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학교가 즐거운 아이들

2007.11.28 17:52:00




                             <마량토요음악회에 출연한 부채춤 공연 장면>

“선생님, 오늘은 창작 무용을 하실 거예요?”
“어제 모둠끼리 창작 무용 하는 게 참 좋았어요.”
“그랬니? 선생님도 여러분들의 실력에 날마다 놀라는 중이랍니다. 자, 오 늘은 학예회 출연 연습을 위해 잠깐 복습을 한 다음에 자기 짝과 모둠, 여섯 명 모둠으로 2분 창작 시간을 갖겠습니다.”
“선생님, 또 다른 대회에 출연할 계획 없으세요?”

매주 화, 목, 금 3시 20분이 되면 1학년 우리 교실로 찾아오는 12명의 아가씨들과 나누는 대화랍니다. 지난 9월 초부터 시작한 방과후학교 시간에 한국무용 중에서 부채춤을 배우기 위해 3학년부터 5학년 여학생 12명과 함께 시간을 나눈 지 벌써 3개월입니다.

학교에서 새로 사준 부채를 들고 귀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가락의 장단을 익히며 기본 동작 하나하나 배우며 동작을 익히다보면 40분도 짧았습니다. 부채가 잘 펴지지 않는다며 칭얼대는 3학년 아가씨들, 눈병이 돌아서 조퇴를 한 짝꿍 때문에 꽃모양을 만들 수 없어 낙담도 하면서 그렇게 한 달 동안 열심히 부채춤을 배워서 기본 동작을 거의 익혔을 무렵, 교육청에서 방과 후 학교 발표대회를 하니 출연 종목을 정하느라 고심할 때였습니다.

우리들이 연습하고 있던 부채춤은 한복을 비롯한 소품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종목이라서 선뜻 나설 수가 없어서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가진 한복의 색깔과 모양이 다 다르고 한복이 없는 학생까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체 무용의 특성 상 출연 학생이 모두 같은 복장을 해야 통일성이 있어야 무용하는 모습이 분산되지 않아서 그 아름다움도 돋보입니다. 의상과 소품이 무용을 배우는 마음을 능가할 수는 없지만 준비성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 주신 분은 바로 우리 학교 이성범 교장 선생님이었습니다. 12명이 입어야 할 한복을 모두 학교 경비로 맞춰 줄 테니 열심히 공연 준비를 하라고 하신 겁니다. 똑 같은 한복을 예쁘게 맞춰 입고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기쁨에 아이들과 나는 한층 용기백배하여 열심히 가르치고 익히기를 거듭했습니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고급스런 한복을 준비하여 학부모의 부담을 덜어주니 한복 걱정으로 힘들어하던 아이들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음은 물론입니다.

둘이서 꽃을 만드는 동작, 여섯 명이 물결치는 동작을 할 때는 옆 사람의 부채에 찔리기도 하고 여섯 명이 꽃을 만드는 동작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꽃을 피우는 장면을 표현해야 합니다. 국악 장단을 들으며 다른 사람과 협동하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하는 부채춤은 배우는 아이들을 한 마음으로 묶어주는 구실도 하게 됩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한복 자락을 밟아 넘어지게 하거나 이어지는 다른 동작에 지장을 주기도 하고 부채를 떨어뜨리면 꽃 모양이 부서져서 전체적인 모습이 흐트러지기도 합니다. 한 순간도 한 동작도 마음을 놓기 어렵습니다. 거기다 족두리를 꽂아야 하는 머리를 단단히 고정시켜서 동작을 할 때에도 떨어뜨리지 않아야 합니다. 신발까지 같은 색으로 꽃신을 신거나 구두로 분홍색으로 맞춰 신게 했습니다.

두 달 동안 배우고 익힌 부채춤을 공연하는 군 대회 날을 앞두고 전교생 앞에서 공연을 하고 난 아이들과 나는 뻣뻣한 동작으로 세련되지 못한 모습에 실망하고 장단을 잊어버려서 순서를 놓치기도 해서 마음이 다급했습니다. 급기야 우리들은 방과후학교 수업이 없는 수요일 오후에도 남아서 2시간씩 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드디어 11월 1일, 잔뜩 부푼 마음을 안고 강진군교육청에서 주최한 방과후학교 발표대회에 참가한 아이들은 아침밥도 대강 먹은 데다 점심마저 이른 시각에 먹는 바람에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배가 고프다고 졸랐습니다. 관중석에 얌전히 앉아서 다른 학교 학생들의 공연을 보는 것도 학습의 연장으로 참 좋았습니다.

