분위기 메이커인 하이킥 아주머니를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