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도착하니 현장학습 출발시간이 아직 10여분 남았다. 마음이 들떠 운동장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우르르 몰려온다. 아이들은 궁금한 게 많다. ‘무엇을 먹었느냐? 어디에 갔었느냐? 잠은 어떻게 잤느냐?’ 우리 반 아이들을 둘러싸고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는다.
아침 일찍 부모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관광버스가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뛰뛰-빵빵, 자동차의 경적소리에 신이 난 아이들은 옆 사람과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다.
관광버스와 관광유람선을 갈아타며 충주의 중앙탑, 충주호의 옥순봉과 구담봉, 단양의 고수동굴ㆍ도담삼봉ㆍ석문을 돌아보는 이번 현장학습은 특별한 게 몇 가지 있다.
지리적으로 기찻길이 멀어 기차를 구경하기 어렵고, 가까운 곳에 대청호가 있지만 상수원보호구역이라 유람선을 타본 아이들이 없다. 그래서 아이들이 관광버스, 기차, 유람선을 타보고 관광지에서 1박을 하는 현장학습을 1년 전부터 계획했었다.
경비문제로 계획이 축소되었지만 교사들은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어 욕심을 부렸다. 오죽하면 관광버스 기사가 일정이 너무 빡빡하다는 말로 불만을 토로했을까. 그래도 선배님(도원분교 17회)들이 사준 티셔츠를 똑같이 입고 떠나는 현장학습이라 아이들은 즐겁기만 하다.
1시간여를 달려 중앙탑에 도착했다. 신라 원성왕 때 국토 중앙에 세워져 중앙탑(국보 제6호)으로 불리는 중원탑평리칠층석탑은 높이가 14.5m나 되어 현재 남아있는 신라의 석탑 중 제일 높다.
중앙탑은 바로 옆에 탄금호, 조각공원, 충주박물관, 술박물관 등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아 좋다. 특히 탄금호의 수상 레저 시설과 음악분수, 넓은 잔디밭의 조각공원이 편안한 쉼터를 제공한다.
물줄기를 하늘로 내뿜는 분수, 조정선수들이 훈련하는 모습, 호수 건너편의 골프장, 조각공원의 조형물 등 우리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하다. 그렇다고 바라보고만 있을 아이들이 아니다. 호기심이 발동하자 만져보고, 올라타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유람선 승선 시간에 맞추느라 아쉬움을 뒤로하고 충주호 선착장으로 향했다. 신라 때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탄주하고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왜군과 싸우다 순국한 탄금대는 지나는 길에 설명으로 대신했다.
쾌속선과 대형 유람선이 떠있는 선착장의 풍경은 아이들에게 더 낯선 풍경이다. 시간이 되자 관광객을 태운 쾌속선이 뱃고동을 울리며 청풍나루로 향한다. 갑판에서 보는 충주댐과 선착장의 모습이 새롭다.
바다구경 하기 어려운 내륙사람들에게 호수는 바다다. 더구나 충주호는 충북의 충주시ㆍ제천시ㆍ단양군에 걸쳐 있을 만큼 면적이 넓다. 쾌속선이 속력을 내자 물길이 막히며 섬이 된 산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배의 후미로 사라진다.
“선생님, 바다에 왜 갈매기가 없어요?”
호수를 바라보고 있던 송이의 궁금증이 여러 사람을 웃게 했다. 2학년짜리의 눈에는 넓은 충주호가 바다로 보였을 테고, 보고 싶은 갈매기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게 이상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이렇게 순수해서 좋다.
내리사랑이라고 사람은 어릴수록 귀엽다. 엄마 품에서 어리광이나 부릴만한 꼬마들이 같은 배에 타고 있었다. 작은 눈으로 이곳저곳 호수의 풍경을 살피는 유치원생들이 귀엽다. 여러 가지 레저시설을 갖춘 청풍랜드를 지나치자 청풍나루다.
청풍나루 뒤편으로 한벽루(보물 제528호), 석조여래입상(보물 제546호) 등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의 문화재를 이전 및 복원한 청풍문화재단지가 보인다. 충주 호반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관광객이 많은 곳이지만 이곳과 비슷한 문의문화재단지가 학교 가까이에 있어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이곳부터는 관광객이 조금 늘어나 대형유람선으로 갈아탔다. 유람선의 선상에서 청풍나루 앞에 펼쳐진 충주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며 수경분수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162m 높이까지 물줄기를 뿜어 올리는 동양 최대의 수경분수를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하루에 4번만 가동을 해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유람선이 장회나루로 향하자 좌우의 아름다운 산들이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다가온다. 경관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유럽풍의 리조트를 지나자 옥순대교가 나타난다.
