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 아내와 공주로 문화재 답사를 다녀왔다. 백제 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넘치는 오인숙 문화유산해설사의 안내로 처음 간 곳이 선화당이다.
출입문 역할을 하는 포정사문루(충남유형문화재 제93호)는 조선시대 공주에 있던 충청감영의 정문이다. 2층의 문루로 된 건물 아래가 감영을 출입하는 큰 출입문이고, 위는 루의 마루로 사용하다 전쟁 때는 장군의 지휘소로 이용했단다.
문루에 들어서면 선화당(충남유형문화재 제92호)이 나타나는데 안내판의 내용대로 조선시대 충청도 도청이 충주에서 공주로 옮겨지면서 관찰사가 행정업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현 위치로 옮겨 복원하며 정면 8칸, 측면 4칸으로 건물의 규모가 축소되었다. 이곳에서 다도와 사물놀이 체험을 했다.
선화당 옆에 1896년에 건립되어 1911년까지 목사가 정무를 보던 관청으로 지방의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이 행해지던 동헌(공주시향토문화유적 유형 제1호)과 빗물을 그릇에 받아 강우량을 재는 측우기 중 1877년에 만들어져 공주 감영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금영측우기(보물 제561호)의 모형이 있다.
바로 옆에 있는 관풍정에서 민족 고유의 무예인 국궁을 체험했다. 동쪽에 사는 활 잘 쏘는 민족이라 중국인들이 우리를 동이(東夷)라고 불렀다는데 화살의 방향이 제멋대로이다. 자기 주장이 강한 요즘 아이들, 국궁을 통해 심신을 단련하고 인격을 도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화당 바로 옆에 백제의 웅진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는 국립공주박물관(http://gongju.museum.go.kr)이 있다. 우리나라 박물관 중 국보를 세 번째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국립공주박물관에는 웅진 백제문화의 보고답게 국보 19점, 보물 4점 등 중요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국보 제154호부터 국보 제165호까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이니 무령왕릉이 발견되며 공주국립박물관의 위상도 높아졌다. 154호(금제관식:왕), 155호(금제관식:왕비), 156호(금제삼엽형이식), 157호(금제수식부이식), 158호(금제경식), 159호(금제뒤꽃이), 160호(은제팔찌), 161호(청동신수경, 의자손수대경, 수대경), 162호(석수), 163호(지석), 164호(두침), 165호(족좌)와 보물 등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을 관람하다보면 자연스럽게 67년간 웅진시대를 열었던 백제의 역사를 알게 된다.
박물관을 나와 공산성(사적 12호)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산성에 도착하자 막 수문병교대식이 시작된다. 수문병교대식은 4월부터 10월까지 옛날 방식대로 시간마다 재현한다. 교대식이 끝나면 수문병들이 과거처럼 성문을 지킨다. 왕과 왕비, 공주와 왕자, 수문병이 되어보는 역사체험과 활쏘기와 투호놀이, 백제문양 탁본 뜨기를 하며 즐기는 문화프로그램도 참여할 수 있다.
공산성은 산의 높이가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폭이 넓고 깊이가 깊은 강을 끼고 있어 천혜의 요새였다. 전략적 요충지이자 백제 웅진시대의 왕궁터가 있는 이곳이 지금은 젊은 연인들이 즐겨찾는 산책코스다.
성 안에 임진왜란 때 승병사찰이었던 영은사, 인조가 파천 때 이곳에 머물렀던 것을 기념해 세운 쌍수정, 정유재란 때 세 장군의 업적을 기린 명국삼장비,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내려온 사실을 적은 쌍수산성 주필사적비 등이 있다.
문화유산해설사가 동행하는 답사일수록 배우는 게 많다. 마지막 답사 코스인 무령왕릉으로 가는 차안에서 송산리 무덤들과 가까운 곳에 있는 정지산 백제유적(사적474호)에 대해 들었다. 무령왕릉의 시신이 안치되어있던 정지산 백제유적은 웅진시기 백제의 국가적인 제사시설일 가능성이 높은 곳이란다.
1971년 송산리 5, 6호분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되어 역사학자들을 놀라게 한 무덤이 무령왕릉이다. 무령왕릉에 대해 공주문화관광(http://www.gongju.go.kr/html/tour/index.html)에 소개되어 있는 내용을 요약해본다.
무령왕릉은 입구가 벽돌과 회로 빈틈없이 밀봉되어 있었고, 도굴의 피해도 입지 않았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에서 누가 이 속에 묻혔는지, 그리고 언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유일한 무덤이다.
이 무덤의 입구에서 발견된 글씨가 새겨진 돌판(誌石) 2장이 피장자의 이름은 물론 왕릉에서 출토된 물품의 연대를 알게 한다. 무령왕은 백제 제 25대왕으로 이름은 사마 또는 융으로 알려져 있다. 무령왕릉 출토 지석에 의하면 462년에 출생하였으며 62세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다. 무령왕릉 때문에 백제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삼국시대의 역사에 대한 연구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어느 곳을 가든 공주에서는 40세의 나이에 백제의 제25대 왕이 되어 501년부터 523년까지 백제를 안정시키고 왕권을 강화했던 무령왕의 숨결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