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음악교과서에 백약란 작사, 손대업 작곡의 ‘잠자리’라는 노래가 있다.
<잠자리 날아다니다 장다리꽃에 앉았다/ 살금살금 바둑이가/ 잡다가 놓쳐 버렸다 짖다가 날려 버렸다>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왠지 흥에 겨워 콧노래를 부르고, 가사의 장면을 떠올리며 빙그레 미소 짓게 하는 노래 중 하나이다. 아마 가사에 나오는 장다리꽃의 정겨움을 잊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우리에게도 쌀밥 먹는 게 소원이던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5, 6월이면 어김없이 보릿고개가 찾아왔고, 양식이 바닥나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집도 있었다. 그래도 먹을 게 지천인 자연이 늘 곁에 있어 높고 험했던 고개를 슬기롭게 넘었다.
그중 하나가 무나 배추의 꽃줄기인 장다리였다. 찔레순을 따먹듯 크고 통통한 놈으로 골라 줄기를 자른 후 껍질을 벗기고 말랑말랑한 속살을 한입 물고 오독오독 씹으면 풋 냄새가 알싸하게 입안을 맴돌았다. 무나 배추밭이 장다리 꽃밭이 되고 그 위에서 나비나 잠자리들이 나풀나풀 날던 멋진 장면도 잊을 수 없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장다리꽃'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무나 배추에서 돋은 장다리에 피는 꽃, 또 그 꽃이 달린 꽃줄기를 일컫는다. 배추와 무의 새순에서 꽃줄기인 장다리가 돋아나 자라는데, 그 꽃줄기 윗부분에서 총상화서(긴 꽃대에 여러 개의 꽃이 어긋나게 붙어서 밑에서부터 끝까지 꽃을 피움)가 발달하면서 무에는 엷은 보라색 십자화, 배추에는 유채꽃 비슷한 노란색 십자화가 소박하게 핀다.>
그렇게 정겨움이 묻어나고, 이때쯤이면 흔하게 볼 수 있던 장다리나 장다리꽃도 이제 나이 먹은 사람들만 기억하고 있는 추억거리가 되었다. 며칠 전, 답사 길에 장다리꽃밭을 만났다. 하늘의 흰 구름을 닮은 장다리꽃 사이를 쉼 없이 나는 나비들의 모습이 너무 예뻐 한참을 그 자리에 서있었다.
허기를 때워주던 장다리나 나비들의 무도회장인 장다리꽃밭을 보고 있노라니 도종환 시인의 '장다리꽃'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사월이 가고 오월이 올때
장다리꽃은 가장 짙다
남녘으로 떠돌며
사무치게 사람들이 그리울 때면
장다리꽃 껴안았다
벼룻길로 바람은 질러오고
고개 이쪽에 몇개의 큰 이별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노래를 남기고
손사래치던 손사래치던 장다리꽃
비를 맞으며 장다리꽃 고개를 넘다
비를 맞으며 손바닥에 시를 적었다
남은 세월은 젖으며 살아도
이 길의 끝까지 가리라고 적었다
등줄기를 찌르는 고드래 같은 빗줄기
사월이 가고 오월이 올 때
장다리꽃은 가장 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