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인성교육이 우선되어야 할 때

2008.06.12 10:26:00

학창시절, 학생부는 아이들 모두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잘못을 하지 않은 아이들까지 학생부 선생님만 지나가도 지레 짐작 겁을 먹고 달아나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 정도로 학생부의 위상은 맹위를 떨쳤다.
 
특히 교칙을 위반 했거나 수업시간 잘못한 아이들에게 학생부에 가라는 말만큼 더 무서운 것은 없었다. 하물며 어떤 아이는 겁에 질러 즉석에서 잘못을 빌며 용서를 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교문 지도가 있는 날은 얼 차례 받는 것이 두려워 아침 일찍 등교를 서두르는 아이들도 많았다. 선생님 또한 학생부 근무에 자부심을 느끼곤 하였다.
 
그런데 요즘은 어떠한가? 체벌과 얼 차례 금지로 예전에 비해 학생 생활 지도가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더군다나 학생들의 사고 유형(학교폭력, 집단따돌림, 성폭행 등)도 다양해져 다루기가 갈수록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선생님도 많다. 그래서 학기 초 학생부에서 근무하기를 꺼려하는 선생님이 적지 않다. 아마도 그건 업무도 많은 반면 해결해야 할 학생 사안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학생부의 규율이 예전에 비해 완화된 탓인지 요즘 학생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난 뒤에도 학생부로 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웬만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는 징계(정학)를 받는 경우가 거의 없고 경고 내지 주의를 받는 것이 전부이기에 학생들이 그렇게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잘못의 수위에 따라 처벌내용이 다르지만 그나마 조금 높은 처벌로 학교봉사와 사회봉사가 고작이다.
 
교단에 선 지 20년이 되어가지만 지금까지 잘못한 학생을 학생부로 보낸 기억이 거의 없다. 학생부 선생님을 도와준다는 차원에서인지 학생의 웬만한 잘못은 거의 내 손에서 해결을 다했다. 그런데 최근 한 아이의 무례한 행동을 참다 못해 학생부로 보낸 일이 벌어졌다.  
 
화요일 2교시 3학년 ○반 영어시간. 갑자기 무더워진 날씨에 아이들 모두가 무기력해져 있었다. 교실 천정에 달려있는 네 개의 선풍기가 돌아가고는 있었지만 이 무더위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고 고3 중요한 시기 날씨가 덥다고 자율학습을 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에 수업이 제대로 되지도 않았다. 할 수 없이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난 뒤, 선풍기를 껐다. 수업을 진행한 지 십분 쯤 지났을까. 교실 맨 뒤에 앉아 있던 한 녀석이 손을 번쩍 들며 선풍기를 켜 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녀석의 목소리가 왠지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이 나의 감정을 거슬리게 하였다. 그래서 녀석을 앞으로 나오게 한 뒤, 무례한 행동에 대해 꾸짖었다. 그러자 녀석은 반성은커녕 다짜고짜 내가 선풍기를 끈 것에 대해 불만을 늘어놓는 것이 아닌가.
 
순간 이 녀석에게 무언가 경각심을 심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학생부로 가라고 하였다.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녀석은 투덜거리며 교실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내심 학생부로 가라고 하면 지레짐작 겁을 먹고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았다. 그러면 간단하게 꾸중을 하고난 뒤 이 일을 없던 걸로 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내 생각이 빗나간 것이었다. 녀석은 자신의 행동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내 지시를 순수하게 따르는 것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난 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학생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자 녀석은 학생부 선생님이 나눠 준 진술서에 자신이 학생부까지 오게 된 과정을 자세하게 쓰고 있었다. 나를 보자, 녀석은 조금 전에 내게 했던 행동과는 달리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마도 그건 선생님인 내게 무례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한 미안함 이었으리라. 녀석은 더운 날씨를 참지 못하고 경솔하게 행동한 것에 잘못을 빌었다.
 
녀석을 교실로 보내고 난 뒤, 잠깐이나마 학생부 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옛날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어보기도 하였다. ‘선생님의 그림자를 밟지 말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대들고 심지어 구타까지 서슴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아이들의 인성교육보다 지식에 더 치중하는 현 교육이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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