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파는 동화가게

2007.12.28 14:14:00

가난하고 눈물나지만 되돌아보면 행복한 기억으로 간직되어지는 게 있습니다. 우연히 길을 가다 마주친 사금파리가 햇빛에 반짝거리는 것처럼 반가운 것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중년의 나이 쯤 되고 시골에서 자랐던 사람들은 누구나 경험했던 아련한 것들. 도시의 각박한 삶 속에서도 모처럼 코 흘리게 불알친구들과 만나 막걸리나 소주 한 잔을 걸치면 늘 웃음 안주로 나오는 것들. 그런 것들을 파는 가게가 있습니다. 바로 <벌거벗은 수박 도둑>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온 김택근의 '동화가게' 입니다. 



동화가게. 왠지 이름부터 정겨운 냄새가 납니다. 그 정겨운 냄새가 나는 구멍가게에 들어가 보면 눈물도 있고, 행복도 있고, 웃음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이 주는 슬픈 아름다움도 가게 한쪽에 먼지를 닦은 고운 모습으로 진열돼 있습니다. 진열된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내 추억 속에 집어넣자 고스란히 되살아옵니다.

"그런데 우리 촌뜨기들을 보자 누나들이 갑자기 작업장을 뛰쳐나와 우리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주머니마다 가득가득 과자를 채워주었습니다. 뒷주머니, 안주머니, 윗주머니…… 심지어 쓰고 있는 모자를 벗겨 그 안에도 과자와 사탕을 넣어주었지요. 나중에 꺼내보니 그때 막 유행하던 풍선껌도 일곱 통이나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리둥절했지요. 그러나 이내 누나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촌스런 우리를 보고 아마 고향 생각이 났을 겁니다.

우리는 그 사탕과 과자들을 한두 개 먹는 시늉만 하고 모두 가방 속에 넣었습니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드리고 동생들과도 나눠 먹으려고요." - 수학여행 중에서-

예전엔 과자가 참 귀했습니다. 학교를 오가는 길에 있는 구멍가게엔 과자들이 듬뿍 쌓여있지만 그림의 떡이었지요. 어쩌다 10원짜리 동전이 생기면 콩알만한 독사탕이나 고구마 과자를 사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끼고 아끼며 먹었지요. 사탕을 먹을 땐 깨물어 먹은 적이 없습니다. 빨리 녹을까 봐 아끼고 아끼며 살살 먹었지요.

국민 학교 때 수학여행 하면 으레 서울로 갔습니다. 당시 서울은 꿈속에서만 상상하는 도시였습니다. 서울에 간 형이나 누나들은 까맣던 얼굴들이 모두 하얗고 고운 얼굴이 돼서 돌아왔지요. 서울은 마법의 도시였습니다. 그 수학여행 차 들르는 곳이 과자 공장입니다. 시골 촌놈들이 오자 과자 공장에서 일하는 어린 누나들이 아이들에게 과자를 듬뿍듬뿍 주머니에 넣어줍니다. 풍선껌도 있습니다. 고향 생각에 그랬을 겁니다. 과자를 주머니에 넣어주며 고향에 있을 어린 동생들 생각에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릅니다. 아픈 추억이지만 지난 날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그렇지만 모두 수학여행을 가는 건 아니었습니다. 남조가 그랬습니다. 수학여행에 가고 싶어 시키지도 않은 텃밭의 풀도 뽑고, 물도 긷고, 마당도 쓸자 남조의 어머니는 "이놈아, 시키지도 않은 일을 왜 하냐?" 하며 볼기를 때리고 울고 맙니다. 엄마의 아픈 마음을 어린 남조가 어찌 알겠는가마는 가난 때문에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경우가 당시엔 허다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도 세월이 흐르고 나면 아픔보다는 아리지만 추억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어 유년을 풍요롭게 해주는 걸 보면 시간이란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은 병수 아버지가 시켰지만 누렁이를 보살피는 것은 병수였습니다. 누렁이가 쉬는 날이면 끌고 나가 논두렁이나 강둑에서 풀을 뜯겼습니다. 먼 마을에서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고 어둠이 조금씩 내리는 시간은 정말 평화로웠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소 울음을 앞세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매일 걸어도 정겨웠습니다. 마음 사람들도 누렁이가 있어 듬직했습니다. 누렁이는 마을의 충실한 일꾼이었습니다." -누렁이가 울던 날-

농사꾼 집에 소는 단순한 동물이 아닙니다. 소는 그 집 식구나 한 가지였습니다. 농사지을 땅뙈기가 별로 없어도 소 한 마리만 있으면 든든했습니다. 봄 가을로 소는 충실한 일꾼이었습니다. 일이 없는 날이면 풀이 좋은 곳을 찾아 꼴을 베거나 소를 끌고 다니며 풀을 먹였다. 그러다 일이 한가한 겨울이 되면 소여물을 정성 드려 끓여 주었습니다.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여물을 소는 맛있게도 쩝쩝거리며 먹었습니다. 여물을 먹는 모습만 봐도 마음이 포근해지던 시절이었지요.

그러나 소도 나이가 들면 힘이 부치게 되고 농사일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소는 팔려가거나 도살장으로 끌려 가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병수네 소도 그랬습니다. 병수네 식구가 가족처럼 생각했던 누렁이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던 날 병수는 누렁이의 목을 껴안고 울었습니다. 누렁이도 커다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담더니 주르르 흘렸습니다. 그렇게 누렁이도 기억 속으로 멀어져 갔습니다. 그리다 동화가게 안에 슬픔 한 주먹으로 진열되어 우리 곁으로 찾아왔습니다.

동화가게 안엔 서른세 개의 이야기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모두 가난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서로 위해주고 정이 넘치는 것들이 물씬 풍기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아니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살아왔던 이야기들이 꾸밈없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돌아보면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그림들이 따사로이 담아있습니다. 화사한 봄 날, 동화가게에 들러 맑은 이야기들을 구경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김 현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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