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삼백리 회원 몇 명이 옥천군 군북면에 있는 환산으로 개척 산행을 다녀왔다. 대청호와 금강으로 둘러싸여 있는 환산은 산행을 즐기면서 호반의 아름다운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환산이 ‘충북의 자연환경명소 100선’에 지정된 것도 대청호를 내려다보는 수려한 자연경관 때문이다. 명산이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아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지도에 환산(環山)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이곳 주민들은 ‘고리산’으로 부른다. 옛날 이곳이 바다였을 때 배를 맸던 고리자국이 있는 바위가 산 중턱에 있어 고리산이 되었는데 한글이 천대받던 시절 ‘고리 환(環)’자를 써서 한자로 표기하며 ‘환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우리말인 ‘고리산’을 고집하는 이곳 사람들에게서 순박함을 엿볼 수 있다.
환산은 백제의 왕자 여창이 쌓았다는 고리산성의 성지가 남아있고, 조선시대 봉수대가 자리하고 있었던 군사요충지다. 100개의 봉우리가 있었는데 큰 장수가 나올 것을 염려한 당나라의 장수가 봉우리 하나를 없앴다는 아흔아홉 산봉우리에 대한 전설도 전해져온다.
옥천에서 4번 국도를 타고 증약, 대전방면으로 가다 보면 추소리 이정표가 나타난다. 군북치안센터 앞쯤에서 이정표를 따라 우측으로 들어서면 철도와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터널을 연달아 만난다. 통행하는 차량들이 제법 많은데 차선이 하나라 양보의 미덕이 필요할 만큼 좁은 터널이다.
터널을 빠져나가며 바로 우회전하면 가까운 언덕길 옆에 환산에 대한 표석과 등반안내도가 있다. 이백리의 황골에서 등반을 시작하는 곳으로 환산을 찾는 사람들이 즐겨 이용하는 등반코스다. 이곳에서 고무실로 불리는 환평리와 이름이 아름다운 추소리까지는 대청호반을 따라 굽잇길이 한참 이어진다.
길가에서 만나는 작은 집들도 옹색하게 보이지 않을 만큼 호반의 풍경이 아름답다. 굽이굽이 호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추소리 세심원 앞이다. 유불선을 아우른다는 세심원은 ‘세계인류세심운동본부’라는 큰 글자 밑에 ‘남북통일’과 ‘인류평화’가 쓰여 있어 찾는 이를 의아스럽게 한다.
세심원(洗心阮)의 개생문(開生門)을 들어서면 여러 종류의 석상들을 만난다. 군인들의 비석과 6·25참전 16개국의 위령비를 보며 입구에 왜 남북통일과 인류평화가 쓰여 있었는지를 이해한다.
세심원 앞 능선으로 등산로가 있지만 답사코스를 알아보는 산행이라 되도록 사람들의 발길이 적은 계곡 길을 택하기로 했다. 세심원의 끝머리와 이어지는 계곡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바로 사방댐을 만난다. 사방댐과 가까운 계곡에서 이름 없는 폭포가 반기는데 생김새로 보아 수량이 많은 여름철에는 제법 위용을 뽐냈을만하다.
그곳을 지나면서 연달아 만나는 4개의 돌탑은 탑에 길쭉한 돌들이 꽂혀있어 다른 곳에서 보는 돌탑과 모양이 다르다. 마지막 돌탑은 옛 집터 자리 가까이에 있어 돌탑 주변의 감나무에 잘 익은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돌탑 앞에 도사와 수련생이 명상에 잠겼을법한 소나무를 엮어 만든 작은 의자가 놓여있어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이곳부터 급경사길이 한참 이어져 극기 훈련을 하듯 앞만 보고 걸어야 한다. 우거진 잡목들이 바로 앞에 있는 정상과 뒤로 보이는 대청호반을 가려 아쉽다. 그래서 환산 등반은 잎이 떨어진 겨울이라야 대청호의 풍광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작은 것이 소중하고, 작은 일로 감동하는 게 인생살이다. 때도 모르고 꽃을 피운 철쭉과 진달래를 산에서 만난다. 색깔이 곱고 예쁜 것은 대부분 독버섯이다. 가지 색깔이라 독버섯으로 생각하기 쉬운 가지 버섯이 군데군데 많아 일행들을 즐겁게 했다. 하나의 줄기가 둘이 되었다가 다시 만나 셋으로 나눠지는 괴상한 소나무도 봤다.
작은 옹달샘을 지나면 주변의 봉우리들이 아래로 보이고 비교적 대청호가 잘 보여 정상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565봉을 만난다. 추소리와 대청호가 어우러지는 모습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멋진 풍경인데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도 잡목 몇 그루가 앞을 가로막는다. 정상은 이곳에서 450여m 거리에 있다.
헬기장이 있는 정상부는 사방이 숲으로 가려져 있어 조망이 나쁘다. 조선시대에 대전시 계족산과 문의면 소이산을 연결하던 봉수대는 정상에서 황골 방향으로 3.2㎞ 떨어져 있다. 정상의 모서리에 이곳이 정상임을 알리는 정상비가 서 있다. 그런데 이 정상비에 문제점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산에 오른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든다.
이구동성으로 정상비의 문제점을 얘기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임도로 내려가는 길을 택해 하산하기로 했다. 정상부를 벗어나 한참을 내려오니 대청호와 주변의 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환산의 정상부도 한눈에 들어온다.
공곡재로 내려와 대청호를 바라보며 걷다 보면 이평리를 만난다. 보현사가 위치한 이평리는 이탄(배일)과 갈평(갈벌)의 이름을 따서 지은 지명으로 마을 뒤에 환산이 서 있고 마을 앞에 대청호의 물길이 펼쳐져 도로변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낚시꾼들은 환산이 발을 담근 대청호에서 여유를 누리고 있는데 환산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하는 나그네의 속 좁은 마음에는 서산으로 지는 해가 빠르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