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야독으로 검정고시 합격한 아이

2007.09.04 17:38:00

까치 네 마리가 교정의 소나무에서 사랑놀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꼭 싸우는 것 같다. 서로 뒤엉켜 노니는 것이 물고 물리는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까치들은 즐거운 사랑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바탕 요란스레 울어대다 지치면 어떤 녀석들은 나뭇가지에 기대어 쉬고 어떤 녀석은 옆에 있는 감나무로 날아가 노랗게 익은 감을 쏘아 먹는다. 한참을 그렇게 쏘아 먹곤 다시 어울리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가을은 감이 익어가는 모습에서 오는 것 같다.

까치의 이런저런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교실 속 아이들도 꼭 까치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교실에 들어서면 아이들은 까치보다 더 요란하게 떠든다. 어떤 아이들은 싸우듯이 인상을 쓴다. 가끔은 요상스런 욕설로 양념을 섞어가며 침을 튀기기도 한다. 그러다 금세 웃고 떠들며 간혹 서로의 몸을 만지작거리며 자지러지게 낄낄댄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야, 너희들 왜 싸워?" 하고 물으면 "우리가요? 히히, 우리 노는 거예요"하며 빨리 가라고 손사래를 친다. 그리곤 또다시 조금은 과격하면서도 능글맞게 논다.

까치를 바라보다 아이들 생각에 멀뚱히 있는데 드르륵거리며 책상 위의 손전화기가 몸살을 떤다. 수진이라는 아이다. 지난해 학기 초 개인 사정과 집안 사정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 후 아이는 낮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 공부를 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연락이 뜸한 아이였다.

"저 수진이에요."
"어, 그래. 잘 지내니?"

"네. 저 이번에 검정고시 합격했어요."
"정말? 축하한다. 참 잘했다. 애 많이 썼구나."

"아니에요. 항상 관심 가져주셔서 고마워요."
"무슨 소리. 암튼 애 많이 썼다. 이제 대학 가야지."
"네. 야간 대학이라도 가려구요. 저 열심히 할게요."

전화를 끊고 창 밖을 바라보니 여전히 까치 네 마리가 어울려 놀고 있다. 가끔 그 아이를 생각할 때마다 많이 아쉽곤 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학교생활을 했던 아이였다. 너무 힘들어 눈물을 보일 때 어깨 몇 번 토닥이면 이내 활짝 웃으며 '저 이제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하던 아이다.

그러던 아이가 숱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교실을 떠났다. 눈물을 보이며 그 아이는 이렇게 약속했다.

"저 공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 검정고시 볼게요. 힘들고 지치더라도 저 꼭 할 거예요.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게요."

학교를 떠난 뒤 아이가 주경야독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한 대형마트에서 오전 10시부터 밤 9시까지 일을 하고 집에 와선 책과 씨름했단다. 힘내라는 문자를 가끔 보내주면 '저 잘 지내요'라며 오히려 내 건강을 염려하는 문자를 보내오기도 했다. 검정고시를 몇 달 앞두곤 학원에 다닌다고 하더니 마침내 검정고시에 합격한 것이다.

전화를 끊고도 자꾸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자기 스스로와 싸움에서 이기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켰기 때문인지 몰랐다.

사실 이러저런 이유로 학교를 떠난 아이들 중엔 수진이처럼 검정고시 봐서 대학에 간다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대부분 자신의 생각을 끝까지 밀고 간 아이들은 많지 않다. 스스로 절제하고 인내하는 습관이 안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진이는 스스로를 이긴 것 같았다.

혹 일부 사람들은 검정고시 합격한 게 큰 대수냐 하겠지만 그 아이에겐 매우 큰일이다. 차비가 없어 학교에 걸어올 때도 있었고, 점심값이 없어 굶을 때도 있었던 아이에게 공부는 늘 갈등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쉽게 굴복하기 쉽다. 이로 인해 늘 현실에 불만을 드러낸다. 그 불만이 심화되면 나중엔 성격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모든 원인을 내가 아닌 남에게서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돌린다. 그런데 수진이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열악한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극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한 때나마 함께 했던 내 마음을 무척 기쁘게 했다.

창 밖 너머 소나무엔 아직도 까치들이 요란하게 장난치며 놀고 있다. 그 까치들의 놀이 속에 한 아이의 얼굴이 나타난다. 밝게 웃는 얼굴이다. 그 환영 같은 얼굴을 바라보노라니 이런 생각이 언뜻 든다.

'녀석도 저 까치들처럼 교실 속에서 와글와글 소리치며 놀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내 바람일 뿐이다. 지금 세상의 바람과 맞서며 꿋꿋하고 밝게 자신의 길을 가고 그 아이는 교실이 아닌 삶의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자신의 길을 열심히 가고 있는 그 아이를 멀리서나마 지켜보는 일 외의 다른 아무 것도 없다. 그래도 난 이따금 바람처럼 좋은 소식 전해오는 그 아이 소식을 기다릴 것이다. 땀 냄새 훈훈한 소식을.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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