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자 언제 추운 겨울이 있었냐는 듯 봄이 슬며시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이맘때면 새 학기를 맞은 아이들의 밝은 모습과 힘찬 발걸음이 학교를 활기차게 만든다.
자연의 섭리는 참 오묘하다. 때가 되면 나목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겨우내 눈이 쌓여있던 응달에서 꽃이 피어난다. 올해는 황사 때문에 맑은 날이 적지만 봄이라는 계절이 마음의 묵은 때를 벗어내게 하며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교사들은 1년 동안의 교육계획이 발표되는 학기 초에 더 바쁘다. 이번 3월에 이동을 한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니 더 그러하다. 이런 때는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이 생각난다.
여유 속에 삶의 미학이 담겨있다는 것을 선인들은 미리 알고 있었나보다. 그런데 그걸 실천하기가 어렵다. 처한 여건이 어렵게 만들기도 하고 마음의 여유가 부족할 때도 많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에 순응해야 하기에 세월을 거스르지 못한다. 살다보면 늘 좋은 시절만 있는 것도 아니다.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고목이 되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나이도 먹고 초라해진다.
지난 2월 말에 충북에서만 90여명의 교원들이 퇴임을 했다. 평생 교단에서 헌신하다 정년을 맞았거나 개인 사정으로 미리 교직을 떠나게 되었거나 모두 교단에서 최선을 다하던 분들이라 당연히 축하받아야 했다.
그런데 퇴임한 교원 중에는 앞에서 축하한다고 말할 수 없는 분들이 있어 서글프다. 아이들 사랑이나 직원화합이라면 누구보다 앞장섰지만 불쑥 찾아온 지병으로 교단을 떠난 교원들이 그렇다. 그들과 같이 근무하던 시절의 교육활동 모습이 엊그제의 일 같아 아쉬움도 크다.
2월말, 그동안 소식이 궁금했던 후배로부터 메일을 한통 받았다. 아직 교단에서 할일이 많은 나이인데 제목에는 분명 ‘작별인사 드립니다.’라고 써있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급히 메일을 열었다.
‘저는 신병 관계로 금번 2008년 2월 28일부로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교직생활을 접고 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짧았다면 짧고 길다면 긴 교직생활 만 27년 동안 아픈 것 빼고는 큰 과오 없이 교직생활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선배님, 후배님, 그리고 동기 여러분의 관심과 격려였음에 감사드립니다. 때로는 몸이 아픈 것에 대한 원망도 많이 했었고 몹쓸 병이 나에게 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 중략 ~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났다고들 합니다. 눈을 뜨고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도록 각 가정의 대소사에 연락을 주시면 몸이 불편해 직접 참석은 못해도 간접적으로 참석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제가 아파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입니다.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 셋째도 건강입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선생님 댁내 행복이 깃들길 빌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교단을 떠나며’로 시작되는 메일을 읽는데 후배와 같이 근무하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느린 말투로 유머러스한 말들을 툭툭 던지는 낙천적인 성격이었고, 화내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했을 만큼 무던히도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곳을 떠나고 갑자기 지병으로 고생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후, 모임에서 몇 번 만났을 때 희귀성 병이라며 절망하는 모습도 보았고, 차도가 있다며 좋아해 같이 축배를 들기도 했다. 하지만 완쾌가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고, 병마와 지루한 싸움을 하며 고생하고 있다는 것은 풍문으로만 들어야 했다. 낙천적인 후배가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과의 모임마저 참석을 꺼린 것으로 봐 지병에 대한 원망이 컸다는 것을 짐작한다.
메일을 읽고 바로 후배에게 전화를 했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가 반가웠지만 후배의 명예퇴임을 축하할 수도 없는 일이라 딱히 해줄 말도 없었다. 그저 ‘모든 일을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큰마음으로 세상을 너그럽게 바라보고, 가족간의 사랑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일상적인 얘기를 나눴다.
학교에 있을 때보다 더 여유롭게 살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받아들이며 고마워하는 후배의 목소리에 외로움이 물씬 묻어났다. 빠른 시일 내에 만나고 싶었지만 이사를 하고 여유롭게 마음을 정리한다기에 훗날 다시 날짜를 잡기로 약속했다.
교대를 졸업하고 2년 후에 발령을 받았는데도 교육경력이 30년이나 되고 보니 요즘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간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래서 더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선후배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퇴임하는 선배교원들에게서 연민의 정을 느낀다.
때가 되면 직장을 떠나야 하는 것도 자연의 섭리이니 따를 수밖에 없다. 사람마다 다른 체질을 타고났으니 병마에 시달리는 것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나이 먹거나 몸이 아프면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노여움을 키우고, 말 몇 마디에도 감동할 만큼 생각이 단순해진다는 것을 일반인들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동료들에게 고목취급 당하는 심정을 생각해봐라. 그래서 나이 먹고 몸 아픈 교원들이 마음 상하지 않게 하는 일도 신경 써야 한다. 그건 현재 교단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따뜻한 봄날 정년이나 명예퇴임한 선후배들과 야외에서 소주 한잔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고, 덤으로 학교 소식까지 전해주면 눈물겨워할 것이다. 그렇게 여유를 누리면서 맞이하는 봄소식과 꽃에서는 향기가 넘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