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영(가명)이는 소녀 가장이다. 그러나 아영이는 정부로부터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호적상 엄연히 아버지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인 아영의 호적엔 부모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없는 것과 다름없다. 아영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10년 전이다. 그때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현재 중1)은 4살이었다. 아버지와 이혼 후 어머니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식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중1 남동생, 엄마 얼굴도 몰라
1년 후, 아영이와 동생은 할머니 댁으로 보내졌다. 아버지는 남매를 그곳에 맡겨놓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렇게 떠난 아버지는 명절 때나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아버지의 얼굴도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아영이가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얼굴을 본 게 중학교 1학년 추석 때다. 이후론 아버지도 더 이상 남매를 찾아오지 않았다. 다른 가족과도 연락이 끊겼다 한다.
"저는 그래도 괜찮아요. 제 동생은 엄마 얼굴도 몰라요. 거기에 아빠 사랑도 한 번도 못 받았어요. 그게 젤 슬퍼요."
동생이야기가 나오자 금방 목이 멘다. 그러나 끝내 눈물을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애써 눈물을 참는 아영이에게 가장 안타까운 게 뭔가 물어보았다.
"엄마 아빠에게 받아야 할 많은 것들을 제 동생은 전혀 받지 못하고 자랐어요. 제가 동생에게 부모와 누나 역할을 모두 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항상 안타깝고 미안해요."
자신도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 받지 못하고 자랐으면서 동생 생각에 안타까워하는 아영인 동생 이야기가 나오자 눈물을 글썽인다. 그러나 이내 웃는 얼굴로 '저 괜찮아요'라고 한다.
여덟 식구가 한 지붕 아래 살아
지금 아영인 작은아버지 댁에서 지낸다. 시골의 할머니 집에 있다가 중학교 1학년 때 작은집으로 옮겨 왔다.
작은아버지 집에선 모두 8명이 한 식구가 되어 살고 있다. 아영이와 아영이 동생, 그리고 작은부모님(아영인 두 사람을 작은 부모님이라 부른다)과 친척동생 4명(초등학교 6학년, 3학년, 1학년, 네 살 배기 아이)이 작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작은아버진 현재 일정한 직업이 없다. 공사판 일용직으로 하루하루 벌어 생계를 꾸려가지만 요즘은 그마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안정된 작장에 취직을 하고 싶어도 귀가 좋지 않아 취업을 하기 힘들다고. 귀에 염증이 심해 치료를 해야 하지만 치료비 때문에 병원 가기가 쉽지 않다.
작은어머니는 일을 하고 싶어도 어린 동생들 때문에 쉽지가 않다. 대부분 초등학생들이고 아직 엄마의 손이 많이 필요한 어린아이도 있기 때문이다. 주말엔 아영이가 동생들을 돌보아 주지만 평일엔 공부하느라 도와주지 못하는 것이 못내 죄송하다고 말한다.
세무사 되는 게 꿈인 아영이
아영인 학교에서 모범생이다. 성적도 전체에서 항상 3등 안에 든다. 아영이가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장학금을 받기위해서다. 성적 장학생이 되어야 학비를 면제 받을 수 있다. 작은 집 형편상 30만원이 넘는 학비를 대주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세무사가 되고 싶은 자신의 작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래서 오늘도 아영인 곧 있을 세무 1급 자격증을 따기 위해 밤늦게까지 공부한다. 그런 날이면 저녁도 굶기 일쑤다. 어떤 땐 겨우 점심 한 끼로 견디며 공부를 하고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아영인 자신과 동생을 위해 그 모든 것을 참는다고 한다.
그러나 아영이의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성싶다. 형편상 대학에 진학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꿈을 포기한 건 아니다.
"졸업하면 삼성반도체 생산직에 취업하여 돈을 벌 거예요. 그래서 동생도 가르치고 나중에 야간대학에라도 갈 거예요."
아영이의 꿈은 의외로 소박하다. 회사에서 일하며 야간대학을 졸업하여 다니던 회사에서 경리과 사무직으로 옮겨가는 것이란다. 물론 대학에 다니면서 세무공부도 할 거고 말이다.
"저요 힘들지만 슬프지는 않아요. 그래서 자꾸 웃으려고 해요."
무료급식을 하기 전까진 돈이 없어 점심 굶기를 밥 먹듯이 하고 군것질 한 번 실컷 해본 적이 없는 아영이. 그래도 힘들지만 웃는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