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전국우표ㆍ편지지도위원회를 알게 되었다. 지난 1월 24일과 25일 양일간은 천안의 정보통신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워크숍에 참석해 학교 우취반 운영에 관한 교육도 받고 우표편지지도위원으로 위촉장도 받았다.
박은주 위원장의 솔선수범과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운영되고 있는 전국우표ㆍ편지지도위원회는 각 체신청은 물론 전문 우취인들의 행사 협조를 받아 학교 우취반의 구성 운영지도, 우표작품 제작 및 출품 지도, 우표전시회 관람, 학교 편지쓰기반 운영 및 편지쓰기 대회 참석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우표정보, 우표전시회, 수집, 우취, 우표상식, 우표장터 등이 수록된 한국우표포탈서비스 ‘K-stamp(http://www.kstamp.go.kr)’는 120여년의 대한민국 우표역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웹 사이트로 커가는 아이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많다.
K-stamp는 불법 유해정보의 유통을 방지하고 건전한 정보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청소년권장사이트 ‘아이틴넷(http://www.iteennet.or.kr)’에도 선정되었을 만큼 알차고 좋은 내용들로 가득하다.
‘K-stamp’에는 그동안 발행되었던 우표로 훌륭한 인물과 역사를 알아보고 현재 우리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는 ‘우표로 떠나는 시간여행’, 우표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알아볼 수 있는 ‘우표의 숨겨진 이야기’ 등 학생이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흥미로워할 게 많다.
우취보급부의 이석연 대리와 같이 직접 사이트를 관리하고 있는 사람들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K-stamp’가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사이트에 나온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해 ‘우표의 역사’를 소개한다.
[우표의 역사]
- 세계 최초 우표
이 세상에 우표가 처음 나온 것은 1840년이다. 우표가 없었던 아주 먼 옛날에는 편지를 받는 사람이 우편 요금을 현금으로 주는 제도로 우체부가 편지를 전해주며 거리, 무게, 편지의 장수에 따라 우편 요금을 계산했다.
그 당시에는 우편 요금이 비싸 일반인들이 우편을 이용하기 어려웠고, 요금을 지불할 돈이 없어 편지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때 불편한 우편 제도를 안타까워한 사람이 영국의 교육자이자 세금 개혁가인 로랜드 힐(후에 로랜드 힐 경)이었다.
그는 1836년 12월부터 1839년 8월까지 3년 동안이나 끈질기게 우체국에서 판매하는 우표를 붙이는 새로운 방법을 주장하여 빅토리아 여왕의 재가를 얻어냈다. 다음 해부터 균일 우편요금 제도가 실시되었고, 요금 선불을 위한 방법으로 우표가 창안되었다.
그리하여 1840년 5월 6일 빅토리아 여왕의 옆모습을 그린 1페니와 2펜스로 된 2종의 우표가 세계 최초로 발행되었다. 색깔에 따라 페니 블랙(Panny Black), 펜스 블루(Pence Blue)라는 애칭이 붙은 우표이다.
- 세계 최초 우표의 디자인
편지에 우표를 붙이자는 안이 확정되고 우표 도안을 공모하여 2600건의 작품이 접수되었으나 채택될만한 작품이 없자 로랜드 힐 경은 조각가 윌리엄 욘(William Wyon)이 만든 빅토리아 여왕의 초상이 든 아름다운 메달로 직접 우표 디자인에 착수한다.
이 메달을 모델로 두 장의 우표 디자인을 물감으로 스케치하고, 찰스와 프레드릭 하이스 부자(父子)가 완성한 조각을 퍼킨스 베이콘사에서 인쇄함으로써 세계 최초 우표가 탄생되었다. 이 우표는 1840년 1월 1일 발행될 예정이었으나 디자인이 늦어져 1840년 5월 6일에야 빛을 보게 된다. 두 종류 우표의 전지 구성은 240장이며 우표인면 하단 양쪽 귀퉁이 □안에 알파벳 문자를 각각 다르게 넣었다.
- 세계 최초의 우편 봉투
윌리엄 멀레디(William Mulready)가 도안하여 멀레디 봉투(Mulready Envelope)로 불리는 봉투가 세계 최초의 우편 봉투이다. ‘POSTAGE ONE PENNY’란 요금이 표시된 이 봉투는 1840년 5월 6일 세계 최초의 우표가 탄생되기 전에 이미 제작되어 최초 우표와 같은 시기에 사용되었는데 세계 최초 우표 이전에 발행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봉투를 처음 발행할 당시에는 우편 요금 균일 제도와 요금 선납을 목적으로 일정한 크기의 봉투에 POSTAGE ONE PENNY(우편료 1페니)라는 요금을 표시했다. 그런데 내용물(우편물)이 봉투보다 크거나 부피가 많을 때에는 취급할 수 없는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그때 봉투에 넣을 수 있는 우편물의 중량은 1온스 당 1페니였고, 무게가 초과되면 1온스 당 1페니를 추가로 받기위해 별도의 우표를 만들어 초과된 금액에 해당하는 만큼의 우표를 붙이게 하였다.
- 우리나라 최초 우표
1) 문위(文位)우표의 탄생
홍영식(洪英植)을 중심으로 한 신진개혁파 정치 지도자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1884년 11월 18일(음력 10월 1일) 역사적인 우정총국이 업무를 개시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가 탄생한다. 철종 6년(1855년) 영의정 홍순목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홍영식은 남달리 총명하였고 개화의 선각자로서 한국 근대 우편과 통신의 창시자이다. 문위우표는 이 때 발행된 우표의 액면이 당시의 화폐 단위인 ‘문(文)’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때 우리 정부는 5종의 우표 인쇄를 일본 대장성인쇄국에 의뢰하여 우정총국의 개국과 동시에 발매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우정총국 개국일까지 5문과 10문 2종만이 도착되어 한성(서울)과 인천 간에 체송된 우편물에 사용되었을 뿐 25문, 50문, 100문의 3종은 같은 해 12월 4일 발발한 갑신정변의 실패로 우정총국이 폐쇄되는 바람에 발행되지 못했다.
2) 20여 일의 단명에 그친 근대 우편제도
1884년 11월 18일 우정 사업 개시와 함께 발행되었던 대한민국 최초의 문위우표가 갑신정변의 실패로 같은 해 12월 8일 왕명에 의하여 폐지됨으로써 모처럼 이룩한 신식 우정 사업제도는 불과 20여 일 만에 그 명을 다했다.
우정 사업을 시작한 지 18일째 되던 1884년 12월 4일 우정국 개설 축하연을 계기로 개화파의 홍영식,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이상재 등이 일으킨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여기에 가담한 자는 물론 이에 연루된 사람들이 자취를 감추며 증거를 없애기 위하여 그 동안 오간 서신 등을 철저히 없애거나 불태워 버려 당시에 사용한 우편물의 실체봉투나 우편 사료가 될 만한 물증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