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인이 필요한 세상

2007.08.22 16:34:00

예전에는 어른을 공경하는 효를 바탕으로 대가족이 한집에 올망졸망 모여 살았다. 그 시절은 생활이 궁핍해도 우애가 돈독했고, 집안에 몸 아픈 사람이라도 있으면 식구들이 모두 나서 병시중을 들었다. 모두들 그렇게 했고, 환자나 병시중 드는 사람이나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앓는 사람이나 다친 사람 옆에서 시중을 드는 간병(看病)에도 특별히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었다. 부모가 병들면 열일 제쳐놓은 채 부모 곁을 지켜야 하고, 부모를 위한 일이라면 자기 몸 돌보지 않아야 하는 게 도리였다.

요즘은 핵가족시대인데다 대부분의 가정이 맞벌이를 하고 있다. 산업화로 질병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몸 아픈 사람이 집안에 있어도 병구완할 사람이 없을 만큼 사회생활도 복잡하다. 장기적인 치료나 요양이 필요한 환자는 가족이 아니더라도 돌볼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간병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환자를 간호하는 간병인이라는 직업도 생겼다.

병원에 가보면 간병인에게 보호받는 환자들이 많다. 그런데 간병인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자기 가족이 병시중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간병인에게 환자를 맡긴 보호자를 바라보는 시각도 탐탁지 않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나도 간병인 문제로 고민을 했다. 간병인이 아무리 잘해준다 해도 가족보다 못할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방학 중인 내가 책임을 지고 간병을 하기로 했다.

처음 며칠은 그럭저럭 견딜만했고 시간도 잘 갔다. 그런데 하루 종일 병원에 틀어박혀 환자의 시중을 들어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효도를 하는데 이까짓 것쯤이야'라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몸이 근질거렸다.

침대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간병하다보면 두세 시간 토막 잠을 자야하는데다 병문안 오는 사람들 때문에 낮잠도 편히 잘 수가 없다. 십여 일이 지나자 몸이 쑤시고 피로도 쌓여갔다. 눈이 충혈 되어 안과에 갔더니 실핏줄이 터졌다며 편히 쉬는 게 약이란다.

변비와 설사, 고열과 오한이 반복되다보니 환자나 보호자나 같이 힘들다. 힘이 들 때는 짐을 조금씩 덜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마저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살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아내도 한참동안 거동을 조심해야 하는 수술을 받았다.

'여보, 파이팅! 당신이 항상 옆에 있어서 어머니는 흐뭇하시겠다. 효자 아들을 두어서. 나중에 우리 아들들도 그럴까?'

아내는 도움을 줄 수 없는 걸 미안해하며 문자로 응원을 했다. 그렇게 이십여 일을 견뎌내다가 근무 때문에 낮에만 간병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낮에도 어머니 곁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잠 못 이루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간병인이 있는 시간에는 마음이 편해 좋았다.

옆에서 지켜보니 간병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몸이 아프거나 불편한 환자들을 상대하는 간병인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직업보다 체력소모도 많고, 정신적인 고통도 크고, 매사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었다.

지쳐서 환자와 같이 짜증을 내는 보호자들과 달리 간병인들에게는 부드러운 미소와 따뜻한 말씨가 있었다. 의학상식이 풍부해 환자와 간호사의 고리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봉사정신과 희생정신도 투철했다.

환자를 학대하는 간병인도 있을 것이다. 환자에게 시달리다보면 주변 사람들도 피곤할 것이다. 그렇다고 '뭐 이런 환자가 다 있어, 뭐 이런 보호자가 다 있어, 뭐 이런 간병인이 다 있어'를 고집하며 책임 떠넘기기를 하면 곱빼기로 힘이 든다.

어려운 때일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간병인과 보호자가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 되어야 환자가 편하다. 노인문제를 하루라도 빨리 국가가 떠안아야 한다. 그래서 간병인이 더 필요한 세상이다.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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