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각급 학교 교원들의 정기 인사발령이 있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반복되는 게 인생살이라지만 그동안 정을 나눴던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는 아픔도 같이한다. 그래서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학교는 술렁일 수밖에 없다.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5년까지 본인의 열정과 땀방울이 함께했던 학교를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처음은 어려운 게 많다. 그래서 새로 근무할 학교에 대한 설렘이나 기대보다 두려움이 앞설 수도 있다. 그동안 정든 학교나 사람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어느 학교에 가든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초임지에서 5년을 근무하고 처음 이동하는 교사들은 정을 떼는 일이 쉽지 않다. 대부분 초임지를 떠나는 여교사들이 이임인사를 할 때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정이 많은 교사는 아이, 어른 가릴 것 없이 다 눈가에 눈물이 맺히게 한다.
떠나는 사람에게 인정을 베푸는 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지켜온 근본도리이다. 발령이 나면서부터 모든 게 떠나는 사람 위주다. 봄방학 중 근무자 명단에서 제외되는 것은 물론 시간이나 정신적으로 여유를 주기위해 되도록 송별회 날짜도 빨리 잡는다.
모처럼만에 직원이 모두 같이한 자리이기도하고, 떠나는 사람에 대한 섭섭함을 달래면서 앞날의 행운까지 전하느라 송별회 자리는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조금 따르더라도 서로 한잔씩은 주고받아야 하고 평소와 술맛이 다른 날이라 과음도 하고 분위기에 빠지기도 쉽다. 이때 또 초임지를 떠나는 여교사가 눈물을 흘리며 송별회의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든다. 송별회에서의 눈물이 어쩌면 약방의 감초보다 큰 역할을 한다.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 업무로 부딪히다보면 서운한 일도 생긴다. 그게 가슴속에 응어리로 남아 화병을 키우기도 한다. 송별회에서 주고받는 소주잔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춰두고 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며 응어리를 녹이게 한다.
발령이 난 사람들은 3월 1일부터 새로운 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해야 한다. 앞으로 자기가 근무해야할 학교이니 직원들의 분위기가 궁금하다. 굳이 관심을 두지 않더라도 인사발령 상황을 살펴보면 그 학교의 분위기를 대충은 짐작한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관리자와 직원들이 화합을 이루며 분위기가 좋은 학교는 이동하는 교사들이 많지 않다.
관리자들은 새로 부임하는 교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한다. 사무분장 등 새 학년도 준비가 봄방학 중에 이뤄져야 하니 학교 운영상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개중에는 오가는 사람들을 비교하며 득실(得失)을 따져보기도 하고, 너무 속속들이 알려고 하거나 필요 없는 부분까지 전해주는 관리자도 있다.
일부의 얘기이지만 이게 문제가 된다. 이때 전해지는 소식은 대부분 방송에서 말하는 ‘~카더라’이거나 주관적이라 개인의 의견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소식이 곧이곧대로 전해지며 오랫동안 한 개인에 대한 선입견을 결정한다. 물론 ‘보석도 닦아야 빛이 난다’는 것을 아는 훌륭한 관리자는 전해오는 소식을 걸러서 듣는다. 누구나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부임한 후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데 중점을 둔다.
이동하는 교사들은 봄방학 중에 발령지 학교로 인사를 간다. 이때 요즈음 발령이 빨리 나는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각종 사무 등 전임지의 일을 완벽하게 정리하고 차분하고 여유롭게 새로운 학교로 부임하라는 것이다.
발령을 기다렸다는 듯 부임할 학교로 전화를 하고, 바로 인사를 가는 것은 생각해봐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아직 봄방학을 하지 않은 학교에 새로 부임할 교사들이 인사를 다니는 풍토를 좋게만 보기는 어렵다. 근무할 학교에 대한 마음이 급해서라기보다 근무했던 학교에서 마음이 떠났을 거라는 생각이 앞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헤어지고 만나는 일도 득실부터 따지면 일이 꼬인다. 득실을 따지며 앞서 가다보면 머리 아픈 일도 많은 게 인생살이다. 조금 손해 보더라도 뒤에서 지켜보는 삶이 더 행복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떠날 때 고마움이나 정을 더 많이 느낀다. 서운한 감정도 훌훌 털어버리고 싶어 한다. 오는 손님 반갑게 맞이하는 것보다 가는 손님 서운하지 않도록 하는 게 어렵다고 한다. 자주 볼 수 없는 가는 사람에게 더 잘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인데 그걸 지키기가 그렇게 어렵다.
헤어질 때 득실을 따지지 않는 삶이라야 아름답다. 서운한 감정을 눈 녹듯 사라지게 하는 재주도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인간적인 직원들은 인사발령이 난 후에 더 돋보인다. 만날 때 그러했듯 헤어질 때도 득실을 따지지 않는 훌륭한 관리자가 그렇다.
발령 난 직원들과 관리자가 부임할 학교에 인사갈 날짜를 조정한다. 말로 전해주는 대신 직원들이 부임할 학교를 관리자가 앞장서 순회하며 사랑을 몸으로 보여준다. 득실을 따지지 않기에 부임할 직원들이 대신 들고 가는 음료수도 친목회에 기대지 않는다.
이런 관리자는 같이 간 사람들 점심까지 사느라 시간적, 경제적으로 실이 컸어도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자화자찬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직접 고마움을 경험한 사람이나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훌륭한 관리자라고 입소문을 낸다. 일이 조금 힘들더라도 그런 관리자와 같이 근무하기를 원하고 그런 삶에서 포근함이 묻어나는 인생살이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