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지혜가 필요할 때

2008.04.04 16:26:00

꽃샘 추위 탓일까? 4월이지만 아침 저녁으로 일교차가 크다. 그래서 감기 때문에 고생하는 아이들이 많다. 늘 그랬듯, 담임으로서의 하루 일과는 아이들의 출석 점검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요즘 며칠째 학교에 나오지 않는 한 아이의 결석으로 심기가 불편하다.

4월 1일 만우절 아침 8시 15분, 0교시 수업 시작 5분 전. 교실 문을 열자, 야간 자율학습으로 피곤한 몇 명의 아이들이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아직 등교를 하지 않은 몇 명의 아이들 자리가 비어 있었다. 자리에 앉아 수업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얼굴 위로 피곤이 묻어나고 있었다. 수면 부족으로 지쳐 있는 아이들이기에 담임으로서 아이들 건강이 늘 신경 쓰인다.

잠시 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아직 등교하지 않은 2명을 뒤로한 채 교무실로 내려왔다. 2명 중 한 아이는 가끔 지각을 하는 아이라 오늘도 그러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한 아이는 개학 이후 단 한 번의 지각과 결석이 없기에 내심 신경이 쓰였다. 더군다나 기숙사 생활을 하는 녀석이라 지각하고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두 아이의 등교 여부를 알아보고자 다시 교실로 올라갔다. 2명 중 한 아이의 출석은 확인됐으나 염려했던 한 녀석은 아직 등교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기숙사 방을 같이 쓰는 아이에게 물어보았으나 녀석의 행방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녀석의 집과 휴대전화에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한 아이가 말을 했다.

"선생님, 오늘이 만우절이라 ○○이가 장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녀석은 학교 어딘가에 숨어 깜짝쇼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녀석이 오면 내게 오라는 말을 남겨놓고 교무실로 내려왔다. 그런데 점심 때가 지나도록 녀석이 왔다는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의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

참다 못해 녀석의 룸메이트를 불렀다. 말에 의하면, 지난 밤 녀석은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공부가 안 된다며 투정을 부렸다고 한다. 그 이후로 녀석은 밤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불안해 했단다. 하지만 며칠 전 진학 상담을 할 때도 이상한 낌새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녀석은 열심히 공부해 원하는 대학에 꼭 가겠다며 자신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상담을 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녀석은 무엇에 심기가 뒤틀려 학교에 나오지 않는 걸까. 도무지 녀석이 가출한 만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녀석과 평소 친하게 지내는 친구를 불렀다. 그리고 다행히 친구로부터 녀석이 잘 다녔던 시내 PC방 몇 군데를 알아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수업이 없는 시간을 이용하여 녀석을 찾아 나섰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PC방 여러 곳을 다녀 보았으나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학교로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학기 초라 담임 업무 및 진학 상담을 해야 할 시간도 부족한데 이런 일로 아까운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내심 화가 나기도 하였다. 

녀석의 가출 이후, 아이들에게 신경이 더욱 예민해졌다. 무엇보다 이번 일이 다른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마음이 해이해지는 것을 막고자 조금 엄하게 지도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아이들 앞에서 미소를 지어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꼭 필요한 전달사항 외에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 농담을 좋아하는 나의 갑작스런 변화에 아이들은 의아해했지만 워낙 내 표정이 진지해 사태의 심각성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실 분위기는 살벌하기까지 했다. 아이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했으며 심지어 자율학습시간에는 쥐 죽은 듯 공부에만 전념했다. 또 내 신경을 자극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가끔 몇 명의 여학생들이 교무실에 내려와 애교를 부리기도 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했다.

나의 심경의 변화로 교실 분위기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알 수 없는 정적이 아이들의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드는 것 같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방황하고 있을 녀석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지기까지 한다.

한편으로는 고3이기에 뒤를 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가라고 주문했던 것이 오히려 그 아이를 가출하게 한 원인이 아니었을까, 잠시라도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주었더라면 아마 그 아이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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