우리 학교 부채춤이 15번째 프로그램으로 무대 위에 올라 공연을 하던 순간은 심장이 멈출 것 같은 긴장감이 나를 압도했습니다. 그 동안 열심히 잘 했으니 마지막으로 예쁘게 웃는 모습만 추가로 주문했던 나의 바람을 알기나 한 듯 아이들은 연신 고운 웃음을 날리며 4분 39초 동안 화사한 춤사위를 자랑하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배울 때보다 더 잘해 주어서 많은 박수를 받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강진 방과후학교 발표회 출연 중인 마량초등학교 부채춤 공연팀

  해냈다는 보람과 자신감으로 아이들도 들떠 있었고 공연장에 나오셔서 끝까지 지켜본 학부모님들은 너무 감동을 한 나머지 눈물까지 보이시며 잘 했다며 감사하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으셨지요. 배고프다는 아이들을 위해 간식을 사 오신 학부모님과 교장 선생님의 후원에 더욱 힘이 난 우리들은 다음 공연을 위해 다시 연습을 감행했습니다.

마량토요음악회 무대에 출연 약속을 받고 보니 4분으로는 너무 짧다하여 배로 늘여서 준비하는 바람에 9분으로 늘었지만 몇 군데만 수정하여 다시 연습을 했습니다. 가장 아쉽고 속이 상했던 것은 출연 아동 중 한 명이 학교 체육 수업 시간 중에 달리다가 다리를 다쳐 함께 연습을 못하여 출연할 수 없었던 점입니다.

11월 10일, 쉬는 토요일이었던 그날은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몹시 걱정을 많이 하며 공연 준비를 했습니다. 공연 때문에 귀가 일정을 하루 늦춘 교장 선생님, 아이들의 분장을 위해 일부러 학교에 나와 준 정혜선 님까지 한 마음이 되어 댕기머리를 만들고 족두리에 한복까지 차려 입은 11명의 출연 아동은 두 번째 공연장인 마량토요음악회 무대에 섰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아랑곳하지 않고 화려한 춤사위를 펼친 자랑스러운 모습은 사진으로 남아 학교 홈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 12명은 선생님에게 배운 동작을 넘어서 자기 스스로 동작을 꾸미고 장단을 세며 다른 사람과 함께 새로운 무용을 창작하는 즐거움으로 방과 후 교육 프로그램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배우는 단계를 넘어 스스로 즐기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니 가르치는 보람이 쏠쏠합니다. 제법 한국무용의 부드럽고 우아한 동작을 장단에 맞춰 표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먼 후일 우리 고전 무용의 한 자리를 빛낼 예술가의 모습이 아이들의 얼굴위로 클로즈업 되어오는 행복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둔했던 몸이 부드러워졌다는 아이들, 빠른 장단에는 어떤 동작이 어울리고 음악에 몸을 맡기며 부채춤의 새로운 춤사위를 생각해내느라 모둠끼리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며 부채를 펼치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4분 39초짜리 공연 음악 테이프를 복사해 주며 한 사람씩 창작 독무를 하게 할 계획까지 세우게 되었습니다. 겨울방학 동안에 방과후학교 과제물로 부채춤 독무를 연습하게 한다고 하니 아이들은 즐거운 비명까지 지릅니다.

국가에서 막대한 경비를 들여 설계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은 특기 • 적성 교육 프로그램을 보완하고 사교육비를 경감하면서도 학생들의 다양한 욕구를 흡수하여 소질을 계발하고 흥미로운 학교 교육활동으로 자리 잡은 모습은 학부모님들에게도 공교육과 학교 교육을 신뢰하는 바람직한 기회를 제공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입에서 학년 교육과정에서 배우기 힘들었던 전통 무용을 배우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이 즐거웠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으며 앞으로도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방과후학교를 꿈꾸어 봅니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