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쓰는 교실 일기
-만남 2일째-
"에이, 또 맛 없는 것이다."
"토할 것 같은데 어쩌지?"
급식실에서 식판을 받기가 무섭게 미리부터 음식과 담을 쌓는 우리 반 아이가 내뱉는 말입니다. 그 아이가 하는 말의 대부분이 부정적인 언어입니다. 친구들에게도 그런 말을 많이 쓰다보니 자주 티격태격 다투고 울상을 짓는 게 다반사입니다.
아직 가정방문을 하거나 학부모 총회를 통해서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으니 가정적인 요인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유심히 관찰해 보면 욕심도 많고 의욕적이어서 한 번 말한 것은 꼭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마치 스펀지 같은 아이랍니다.
나는 우선 한 가지씩 차분하게 접근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밥 먹는 태도부터 긍정적인 자세가 되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음식에 대한 고마움에서부터 배고픈 사람 사람들 이야기까지, 하나씩 조용히 접근해 가기로 했습니다. 영리한 아이라서 금세 내 의도를 알고 적응하려는 모습도 귀엽습니다.
"은지야, 아프리카 아이들은 우리 돈 백원으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단다. 이렇게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먹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면 되겠니? 이 음식을 먹게 해주려고 부모님은 추운 데서 일을 하시고, 조리사님은 맛있게 요리를 하시지. 특히 우리를 위해 동물과 식물들은 열심히 자라주었지. 은지는 밥도 너무 적게 먹는데 그렇게 먹으면 키가 크지 못하고 공부할 힘도 부족해요. 우리 머리 속의 뇌는 밥을 제일 좋아하거든? "
좋은 말로 하다가 그래도 먹기 싫다는 투정을 부리면 겁주는 말도 함께 하며 강온작전을 펼치기도 합니다.
"그렇게 먹기 싫으면 은지는 학교 급식 대신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닐래? 그러면 바쁘신 엄마가 얼마나 힘드실텐데. 그리고 학교에서처럼 날마다 골고루 음식을 하는 것도 힘들고...."
한참 이야기를 하면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식판을 거의 비웁니다.
그럴 때는 얼른 칭찬과 격려를 날립니다.
"이제 보니 밥을 제일 잘 먹는구나. 선생님 식판보다 더 깨끗하네?"
나는 밥을 잘 먹는 건강한 아이가 긍정적이고 밝은 아이가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점심 시간도 교육의 연장이므로 식사 예절도 함께 가르치는 자리입니다. 그러다보니 나부터 음식을 버릴 수 없으니 먹을 만큼만 받고 받은 음식은 반드시 다 먹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어른이 머저 수저를 든다음 감사함을 표한 다음 수저를 들게 합니다.
"선생님, 먼저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그래 너희들도 맛있게 감사한 마음으로 잘 먹으렴."
옛 어른들은 밥상머리 교육을 중시하였습니다. '먹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는 학과 공부의 연장이 되어야 할 식사 시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용조용 나누며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태도도 가르쳐야 합니다. 숟가락을 바르게 잡는 일, 젓가락질을 제대로 하게 하는 일, 식사를 끝내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조용히 놓게 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학습의 연장입니다. 그리고 양치질도 꼼꼼히 잘 해야 충치를 예방할 수 있으니 끝까지 관찰하지 않으면 이도 닦지 않고 놀러 가는 아이가 생깁니다.
아이들 수가 많아서 식사 지도 하느라 제대로 밥을 먹기 힘들었던 예전 학교에 비해 한결 가족적인 분위기로 조용한 급식실이 여간 좋습니다.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귀한 대접을 받는 시골 학교보다 크고 웅성대는 왁자지껄한 대규모 학교가 좋다며 도시로 몰려가는 교육 현상이 마음 아픕니다.
이제 겨우 만난 지 이틀째인데 벌써 차분하게 잘 따르며 밥을 잘 먹으려고 노력하는 은지의 모습에서 파릇한 새 봄의 따스한 희망을 봅니다. 밥을 잘 먹어서 긍정적인 아이로 커 가는 은지의 모습도 기록으로 남겨 은지에게 선물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