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림 시인이 들려주는 구수한 옛날이야기

2007.08.31 09:55:00

 
웬만큼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호랑이 담배 먹는다던 옛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을 것이다. 긴긴 겨울밤, 아랫목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 할머니나 누나들이 구수한 입담을 풀며 ‘옛날에 옛날에’ 하면 어린 눈망울들은 귀를 쫑긋 세우며 이야기꾼의 얼굴과 입을 똥그랗게 바라보았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아이들한테 옛날이야기란 그저 흘러간 옛이야기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 아주 어릴 때 엄마들이 들려주는 동화들도 우리의 이야기보단 서양의 이야기들이 더 많다. 더구나 구수한 할머니의 입담은 듣기 어렵다. 이러한 때 할아버지의 구수한 목소리로 옛날이야기 시리즈를 내놓은 시인이 있다. 올해 예순일곱의 나이가 된 최하림 시인이다.

이번에 시인이 내놓은 책은 <서천 서역국으로 복 타러 가네>와 <토목공이와 자린고비>이다.



제 17권인 <서천 서역국으로 복 타러 가네>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자신의 가난한 운명을 어떻게 바꿔볼까 해서 사천 서역국으로 가서 부처님을 만나 복을 빌어 가는 정 도령 이야기인 <서천 서역국으로 복 타러 가네>와 박복한 여인이 덕을 쌓은 덕으로 새 원님이 저승에 갔다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와 박복덕 여인의 쌀 삼백 석을 갚는다는 <주막집 여인의 쌀 삼백 석>이다.

이 두 개의 이야기는 운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그 사람의 사주는 못 속인다.’이란 말이 있다. 사주란 태어난 해, 태어난 날, 태어난 시를 말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주가 좋으려면 태어난 해와 날보다 시(時)가 좋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 두 이야기의 주인공인 정 도령과 박복덕 여인은 시가 좋지 않아 운명적으로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야기에서 운명을 대하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서천 서역국으로 복 타러 가네>에서 정 도령은 자신의 가난한 운명에 불만을 품고 자신의 사주팔자를 조금이라도 좋게 고쳐주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서천 서역국으로 부처님을 만나러 간다. 정 도령은 서역으로 가는 도중 세 명의 부탁자를 만난다.

첫 번째 만난 여인은 혼인한 지 한 달 만에 남편과 사별한 새댁이다. 새댁은 정도령에게 천생연분의 남자를 만나게 해달라는 소원을 이야기한다. 두 번째는 신선이 되기 위해 애를 쓰는 세 동자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용이 되기 위해 천 년 동안 강에서 살고 있는 이무기다.

정 도령은 자신이 복을 빌어 가는 중에 이들의 소원도 가지고 부처님한테 간다. 그리고 부처님을 만난다. 그러나 부처에게 정 도령은 한 번 주어진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소릴 듣지만 세 부탁자의 소원을 이야기한다. 이에 부처는 정 도령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길 해준다.

“그 새댁을 만나거든 전해라. 남편이 죽고 나서 처음 만난 남자가 천생연분 신랑감이라고.”
“세 동자가 두 관의 금으로 황금 꽃송이를 만들어 사이좋게 나누어 가진다면 향기도 뿜고 신선이 될 것이다.”
“이무기가 용이 되려면 여의주가 하나면 되지 둘은 필요 없다.”

이 말을 들은 정 도령은 자신의 복은 얻지 못했지만 헛걸음한 것은 아니라며 홀가분하게 돌아오며 세 사람에게 부처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소원을 이룬다.

그럼 이 이야기에서 옛 사람들은 무얼 생각했을까. 바로 욕심이다. 세 동자나 이무기가 신선이 되지 못하고 용이 되지 못한 것은 욕심 때문이다. 그 욕심을 버리자 그들의 소원은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정 도령의 운명은? 당연히 그의 운명도 바뀌었다. 평생 가난하게 살아야 할 그의 운명은 예쁜 새댁을 얻고 잘 살게 된다.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바꿔보려는 노력이 태어난 시의 운명은 바꿀 수 없지만 삶의 운명은 바꾼 것이다. 여기엔 그의 욕심 없는 마음과 선량한 심성이 전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복을 쌓으면 자신의 운명도 바꿀 수 있다

그럼 <주막집 여인의 쌀 삼백 석>은 어떨까? 여기엔 두 개의 운명이 나온다. 역시 태어난 시가 지지리도 안 좋아 박복하게 살아야 하는 박복덕이란 여인. 그리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이기고 다시 이승으로 돌아온 원님이 등장한다.

박복던 여인은 부모를 어린 나이에 여의고 조부모도 열 살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다. 열여덟에 서른이 넘은 사내와 결혼을 했지만 일 년 만에 죽고 만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복이 없다고 해서 박복덕이라고도 하고 박복데기라고도 한다.

남편을 잃은 그 여인은 이곳저곳을 떠돌다 영산강 나루터까지 흘러와 주막에서 허드렛일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 여인은 온갖 잡일을 하며 진심어린 마음으로 사람들의 슬프거나 기쁘거나 하는 말을 들어준다. 그리고 나중에 주막의 주인이 된다.

주인이 되어서도 그녀는 예전처럼 일한다. 그리고 노자가 떨어진 사람들에겐 노자를 보태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사람들 사이에 그녀는 복과 덕이 많은 사람이라고 소문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영암골에 새 원님이 온다. 그런데 부임한 첫날밤에 새 원님은 염라대왕 앞에 끌려간다. 그게 그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저승에 끌려온 원님은 억울한 사정을 염라대왕에게 조리 있게 말을 함으로써 다시 이승에 온다. 대가를 치르고 말이다. 그런데 그 대가가 박복덕 여인이 평생 동안 성실하게 덕을 쌓아 만든 쌀 삼백 석이다. 저승에서 이 쌀 삼백 석을 주고 원님은 이승에 다시 오고 주막을 찾아 여인에게 다시 삼백 석을 갚는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게 자신의 운명에 임하는 자세다. 정 도령이 자신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면, 박복덕 여인은 묵묵히 일하며 사람들에게 덕을 쌓았다. 그리고 자신의 박복한 운명을 한탄하거나 불만스러워 하지도 않았다. 그저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성실하게 살아갔다. 그러자 두 사람의 박한 복은 실한 복이 되었다. 결국 운명이란 것은 스스로 만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옛날이야길 보면 대부분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여기엔 힘든 삶에 대한 사람들의 희망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여기에 옛날이야기의 매력이 있는지도 모른다. 언재 들어도, 반복해서 자꾸 들어도 질리지도 않고 재미있는 우리들의 옛날이야기. 그 옛날이야기를 할아버지가 된 한 노시인이 손자들에게 들려주고 이야기하고 있다. 구수한 옛날이야기란 이름으로.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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