충주호의 물길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 옥순대교부터 장회나루 사이에 있는 옥순봉과 구담봉이다. 대나무 싹같이 보이는 옥순봉과 기암절벽의 모양이 거북을 닮은 구담봉이 중국의 계림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놓았다. 물길을 따라가며 펼쳐놓은 이곳의 절경이 충주호 유람선 관광의 백미로 꼽힌다.
단풍놀이가 시작되기 전이고 평일이라 유람선에 관광객이 적다. 그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마음껏 자유를 누린다. 선상에 둘러앉아 친구들과 점심도 먹고, 멋진 풍경을 배경으로 추억거리도 남기고, 사방의 경치를 둘러보며 감탄도 한다.
장회나루에서 내려 관광버스로 갈아탔다. 고수동굴에 도착하기까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남한강의 강줄기와 단양 읍내의 풍경이 고즈넉하다. 양백폭포가 가까이 보일 때는 옛날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시절이 흑백화면으로 스쳐 지나간다.
종유석 동굴은 태고의 역사를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천연기념물 제256호인 고수동굴은 우리나라 최고의 종유석 동굴이다. 매표소와 연결된 계단을 지나 굴 입구에 들어서니 한낮인데도 서늘하다.
입구를 조금 지나면서 벽면에 형성된 다양한 종유석과 신비한 모습의 바위들을 만난다. 독수리 바위, 도담삼봉, 네 명의 딸 바위, 미녀승무바위, 창현궁, 선녀옥답, 만물상, 배학당, 사자바위, 황금주, 사랑바위, 해구암, 황금폭포, 천당성벽 등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동굴은 내부가 어두운 데다 협소한 계단과 통로가 많아 위험하다. 기기묘묘한 석순과 종유석들이 신비로운 볼거리를 만들어 놓았는데도 아이들의 발걸음이 빠르다. 할 수 없이 천천히 이동하면서 자세히 둘러보라고 잔소리를 한다.
동굴 구경을 마치고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은거했다는 도담삼봉으로 갔다. 3개의 봉우리가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석문 앞에서 달려온 모터보트 한척이 봉우리 사이를 빠르게 지나가며 S자를 그리는 모습이 오히려 한가로워 보인다.
음악분수 오른쪽 산비탈에 석문이 있다. 석문으로 가다보면 도담삼봉 주변은 물론 단양읍내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자가 있다. 삼봉에 있는 삼도정 대신 이곳에 올라 시 한 수 읊으면 누구나 신선이 될 것 같다. 정자에서 조금만 더가면 큰 구멍 사이로 남한강물과 앞마을이 훤히 보이는데 이곳이 석문의 뒤편이다.
석문은 수십 척 높이의 돌기둥이 마주 서있고, 그 위에 돌다리가 무지개 형상을 하고 있다. 강변에 위치해 나룻배를 타고 앞에서 봐야 석문이 제대로 보인다. 마고할미와 아흔 아홉 개의 다랭이 논에 관한 전설도 작은 동굴에 들어가 봐야 안다.
이곳이 초임지라 옛날에 가르친 제자들이 궁금하다. 가게에 들러 몇 년 전까지 노총각 새마을 지도자였던 제자가 장가들어 잘 살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었으니 이제 도담삼봉을 떠나 학교로 가는 일만 남았다. 제천을 거쳐 청주로 가며 우연찮게 중앙탑에서 가까운 중원고구려비를 지나게 되었다. 중원고구려비(국보 제205호)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 설명을 했지만 피곤한 아이들의 귀에 들어갈 리 만무하다.
밖에 나가면 위험 요인이 많다. 마음이 들뜬 아이들을 통제하는 일도 쉽지 않다. 오죽하면 요즘 현장학습은 출발지에 잘 도착만 해도 100점짜리라고 할까. 그런데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이른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빈틈이 없는 현장학습을 추진하게 했다.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낭패를 보기 쉬운 계획이기도 했다. 하지만 말 잘 듣는 도원분교 아이들과 항상 마음이 같은 도원분교 교사들에게는 문제될 게 없는 일정이기도 했다.
현장학습을 다녀온 10월 2일은 순진하고 소박한 도원분교 아이들 때문에 흐뭇하고 자랑스러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