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하늘 아래에서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2007.08.31 09:55:00

오늘은 어머니가 청주 효성병원에 입원한 지 44일째 되는 날이다. 어려운 수술을 잘 이겨내고 일반병실에서 재활의 꿈을 키우다 갑자기 폐렴 등의 합병증이 발생해 중환자실로 옮긴 지도 열흘이 넘는다.

하루에 두 번 30분씩 주어지는 면회시간에만 환자를 볼 수 있는 게 중환자실이다. 면회 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어 썰렁했던 복도가 비좁고, 환자가 생사를 넘나드는 가족들의 표정에서 긴장감마저 감도는 게 중환자실 앞 풍경이다. 면회복도 한집에 두 벌씩만 배당돼 친척들이라도 여럿 오는 날은 순서를 정해 부지런히 교대를 해야 한다.

세월 가는 것도 모르고 누워있는 환자와 달리 밖의 가족들에게는 피 말리는 시간이다. 전화벨만 들려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로 긴장한다. 평소와 다른 일이 생겨도 환자와 연관 지으며 그게 무슨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한다.

오죽하면 시계가 멈춘 것까지 신경을 쓴다. 결혼할 때 고향의 친구들이 사준 괘종시계가 어머님 방에 걸려있다. 26년이나 되어 낡고 볼품이 없건만 태엽만 감아주면 시간을 정확히 알려주며 제 역할을 다했는데,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하고부터 말썽을 부린다. 아침에 일어나면 시계에서 '째깍째깍' 소리가 나도록 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식사도 못 하시고 하루종일 천장만 바라보고 있으면서 혼자 헛소리를 하는 시간이 많다. 헛소리라고 다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억지로 안돼, 꼭 움켜쥐고 있어, 줄려고 하지 마" 누구에게 하는 소리인지 모르지만 어머님이 일반병실에 있을 때 자주 들었던 말을 생각해보면 그냥 하는 말은 아니다.

"자식이 왜 필요한 거여. 이런 때 써먹으라고 있는 거지."
"자식에게 무슨 효도를 바래. 속 안 썩이면 다행이지."

병실에 있는 사람들이 자식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개 비슷하다. 친척들이 부모 병원에 입원시켜 놓고 낯짝 자주 보이지 않는 자식을 욕하는데 다른 한 편에서는 집으로 고지서 날려 보내고 돈 적게 준다고 대드는 자식도 많다면서 그나마 다행이란다. 결국 자식은 애물단지라는데 의견이 일치한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사람들의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어머님은 척추관협착증으로 다리가 마비돼 수술을 한 분이라 걷는 게 소원이었다.

"간호사들하고 걷는 연습 했어. 매일 걸어다니는데 너는 못 봤니?"

현실에서 못 이룬 소원을 꿈속에서나마 이루고 있는 것인지 만날 때마다 걷는 얘기를 하셔 안타깝다.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누가 옆에서 도와줘야 걸어보지…"라고 말할 때는 안쓰러워 눈물이 핑 돈다.

뜬금없이 내뱉는 엉뚱한 소리도 많다. 날을 잡아 똑같이 목욕을 했더니 시원하다며 좋아하기도 하고, 매일 맨발로 걸어다녀 미안한데 왜 신발을 가져오지 않았느냐고 원망도 하고,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괴롭혀 못살겠다고 하소연도 하신다.

헛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환자가 하는 말에 신경이 곤두서기도 한다. 돌아가신지 오래된 분의 이름을 기억해내며 "금방 만나기로 했어. 너 없어도 편히 잘 수 있으니 앞으로는 오지 마"라고 말할 때는 금방 돌아가시는 것 같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헛소리를 하시더라도 내 어머니이고,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누워있고, 어머니를 보고 나야 마음이 놓여 면회시간을 기다린다. 짧은 시간이지만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숨결을 들으면서 우리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어쩌면 이런 시간이나마 길게 주어지지 않은 것 같아 조바심이 나는데 개학을 하고 보니 오전 9시부터 30분간 이뤄지는 아침 면회시간이 걸림돌이었다. 메마른 것 같아도 인정이 통하는 아름다운 세상이다. 사정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며칠째 아침 6시 30분에 어머님을 뵙는다.

어머님이 훌훌 털고 일어나 아름다운 세상에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같이하는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인지….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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