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가르치는 대학입시

2008.12.02 09:36:00

대학입시가 비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짧게는 일 년 길게는 십 수년 동안 준비한 수험생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이를 지켜본 학부모들의 애태는 심정이 일부 대학의 우수 학생 선점 전략에 의해 극도의 갈등과 불신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런 일은 주로 서울 소재 중상위권 대학이 앞장서고 있다. 아마도 그 저의는 내신을 무력화하고 삼불(三不)을 허물어뜨리는 데 있는 듯 싶다.

현 정부는 사실상 대학입시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입자율화라는 명분으로 대학입시를 대학 총장들의 의사결집체인 대교협으로 넘긴 것부터 그랬다. 대학이 알아서 규칙을 만들고 그 틀 안에서 자유롭게 학생을 선발하라고 권유했다. 몰론 명분은 그럴 듯 했다. 이전 정권에서도 대학들은 틈만나면 대입자율화를 요구하며 정책 당국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자율화’의 대척점이 ‘규제’가 아니라 ‘무질서’와 ‘혼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율화를 결정할 때는 심사숙고하고 그 부작용까지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 더욱이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사안에 대해서는 자율화가 오히려 독(毒)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대학입시는 그 어떤 사안보다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에서 자율화의 정도와 수준을 적절하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신중하게 다뤄야할 대학입시를 선뜻 대학에 맡겼다는 것은 정부가 나서서 혼란과 갈등을 조장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 진행되고 입시 가운데서도 고려대의 경우는 일선 진학지도 교사들이 직접 나서서 이의를 제기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고려대 수시 2-2에 지원했던 학생들 가운데 내신성적(교과90+비교과10)으로 사정하는 1단계(17배수)에서 일반고 학생들이 특목고 학생들에 비해 차별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고려대 측이 해명한 이른바 ‘조정 내신’은 학생부 교과 성적을 반영할 때 상수(a, k)값을 이용해 평균과 표준편차를 보정한다고 밝혔으나 이는 자신들만 이해할 수 있는 기준에 불과하다.

일선 진학지도 교사들은 고려대가 복잡한 수식을 도입하여 합격자를 사정한 것은 평가의 공정성보다는 특목고 등 일부 명문고교에 대하여 가산점을 부여하기 위한 의도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교과성적을 산출할 때 상수값 적용을 잘못했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도 그럴만한 이유가 일반고 학생에 비해 내신성적이 훨씬 뒤지는 특목과 학생이 합격했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으며 같은 학교 내에서도 교과와 비교과 성적이 모두 우수한 학생이 떨어지고 그렇지 않은 학생이 붙은 사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공교육 활성화를 위하여 도입한 논술고사도 마찬가지다. 논술 전문가들은 대학이 정상적으로 고교에서 배운 내용을 중심으로 출제하면 학교교육만으로도 얼마든지 논술에 대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이번 수시모집부터 사실상 본고사나 다름없는 문제를 출제하는 대학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지난 해는 교육 당국이 논술가이드라인으로 일정하게 규제를 가했으나 대교협으로 권한을 이양한 이후부터 이 같은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이미 치러진 일부 대학의 수시모집 논술고사를 보면 외국어 해석에다 수학과 과학의 이론을 가미한 심층 문제풀이까지 요구하고 있다.

입시는 교육활동의 일환이기 때문에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치러져야 한다. 그런데 입시가 한정된 재원을 선점하려는 대학들의 비열한 싸움판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는 마치 신호등을 없애고 지나가는 차들이 알아서 지키라는 것과 다름없다. 대학 간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켜 복마전이나 다름없는 입시를 대학에 맡긴 것 자체가 코미디다. 향후 대학입시가 궁극적으로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은 쪽으로 나아가는 것은 맞지만 관리만큼은 책임과 권한을 갖고 있는 정부가 맡는 것이 당연하다. 정책 당국은 대학입시를 통하여 소중한 꿈을 이루고자 하는 수많은 청소년들과 그 부모들에게 더 이상 절망을 가르쳐서는 안된다.
최진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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