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사랑의 갈증을 담은 시집

2007.09.30 10:00:00

예전에 누군가가 시는 어떻게 읽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시의 언저리에 한두 번 맴돌았던 필자에게 시를 어떻게 읽느냐 하는 질문은 시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과 다름없이 막연한 물음이었다. 그때 그 친구에게 뭐라 대답했는지 기억은 없지만 요즘은 있는 그대로 읽으라고 말한다. 자신이 시인이 되어보기도 하고, 시적화자가 되어 보기도 하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읽어보라고 한다.



그러나 시 읽기가 어찌 쉬운 일인가. 자연과 사랑을 노래하는 시 읽기는 그런대로 편안하지만 어떤 대상에 대한 역발상의 표현과 인간의 내면을 다양한 표현을 통해 노래하고 있는 시를 읽기는 그리 편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필자에게도 그건 마찬가지이다. 허나 이러한 시도 천천히 한두 번 읽으며 음미하다 보면 새로운 맛이 새록새록 나옴을 알 수 있다.

이따금 시인에게 시적 사유란 어디까지일까 생각해 본적이 있다. 사물에 대한 인식의 변화, 그에 따른 표현의 발상은 역설과 반어 때론 해학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내면엔 사물에 대한 애정과 폭넓은 관심이 깔려 있다. 그것이 때론 사랑의 모습으로 신선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장인수의 시도 그 하나이다.

물 속에 처박힌 세발 자전거를
수초가 핥고 있다
잠자리 유충의 놀이터가 되고
물고기의 식당이 되고 있다
핸들과 바퀴의 제어를 벗어나서
강물이 마련해 준 개흙 신방新房에서
새살림을 꾸린다
개흙에 반쯤 파묻힌 세발 자전거
붕어 새끼들의 유치원이 된다
- '자전거' 전문 -

물 속에 처박힌 자전거는 어느 새 시인에게 유충의 놀이터로, 물고기의 식당으로 변한다. 그리고 개흙과 신방을 차리면서 다른 생명체들의 도우미가 된다. 쓸모없이 버려진 세발 자전거는 다른 생명체들과 어울리면서 또 다른 존재성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이의 기저에는 버려진 것에 대한 사랑이 깔려있다. 그의 다른 시를 한 번 보자.

이불 속에서
내 발가락이
잠결에
아내의 발가락을 살짝 만난다
문득, 발가락 끝에서 귤 같은 느낌이 밀려온다
손을 더듬어
아내의 가슴을 만진다
귤의 꼭지를 만진다
아내는 나의 손길을 눈치 채고 있으면서도
가만히, 있다
아내의 과일을 만진다
말랑말랑
슬픔의 감촉
생명의 감촉
푸릇한 별빛과 햇살을
과즙으로 담아 낸
아내의 과일
내 손에 귤물이 스며든다
-'귤' 전문 -

잠결에 만져진 발가락을 통해 시인은 '귤'을 떠올린다. 그런데 그 귤은 아내의 가슴이 되고, 슬픔과 생명의 감촉이 되어 나에게 귤물이 되어 돌아온다. 아내는 시인에게 슬픔이면서 생명이다. 왜 그럴까? 누구나 촉촉하고 부드러운 아내의 과일을 만지다 보면 아내의 고달픈 삶이 전해질 것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식들을 잉태하고 기르는 아내의 깊은 생명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시인은 이렇게 아내에 대한 사랑을 감각적인 표현을 빌려 표현한다. 발가락에서 귤을 연상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것이 가슴으로 이동하고 내 손으로 옮겨온다는 시적 사유는 장인수 시가 갖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평론가 권혁웅의 말을 빌리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마주하는 자리에서 반짝이는 그의 시안이라 할 수 있다.

시를 읽다보면 얼핏 시인의 시가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한 켠 더 들어가면 해학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웃음도 주고 그 웃음 속에 숨어있는 슬픔도 준다. 이는 시인의 말처럼 '자신의 몸에 스며들어 정액이 되고, 피가 되고, 웃음이 되고, 갈증이 되는….' 그 무엇이다.

가을이다. 가을에 맞는 게 있다면 한 편의 시라고 할 수 있다. 노랗게 익어가는 감나무의 감과 조금씩 자신의 몸을 바꾸어 가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차 한 잔 옆에 두고 한 권의 아니 한 편의 시를 읽는 여유를 가졌으면 어떨까 싶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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