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후반에 교대를 졸업한 사람들은 지지리 복도 없어 2, 3년을 기다려야 발령 받았다. 그 당시 발령을 받아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게 벌써 30년이 넘었다.
어느 날부턴가 그동안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보며 짧게나마 글을 남기는 것도 습관이 되었다. 썩은 관솔이 되더라도 주변 사람들의 삶에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타면서 향기로운 냄새를 내겠다는 바람도 가지고 산다.
나만 그렇지는 않을 거라며 위안을 삼지만 아이들에게 잘못 가르친 것도 많다. 어떤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 잘못된 시류 때문이라고 변명도 해본다. 그중 하나가 시도 때도 없이 정신적인 행복을 강조한 것이다.
〈사업체를 운영하며 돈이 많지만 늘 바빠 아이들 얼굴 보기도 어렵고 여기저기 학원을 보내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부모와 회사에 다니며 돈은 없지만 시간이 나면 아이들과 놀아주고 자녀가 들려주는 리코더 소리에서 행복을 찾는 부모가 있을 경우 어느 가정이 행복할 것이냐?〉
바르게 살면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게 아이들에게 늘 들려주던 이야기이자 수업의 주제였다. 지금은 성인이 된 아이들이 그때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를 생각할 때마다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으로 봐 뭔가 지도에 착각이 있었던 듯 싶다.
몇 년 전부터는 그런 얘기를 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가 모두 돈과 연관되어 있다. 돈이 없으면 살기도 어렵고, 대접도 못 받는 세상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지도하는 내 자신부터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보니 목소리의 톤도 낮아졌다.
세상살이는 참 묘하다. 세상물정 피해 떠난 여행지에서 돈 없이 살아도 행복이 넘쳐날 것 같은 집을 만났다. 입구에 '웃음! 행복! 넘치는 우리 집'이 써 있는 표석과 자연을 품고 있는 집 한 채가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내 목소리를 되찾아줬다. 잠시 접고 있었지만 늘 그래왔다는 듯이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행복전도사로 목소리를 높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