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이나 도로변의 나무들이 저마다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이고 사람들을 유혹하는 계절이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깊은 산길과 호숫가를 굽이굽이 돌며 단풍으로 곱게 물든 산과 수면에 비친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덤으로 감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오지마을도 구경할 수 있다.
충북 옥천군 군북면 석호리와 진걸마을 갈림길에서 진걸마을로 길을 잡으면 대청호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오지마을의 묘미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진걸마을로 가는 도로의 오른편 호숫가에 옛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세 칸짜리 정자 청풍정이 자리 잡고 있다. 1790년경 참봉 김종경이 지은 정자로 1900년경 불에 타 옛터만 남아 있었던 것을 1995년 옥천군에서 복원했다.
청풍정에 올라서면 호수를 품고 있는 산 풍경이 대청호의 수면에 펼쳐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명월이의 깊은 사랑이 녹아있는 것 같아 물빛도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이곳의 풍경은 댐이 조성되기 전에 더 아름다웠었다는 얘기를 들으니 그 당시 금강의 깨끗한 물과 울창한 숲,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낸 비경을 짐작해볼 수 있다.
청풍정 바로 옆에 '명월암(明月岩)'이라는 글귀가 암각 되어 있는 바위 절벽이 있다. 청풍정과 명월암은 구한말의 풍운아 김옥균에 대한 애절한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바위에 쓰여 있는 명월암이라는 글씨도 김옥균의 친필이라는 설이 있다.
청풍정과 명월암의 설화는 한 시대의 풍운아였지만 개화정권을 수립하려던 갑신정변이 청나라 군대의 개입에 의해 삼일천하로 끝나면서 불운했던 김옥균과 김옥균을 사모하던 기생 명월이에 관한 이야기다.
김옥균이 이곳 옥천의 깊은 골짜기로 피신했을 때 옆에 명월이라는 기생이 있었다. 김옥균을 지극히 사랑하던 명월이는 혹시라도 자신 때문에 대망을 꺾을까 봐 꼭 뜻을 이루라는 장문의 편지를 남기고 바위 위에서 강물로 뛰어든다.
다음날 사실을 알게 된 김옥균은 명월이의 사랑에 감복해 하며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른 후 바위에 명월암이라는 글자를 새겨놓고 일본으로 망명길에 올랐다고 전해진다. 그 당시는 높이가 20여m나 되는 절벽이었다니 명월암이라는 글자가 바위 절벽에서 대청호를 내려다보고 있는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가을 하늘도 호수를 닮았다.
김옥균의 부인 유씨와 딸이 갑신정변(1884년)으로 옥천에 피신했다가 1893년까지 비녀로 하천(下賤)되어 고생스럽게 살았던 수기가 전해오고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