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감나무처럼 외롭게 서있는 아이

2007.12.08 08:42:00


오늘 그 녀석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아침, 교실에 들어서자 녀석의 자리만 쓸쓸하게 비어있다. 언제부턴가 반 아이들은 녀석의 자리가 비어도 ‘왜 안 와요?’ 하고 묻지 않았다.

아이들의 세계는 그렇다. 잠시 동안의 호기심이나 관심은 보이지만 지속적이지 않다. 며칠 씩 결석해도 아주 친한 친구가 아니면 잘 묻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서 늘 웃고 떠들고 장난치고 하다가도 금세 시들해지는 경향이 있다.

창가를 내다보았다. 거무튀튀한 모습으로 외로이 서있는 감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 오랫동안 서있었을 감나무. 봄의 파릇함은 어디 갔는지 생기는 찾아볼 수가 없다. 꼭 그 녀석 같았다. 지금 녀석은 겨울의 복판에 서서 외롭게 서있는 감나무와 같았다.

휴대폰을 꺼내들고 감나무 같은 녀석에게 ‘어디 있니?’라고 문자를 보냈다. 답이 없다. 어쩌면 지금쯤 녀석은 거리를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님은 방구석에 쳐 박혀 이불 뒤집어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답이 없는 녀석에게 다시 ‘학교에 오거라.’라고 문자를 보냈다. 여전히 답이 없다.

답이 없이 4교시가 흘러갔다. 점심시간, 자리에 앉아있는데 익숙한 얼굴이 교무실 문을 빼죽 열고 두리번거린다. 눈이 마주치자 녀석이 활짝 웃으며 빨리 나와 보라고 손짓한다.

“임마, 왔으면 니가 들어와서 인사를 해야지 나오라고 해! 나쁜 놈.”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이 갑자기 팔짱을 끼더니 입이 찢어지게 미소를 띠며 조잘댄다.

“선생님, 저 학교 다닐 수 있어요. 다른 학교 가도 말썽만 피울 것 같다고 학주 쌤이 나오라고 했데요.”
“아니, 그래서 이렇게 학교에 온 거야?”
“아뇨. 그건 아니구요. 쌤 문자 받고 학교 오는 길에 쭈한테 문자 받은 거예요.”

얼마 만에 웃는 얼굴인가 싶다. 항상 뭔가에 쫒기고 불만이듯 얼굴에 인상을 한 소쿠리 달고 살던 녀석, 학생주임의 전학이나 가버리라는 말에 절망의 눈빛을 하더니 다시 학교에 나오라는 말에 세 살 바기 어린애마냥 천진하게 웃는 아이를 보고 있으려니 나 또한 기분이 좋아진다.

“야, 너 혹시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이란 시 아니?”
“네, 들어본 것 같기는 해요. 근데 갑자기 웬 시요?
“그 시를 보면 어떤 사나이가 나오거든. 근데 그 시 속의 사나이를 보고 있으면 니 생각이 자꾸 난다. 니가 읽으면 꼭 너와 같다는 생각이 들 거다. 한 번 읽어 볼래?”
“나 시 같은 거 싫어하는데… 그래도 우리 쌤이 간청하니까 한 번 읽어 보죠 뭐.”
“뭐, 임마!”

녀석과 토닥거리다 생각난 김에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을 프린트 해 주었다. 조용히 혼자 있을 때 읽어 보라며 건네주며 이렇게 말했다.

“시 속의 사나이를 고민 많은 너라고 생각하며 읽어봐. 어떤 마음이 이는지 생각해보고. 단 의미 같은 건 생각지 말고 그 냥 니 자신을 시 안에 집어넣어 보거라.”

산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어다보니 그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녀석이 이 시를 어떤 마음 생각으로 읽을지는 모른다. 그저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부정하고 자신감을 잃은 아이가 시인이나 시에 대한 아무런 선입견 없이 읽으면서 자신의 상황을 한 번 돌아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 시를 줬을 뿐이다. 그리고 아이의 마음속에 밝은 달이 빛나고 하얀 구름이 흐르는 파란 하늘이 펼쳐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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