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사로 가다보면 산세가 부드러운 능선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신록으로 양탄자를 깔아 논 것처럼 모난 곳을 찾아볼 수 없는 높이 575m의 만수산이 만든 아름다운 풍경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지만 자세한 연대를 알 수 없다는 무량사는 모나지 않은 우리 민족의 심성을 닮은 만수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어 포근함이 느껴지는 사찰이다.
입장료 2000원을 내고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현판에 ‘만수산무량사’가 써있는 일주문을 만난다. 이 일주문의 뒤편 현판에는 ‘광명문(光明門)’이라고 써있는데 이곳에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다. ‘광(光)’자의 오른편 위에 우리나라 지도가 그려있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한다.
일주문에서 천왕문까지는 가까운 거리지만 중간에 작은 돌다리를 건너고, 사람들의 소원이 담긴 돌탑도 구경하고, 시원한 그늘이 있어 산책하기에 좋다. 천왕문 오른편에 고려 전기에 만든 것으로 짐작된다는 당간지주(충남유형문화재 제57호)가 서있다.
천왕문에 들어서면 만수산을 닮아 그림같이 아름다운 무량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앞으로는 마당에 심어져 있는 크고 멋진 나무들과 함께 석등(보물 제233호)ㆍ오층석탑(보물 제185호)ㆍ극락전(보물 제356호), 왼쪽에는 요사채로 쓰이고 있는 심검당, 오른쪽으로는 범종각(충남유형문화재 제162호)이 보인다.
무량사에 있는 문화재들을 무량사홈페이지(
http://www.muryangsa.or.kr)를 통해 알아본다.
<극락전>
무량사의 전각 명칭이 극락세계임을 뜻하는 극락전이다. 무량사가 임진왜란 때 크게 불탄 뒤 인조 때에 중창하였으니 이 극락전도 그때에 지은 것으로, 조선 중기 건축의 장중한 맛을 잘 드러낸다.
겉에서 보기에 2층집인 점이 우리나라 여느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을 하고 있어 독특하다. 불전 안에는 가운데에 아미타불(5.4m)이, 양쪽에 관세음보살(4.8m)과 대세지보살(4.8m)이 있는데, 이 아미타삼존불은 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불로서는 동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극락전에는 그린 연대와 그린 스님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무량사미륵불괘불탱(보물 제1265호)과 무량사동종(충남유형문화재 제162호)이 있다.
<오층석탑>
마주하면 매우 장중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지막한 2층 기단 위에 매우 안정된 비례로 5층을 올렸는데, 밑변 5.2m의 널찍한 기단 위에 7.5m 높이로 올린 탑이라 안정감을 준다.
너비는 넓고 기울기는 평평하다시피 완만한 지붕돌이라든지 목조건물처럼 살짝 반전을 이루어 경박하지 않은 경쾌함을 보여주는 처마선 등은 부여 정림사터 탑을 그대로 빼닮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고려 시대에 조성된 백제계 석탑으로 손꼽는다.
<석등>
선이나 비례가 매우 아름다운 석등이다. 상대석과 하대석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연꽃이 조각되어 있고 팔각 화사석을 갖추고 있는 점이 통일 신라 이래 우리나라 석등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춘 고려 초기 석등이다.
극락전의 오른편에 명부전(충남유형문화재 제176호), 왼편에 우화궁ㆍ영정각ㆍ천불전ㆍ영산각, 뒤편에 청한당과 산신각이 있다.
이곳 영산각에서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의 자화상인 영정을 만난다. 무량사의 암자인 무진암 입구에는 무량사부도군과 함께 김시습 부도(유형문화재 제25호)가 있다.
〈김시습은 3세 때 보리를 맷돌에 가는 것을 보고 “비는 아니 오는데 천둥소리 어디서 나는가, 누른 구름 조각조각 사방으로 흩어지네”라는 시를 읊었고, 5세 때 이 소식을 들은 세종에게 불려가 총애를 받았다.
끝까지 절개를 지켰고, 유ㆍ불(儒佛) 정신을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다 충남 부여의 무량사에서 죽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소개되어 있는 대로 무량사는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김시습이 말년을 보내다 숨진 곳이다.
[교통안내]
1. 경부고속도로 - 천안논산고속도로 - 서논산IC - 부여 - 4번 국도 - 40번 국도 - 외산면 - 무량사
2. 서해안고속도로 - 대천IC - 보령 - 성주터널 - 40번 국도 - 보령댐 입구 - 외산면 - 무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