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학교들의 대부분은 역사가 깊고 졸업생을 많이 배출했다. 한때는 학생들이 넘쳐나 한반 인원이 60여명이나 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농어촌은 아기의 울음소리가 희망의 팡파르로 들리고, 학생수 감소로 학교마저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형편이다.
열악한 생활여건으로 이농현상이 시작될 때부터 농어촌 학교의 학생수 감소로 인한 교육의 붕괴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문제는 학생수 감소가 농어촌 교육의 붕괴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교육당국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라 변화에 적응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렇더라도 모든 것의 기본이 되는 근본만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정치와 경제 논리에 꿰맞출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농어촌에는 경제논리를 앞세운 통폐합 정책에 의해 많은 학교들이 문을 닫고 있다.
불도저마냥 밀어붙이고 있는 통폐합 논리대로라면 농어촌에 남아날 학교가 없다. 학교는 지역사회의 센터이자 문화의 요람이다. 소통이 이뤄지는 광장을 만들면서 지역에 다양한 정보와 문화를 제공하고, 졸업생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돼주는 게 농어촌의 학교다. 잡초가 우거진 채 방치되고 있는 폐교는 농어촌에 살고 있거나 졸업한 사람들의 꿈을 빼앗는다. 그런데 교육당국은 농어촌의 폐교 수를 늘리는 정책을 줄기차게 추진하고 있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를 따지기 이전에 농어촌의 열악한 교육환경이 이농현상을 부채질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농어촌 사람들은 해가 갈수록 교육이 붕괴되고, 자녀교육을 가난과 함께 대물림해야하는 기막힌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서로 점점 더 달라지고 멀어져 없는 것, 덜 배운 것을 서럽게 만드는 게 양극화다. 어느 사회든 양극화는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에서만큼은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아야 하고 교육만이 양극화를 해결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농어촌 사람들은 교육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하다고 불만이다. 학원 등의 교육여건 때문에 나온 얘기가 아니다. 교실 등 노후화 된 학교시설이 아이들이 적어 쓸쓸한 농어촌의 학교를 더 서글프게 만든다는 것이다.
통폐합을 추진하면서 정책적으로 농어촌 학교의 노후화된 시설물에는 예산을 투자하지 않고 있다. 여름에는 창문을 열 수 없어 찜통을 만들고, 겨울에는 찬바람이 쌩쌩 들어와 두꺼운 옷을 입어야 하는 게 농어촌 교육의 현실이다.
활기 잃은 농어촌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면 농어촌 교육을 되살려야 한다. 도회지 신설학교의 교육 환경 선진화 못지않게 농어촌 학교의 노후화된 시설에도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의무교육 체제에서 농어촌 아이들이 차별받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다. 양질의 교육정책으로 농어촌 아이들에게 용이 될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농어촌 사람들이 개천에서 나는 용에 희망을 걸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교육당국이 열린 자세와 사고를 갖고 농어촌 학교의 열악한 교육환경 개선에 앞장서야 한다.
* '월간학부모' 11월호 '신문고/농어촌 교육 황폐화'에 '농어촌 교육, 희망의 불씨를 살리자'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